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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다고 살이 빠져?”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지” 채식주의자들이 명절 친척집에 가면 듣는 말들

조금의 배려만 있으면, '고기 없는 추석'은 가능하다

자료사진.
자료사진. ⓒAlexander Spatari via Getty Images

채식인들은 명절이 고달프다. 가뜩이나 다같이 모여 똑같은 식사를 하느라 불편한데, ‘왜 고기를 안 먹니?’ ‘다이어트하니?’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지’ ,‘골고루 먹어야 머리가 잘 돌아가서 공부도 잘하지’  같은 질문 세례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채식인은 ‘남들과 다른 식단’을 고수한다는 이유로 평소에도 ‘특이하다’는 시선에 시달리고, 간섭과 지적을 받기 마련이다. 명절은 바로 그게 극에 달하는 날이다. 

고기를 먹지 않는 생활을 선택하는 이들이 한국에도 점점 늘고 있다.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지 않는 잔인한 도축 과정, 육류 산업의 비대화가 환경을 파괴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채식 식당이 늘어나고 예전보다 채식 재료를 쉽게 구할 순 있지만, 여전히 채식인을 배려하는 사회적인 노력은 부족하다.   

고기 음식이 넘쳐나는 추석을 앞두고, 허프포스트가 채식인들의 고충을 들어봤다.

 

“2박 3일 동안 밥, 고사리, 김만 먹으면서 먹지도 않을 육전을 부쳤다” : 작은 배려가 큰 변화 만든다

'좋은 날엔 역시 고기?'
'좋은 날엔 역시 고기?' ⓒIm Yeongsik via Getty Images

30대 남성 옐썬(예명)씨는 해산물은 물론이고 우유, 계란 등 동물 관련 생산물은 전혀 먹지 않는 완전 채식주의자, 비건이다. 그는 “2박 3일 동안 밥, 고사리 나물, 김만 먹으면서 나는 먹지도 않을 육전을 부쳤다”고 지난 명절을 회고했다. 집에 미리 준비해 쌓아둔 음식들이 있는데 혼자 밖에 나가 사먹고 올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는 “(3일 동안 식사를 부족하게 하니) 사실 억울한 마음도 들고 명절에 친척집에 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면서도 “다행히 친척들이 고기를 강권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20대 여성 경화씨는 “명절에는 내가 먹을 음식을 미리 따로 한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뭘 먹고, 뭘 안 먹는지 식사자리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경화씨는 “(가족들이) 육식을 강요하진 않지만 유별나다고 말씀하시긴 해서 불편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반면 30대 여성 은아씨는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는 데 문제가 없는 편이다. 친척들은 채식주의를 독특하게 여기기는 하지만 굳이 간섭하지는 않는다. 또 은아씨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어머니와 일부 친척들은 고기가 고명으로 들어가는 떡국이나 잡채는 요리할 때 고기를 맨 마지막에 넣는다. 고기를 넣기 전, 은아씨의 몫을 따로 빼놓을 수 있게 만드는 배려다. 

차례를 생략하는 대신 외식을 하는 가족들이 늘어나면서 명절 식사가 편해졌다는 이들도 있었다. 40대 여성 연우(예명)씨는 평소 명절 풍경에 대해 “가톨릭식으로 기도만 하고 다같이 한정식 외식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친척 어른들이 ’(고기를 안 먹으니) 전복을 하나 더 먹어라’, ‘이 나물이 맛있다’는 말씀은 하시지만 불편한 정도는 아니고 일상 대화를 나누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런다고 살이 빠져?”, “풀도 생명 아니야?”, ”왜 너만 튀려고 하니?” 

