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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거주인의 표는 허술하게 관리해도 되나요?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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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소투표는 거주지가 투표소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거나, 거동이 어려운 사람이 집에서 우편으로 투표 할 수 있도록 하는 투표 제도이다. 지난해 진행된 19대 대선에서는 총 10만 1089명이 거소투표를 신청했고, 올해 지방선거에는 8만 2천 명이 신청했다. 기관이나 시설에서 거소투표하는 경우, 투표의 공정한 진행은 선거관리위원회(아래 선관위)가 아닌, ‘기관·시설의 장’에게 있다. 거소투표를 신청할 수 있는 기관·시설에는 정신병원, 정신요양시설, 장애인 거주시설 등도 포함된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10인 이상이 거소투표를 신청한 시설에는 공정성 담보를 위해 기표소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되어있다. 시설 내 거소투표, 얼마나 공정하게 진행되고 있을까. 선거의 4대 원칙인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가 이뤄지고 있을까. 비마이너 기자들이 거소투표가 이뤄지는 시설 두 곳을 참관했다.

참관인 제도는 시설 ‘선택’, 신분증 검사도 않는 거소투표

A정신요양원은 총 118명이 거소투표를 신청했다. 참관인들이 시설에 도착하니 선관위 측이 출입을 막아섰다. ‘미리 신청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에 참관인이 “공직선거법상 지역선관위에 사전 신고하는 절차나 양식은 없다”고 항변하자, 선관위 직원은 결국 참관인이 속한 정당 실무자와 통화를 하고 나서야 참관을 ‘허락’했다. 공직선거법 161조에는 투표장 참관인 배치를 의무화하고 있으나, 거소투표 진행을 규정한 149조에는 참관인 배치를 ‘할 수 있다’라고만 언급하고 있다. 거소투표의 경우 참관인 제도가 의무사항이 아니다 보니, 세부 신고 규정도 없어 발생한 일이었다.

현재 거소투표 감시하는 법규정 없어, 절차 허술하지만 ‘위법 아냐’

 거소투표하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투표할까. A요양원은 194명 중 114명만 거소투표에 참여했다. A요양원 거주인은 “오늘 못 한 사람들은 못 한다. 따로 나가거나 이런 건 없다”라고 답했다. 시설 직원도 거주인의 증언을 뒷받침했다. ‘거소투표하지 않은 사람은 투표를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에 “본인이 원하면 보호자나 우리가 모시고 가나, 여기서 (거소투표를) 안 하겠다고 하는 분들은 거의 안 간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모시고 나간 적은 있느냐”는 질문엔 “따로 나간 적은 없다”고 밝혔다.

거소투표는 투표장 접근이 어려운 사람들도 시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투표장 설치가 어려운 섬에 위치하거나, 병원에서 의료지원을 상시로 받아야 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요양원’이나 ‘장애인거주시설’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거소투표하는 것은 예외적 투표 행위 대상을 과도하게 넓게 해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B시설에서 거소투표한 사람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거소투표 신청 대상자가 아니다. 이들은 선거법 38조 4항에서 규정한 거소투표 신청가능자 중 ‘거동할 수 없는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B시설 거주인들은 발달장애인들로 거동에 어려움이 없었다. 실제 B시설은 기표소를 경사로 없는 무대 위에 설치했으며, 모든 투표자는 투표장까지 걸어와 어떠한 지원인 없이 자력으로 기표소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선관위는 암묵적으로 이들의 거소투표를 허가하고 있다. 거소투표 기표소 설치 신청자를 규정한 선거법 149조에 ‘장애인거주시설의 장’이 있긴 하나 이는 거주시설에 ‘거동할 수 없는 자’가 거소투표를 신청한 경우 시설장이 기표소 설치를 요구할 수 있다는 규정이지, 이러한 요건 충족 없이 ‘장애인거주시설’이라는 이유만으로 거소투표 기표소 설치를 요구할 수 있다는 규정은 아니다.

이처럼 거소투표자의 표는 일반 투표장에서 투표하는 유권자의 표에 비해 너무나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정신적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거주인들의 비밀 투표권은 긴장감 없이 침해되기도 했다. 일반 투표장에서 엄격하게 진행되는 신분확인 절차, 투표용지 관리, 투표 참관 등의 절차는 모두 ‘선택’에 맡겨져 있고, 중간에 표가 유실되어도,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기표해도 국가는 이를 감시하지 못한다. 현재는 거소투표에 대한 감시를 규정한 법이 없어 이 모든 허술한 절차가 ‘법을 준수’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시설 거소투표의 집행과 표 관리 모두 시설장의 책임 아래 있다.

‘평등선거’를 회복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민간에 선거 진행을 ‘위탁’하는 형태의 기관/시설 거소투표를 없애고, 거소투표가 가능한 대상을 엄격하게 규정하는 것이다. 더 이상 거소투표가 ‘거동할 수 없는 자’도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투표장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알리바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장애인도 투표장에서 투표하면 된다. 다른 모든 국민과 동등하게.

후보자 공보물은 거소투표용지와 함께 우편으로 전달된다. A요양원에는 이 우편이 거소투표 하루 전날인 6월 4일 도착했다. 일과가 오전 6시 30분부터 밤 9시, 취침시간까지 빼곡히 들어차 있는 요양원에서, ‘하루’라는 시간은 공보물을 꼼꼼하게 따져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보기 어렵다.

거소투표가 시작되었다. A요양원은 신분증 검사를 한다고 했으나 정작 선관위 직원이 앉아 있던 책상 위엔 거소투표 신청자 명단도 없었다. 몇 명의 거주인은 신분증 복사본을 내밀었다. 흑백으로 복사된 사진때문에 얼굴을 알아보기 힘든 경우도 있었지만, 선관위 직원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그저 거소투표용지에 적힌 이름과 신분증에 적힌 이름을 대조하는 정도였다. 신원확인이 끝나자 시설은 신분증을 다시 가져갔다.

중증발달장애인이 입소해있는 B장애인거주시설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B시설은 거주인 162명 중 44명이 거소투표를 신청했다. 시설 직원에게 선거 관련 정보를 어떻게 전달했는지 묻자 ”각 방을 담당하는 직원이 거주인들에게 공보물을 한 번씩 읽어줬다”고 한다. 그리고 ”이분들이 다들 인지능력이 많이 떨어지셔서 그냥 투표에 ‘참여’하는 데 의의를 두려고 한다”라고 덧붙였다.

B시설에서는 신분증 확인 절차조차 없었다. 시설 직원 한 명이 입구에 서서 투표장으로 들어오는 거주인을 눈으로 확인하고 명단에 동그라미 표시하는 것이 ‘신원확인 절차’의 전부였다.

* 장애인언론 비마이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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