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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6월 16일 14시 57분 KST | 업데이트됨 2020년 06월 16일 15시 08분 KST

미국 연방대법원의 기념비적 판결 : 성소수자 직원 차별은 위법이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된 사람들이 소송을 냈고,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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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조지프 폰즈씨가 연방대법원 앞에서 레인보우 깃발을 흔들어보이고 있다. 연방대법원은 성적지향이나 젠더 정체성에 따른 차별은 민권법 제7조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워싱턴DC. 2020년 6월15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성적지향이나 젠더 정체성를 이유로 직원을 해고하는 것은 1964년에 제정된 민권법 제7조에 위배된다고 15일(현지시각) 판결했다. 2015년 동성결혼 합헌 판결에 이어 성소수자 인권운동 역사에 남을 만한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판결이다.

연방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생물학적 성별(sex)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기존 법률이 성적지향이나 젠더(gender)에 의한 차별까지도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단지 동성애자이거나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직원을 해고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번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미국 28개주에서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직원을 해고하는 게 합법이었을 만큼 성적지향이나 젠더 정체성에 따른 직장 내 차별이 여전했다. 이 문제를 놓고 수십년 동안 투쟁해왔던 LGBT(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인권운동가들은 트럼프 시대에 나온 이 뜻밖의 승리를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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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2015년 동성결혼 합헌 판결에 이어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판결로 평가된다.

 

6대 3으로 내려진 이번 판결에서 보수 성향의 대법관 두 명은 네 명의 진보 성향 대법관과 의견을 같이했다. 연방대법원장 존 로버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했던 닐 고서치 대법관이 그 주인공이다.

총 세 개의 비슷한 사건을 묶어서 진행된 이번 재판의 법적 쟁점은 미국 민권운동 역사의 기념비적인 성과물인 1964년 민권법 제7조의 ”성별(sex)”을 어디까지 해석할 것인지에 집중됐다.

이 조항은 ”인종, 피부색, 출신 국가, 성별, 종교”에 따른 차별을 금지했지만 ”성별”의 의미를 따로 정의하지는 않았다. 법이 제정될 당시에는 흑인이나 여성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앞서 트럼프 정부는 이 조항이 성적지향이나 젠더 정체성에 따른 차별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다는 의견을 연방대법원에 제출했다. 1968년에 법이 제정됐을 당시에 의원들이 염두에 둔 건 여성에 대한 차별일 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는 것. 그러므로 이 조항은 생물학적 성별에 따른 차별 금지의 의미로만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판결문(PDF)을 작성한 고서치 대법관은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차별하는 것은 생물학적 성별에 따른 차별을 전제하지 않고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즉,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직원을 해고하는 것은 ”그가 다른 성별이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특성이나 행위”를 문제 삼아 해고하는 것과 같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개인을 성별에 의해 차별하는 행위 없이 그 사람을 동성애자 또는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서치 대법관이 판결문에서 밝혔다. ”그와 같은 결정(해고)에 있어서 성별은 필연적이고 부인할 수 없는 역할을 수행하며, 이는 제7조가 금지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반면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은 법원이 입법기관의 역할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려면 이 조항을 ‘확대 해석’할 게 아니라 의회가 법안을 보완하거나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브렛 캐버노 대법관은 법원이 어떤 조항의 의미를 해석할 때는 ”일반적인” 의미에 따라야 한다는 논리로 반대 의견을 밝혔다. 제7조에 명시된 ”성별”에 따른 차별에 성적지향이나 젠더 정체성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판결에 대해 ”그들이 판결을 내리면 우리는 그 결정들을 따르는 것”이라고만 답했다. 트럼프 정부는 그동안 성소수자 인권 보호 장치들을 무력화하거나 약화시켜왔다는 비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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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2019년 10월8일 - 트랜스젠더 애이미 스티븐스씨가 연방대법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미시건주 디트로이트의 한 장례식장에서 일하던 그는 휴가 기간 동안 트랜스젠더 수술을 받고 돌아오면 여성 유니폼을 입고 손님들을 맞이하겠다고 회사에 통보했다가 해고를 당했다. 그는 지난달 신장 질환으로 사망했다.

 

법원은 이번 판결에 앞서 두 개의 사건을 묶어서 심리했다.

조지아주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제럴드 보스톡씨는 게이 소프트볼팀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며 이는 민권법 제7조에 위배된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하급심 재판에서는 모두 패소했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를 뒤집었다.

뉴욕에서 스카이다이빙 인스트럭터로 일하던 도널드 자다씨는 한 여성 고객이 자신과 단 둘이 다이빙에 나서야 하는 상황을 불편해하자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100% 게이”라고 말한 이후 직장에서 해고됐다며 같은 조항을 근거로 소송을 냈다.

젠더 정체성 관련 쟁점은 미시건주 디트로이트의 한 장례식장에서 근무하던 트랜스젠더 애이미 스티븐스씨에 의해 추가됐다. 그는 성전환수슬을 받겠다는 계획을 밝혔다는 이유로 6년 동안 근무했던 직장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며 이는 민권법 제7조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안타깝게도 원고 세 명 중 이번 판결을 직접 확인한 건 한 명 뿐이다. 자다씨는 2014년 사고로 사망했고, 스티븐스씨는 지난 5월 신장 질환으로 숨졌다. 

보스톡씨는 ”우리를 이 역사적인 순간으로 이끈 이 과정에 참여한 것이 자랑스럽다”는 소감을 밝혔다. 

다만 이번 판결로 모든 쟁점이 사라진 건 아니다. 성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연방법의 다른 조항에서도 이번 판결의 해석이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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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미국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성지' 스톤월 앞에 모인 사람들. 뉴욕. 2020년 6월15일.

 

무엇보다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것을 용인할 것인지 여부가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로 남아있다. 10월부터 진행될 재판이 그 주요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필라델피아 시 정부는 이 지역 천주교 교구의 복지단체가 차별금지법을 어기고 동성커플의 양부모 등록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입양지원 사업에서 이 단체를 배제시켰다. 그러자 이 단체와 이 단체에 속한 양부모들은 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만약 법원이 천주교 단체 쪽의 손을 들어줄 경우, 종교적 신념에 따라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것이 허용된다는 의미가 된다. 차별할 수 있는 ‘예외적인’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게 되는 셈이다. 종교적 신념에 관련된 마약 사건을 다룬 1990년 연방대법원 판례에서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예외가 인정되지 않았다.

연방대법원은 2018년 판결에서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동성 커플에게 웨딩케이크 판매를 거부한 콜로라도주 한 제과점 주인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다만 당시에는 매우 좁게 관련 조항을 해석한 탓에 이 판결이 다른 사건들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고서치 대법관은 이번 판결이 종교의 자유를 보호한 다른 법률에 관련된 쟁점들을 다룬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과 민권법 제7조가 어떻게 연관될지는 ”향후 사건들”에 대한 재판에서 별도로 따져봐야 할 문제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