'비건 송편'을 만들거나 사서 먹는 방법도 있다.
'비건 송편'을 만들거나 사서 먹는 방법도 있다. ⓒSUNGSU HAN via Getty Images

채식을 하는 가족에 대한 거부감이 식생활 자체에서 비롯되진 않는다. 그 감정은 사실 ‘가족과 다른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한 책망에 더 가깝다. ‘일년에 몇 번 본다고 그걸 꼭 안 먹어야겠냐’는 시선으로 보는 친척들은 어디에나 있다. 채식을 신념이 아니라 다이어트 목적이나 ‘유행 따라 잠깐 하는 것’의 문제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30대 남성 필석씨는 다이어트 목적이 아니었는데도 채식을 하면서 어머니로부터 “그런다고 살이 빠지냐”는 타박을 들었다. 그는 “엄마도 고기를 특별히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평소에 채소를 주로 드시는데도 ‘고기 먹어야 힘이 난다’며 나를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가급적 비건을 지향하는 식생활을 하고 있는 20대 여성 민정씨 역시 “엄마에게서 유별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말했다. “특이해지고 싶어서 채식을 한다고 생각하세요. 엄마도 고기를 좋아하시지 않으면서 ‘왜 너만 튀려고 하느냐’고 하시고요. 집에서는 제가 해먹으면 되는데, 가끔 가족끼리 외식할 때 갈만한 식당이 별로 없어서 그럴 때 불편해 하시죠.”

채식을 굳이 반대하지 않는 가족이라도, 환경 문제에 관심 없다면 이유를 설명하기도 난감하다. 채소와 해산물을 먹는 ‘페스코’ 채식을 하는 고경화씨는 “채식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친척 어른들이 물어보면 ‘공장에서 도축하는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고기를 안 먹는다’고만 말한다”고 말했다. “도축 과정이 비윤리적이라는 건 다들 아니까, 그렇게 말하면 공감해주시고 더 이상 질문을 안 하세요. 다른 사람들에게 ‘동물의 고통‘을 이유로 채식한다고 했더니 꼭 ‘과일이나 풀도 생명’이라는 답이 돌아오더라고요.”

 

개인의 특성 무시하는 명절 문화, 좋은 날은 고기로 기념하는 문화 바뀌어야

'달걀 대신 카레와 밀가루로 두부를 부쳐낼 수도 있다'
"달걀 대신 카레와 밀가루로 두부를 부쳐낼 수도 있다" ⓒSUNGSU HAN via Getty Images

허프포스트와 인터뷰를 한 채식주의자들은 ‘가족이 딱히 고기를 좋아해서 갈등이 생겼다’는 경우보다 ‘가족이 고기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아도 다같이 뭔가를 해야 한다는 분위기, 즉 가족이 먹을 때는 너도 먹어야 한다는 문화 때문에 갈등이 생겼다’는 경우가 더 많았다.

“조부를 모시고 사는 6인 가족으로 20년 넘게 손님을 수없이 치르며 지냈다”는 은아씨는 “명절이면 수많은 친척들이 한데 모인 까닭에 개인 의견은 당연히 묵살됐고, 그런 분위기가 싫었다”고 말했다. “공장처럼 음식을 해대는 분위기에서는 개인별 식단이라든지 비선호 음식이라든지는 선택지로 꺼내지도 못하죠. 아무리 명절모임이라도 최소한 계획을 갖고, 결과적으로 먹을 만큼만, 진짜 먹을 음식만 만드는 방향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날엔 고기’라는 문화가 불필요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경화씨는 “아버지는 제 채식을 존중하시지만, 그래도 명절은 기념해야 하는 날이라는 생각에 한우를 사오시곤 한다”며 “고기를 통해서 명절을 즐기는 문화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채식인을 배려한 식단을 만드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채식 식당을 소개하면서 채식 제품도 판매하는 서비스 ‘채식한끼’의 라연주 전략 매니저는 허프포스트에 “올 추석을 앞두고 채식한끼 몰에서 식물성 대체육으로 만든 너비아니, 채식 만두, 비건 크래커가 가장 많이 팔렸다”며 전통적인 차례상 음식도 채식으로 대체하려는 흐름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달걀 옷 대신 카레 가루를 푼 밀가루 물에 부친 전, 고기 대신 담백한 두부로 빚은 동그랑땡, 건버섯과 다시마를 우린 물로 끓여낸 탕국 등이 간편식으로 나와 더 건강하고 맛있는 한 상을 충분히 차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수진 에디터: sujean.park@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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