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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 노동운동의 계승 단절'에 대해…

ⓒhuffpost

대안고등학교 학생이 인터뷰를 하겠다고 찾아왔다. 학생들이 각자 선택한 주제에 따라 역사기행을 다녀와야 하는데 그 학생은 ‘노동 열사’를 주제로 선택했고 그중에 나에 대한 인터뷰가 포함돼 있다고 했다. 야간 수업이 있던 날이어서 강의를 끝낸 뒤 텅 빈 강의실에 마주 앉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날 밤 그 청소년이 했던 많은 질문들 중에서 마지막 두 개만 소개한다.

“일제 강점기 북쪽 지역에서는 변혁적 노동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북방 노동운동의 계승 단절이 한국 노동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통일 이후의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어떤 전망을 갖고 계시나요?”

그 일이 무려 7~8년쯤 전이다. ‘북방 노동운동의 계승 단절’이란 표현이 오래도록 선명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 질문에 대해 뭐라고 답했는지 자세히 떠오르지 않지만 이 정도로 답변을 얼버무렸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러시아 10월 혁명이 한국 노동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러시아와 맞닿은 북쪽 지역의 노동운동이 훨씬 더 변혁 지향적이었을 것이다. 해방 공간에서 노조 간부들은 대부분 ‘보도연맹’에 가입했다가 한국전쟁 와중에 학살당했기 때문에 노동운동은 거의 ‘씨가 말랐다’고 할 수 있다. 분단을 겪지 않고 한반도 북쪽 지역의 노동운동이 한국 노동운동의 전통으로 이어졌더라면 노동운동이 지금보다 훨씬 더 활발하게 전개되고, 변혁성도 더 강하게 유지했을 것이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으로부터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새로 시작해야 하는 비극도 없었을 것이다.”

통일 이후의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더욱 궁색한 답변을 했다. “이북의 저가 노동력이 물밀듯 남한으로 내려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전반적으로 저하시키는 현상이 발생할 것이므로 노동운동은 더욱 왕성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노동운동의 사상적 기반을 충실히 다지는 일을 지금부터 누군가는 시작해야 한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지금 통일 이후의 미래에 대해 정확하게 전망하는 학자가 있다면 그 사람이 오히려 사기꾼일 가능성이 많다”고 마무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학생은 역사기행의 경험을 정리하면서 “하종강 선생도 일제 강점기 조선반도 북방의 노동운동이나 통일 이후의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무식했다”고 기록했을지도 모른다. 그 일을 겪은 뒤 매 학기 첫 수업에서 그 청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 정도 수준으로 사회과학 학습을 한 학생들은 내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노라고…. 장차 노동자가 될 것임에도 노동문제가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평범한 대학생들이 내 강의의 중요한 대상이라는 설명으로 한 학기 수업을 시작한다.

2~3년쯤 전 학기 첫 수업에서도 같은 설명을 했다. 강의가 끝나고 한 학생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5년 전 그 청소년이 바로 접니다.” 대안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군 복무를 마치고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에 입학했다는 것이다.

ⓒHandout . / Reuters

강원도 가는 고속도로에서 남북정상회담 중계방송을 들었다. 요란한 박수와 카메라 셔터 소리에 묻혀 방송 진행자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아 방송에 몰입하느라고 고속도로 출구를 아차 하는 순간에 지나치기도 했다. 남북정상회담에 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 학생에 대한 추억이 새삼 되새겨지곤 했다.

국가보안법상으로는 여전히 반국가단체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지도자와 대한민국 대통령이 사이좋게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장밋빛 분위기 속에서도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다. 파인텍 노동자들은 75미터 높이 굴뚝에서 목숨을 건 고공농성을 170일 넘게 진행 중이고, 구미 아사히글라스 해고 노동자들은 1000일 하고 한 달이 넘도록 길거리에서 싸우고 있다. 30만원짜리 구두를 만들며 7000원 공임을 받았던 제화 노동자들은 8년 만에 공임을 2000원만 올려달라며 농성하다가 회사가 동원한 용역경비들과 맞서고 있고, 주한미군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반대하는 경북 성주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80년대를 방불케 하는 모습으로 경찰에 저항하고 있다.

우리 세대가 모두 죽은 뒤 이 세상을 이끌어 갈 주인공들은 지금의 청소년들이다. 일찍이 7~8년 전부터 통일 이후의 노동운동을 고민했던 청소년과 같은 새싹들이 미래 사회 우리의 희망이 될 것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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