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hiannon Adam for Huff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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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6월 17일 13시 53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6월 18일 09시 48분 KST

"나의 십대와는 다르길 바란다" 한 영국 초등학교 교사가 교실에서 '평등'을 가르치는 이유

브렉시트 다음 가는 화제의 인물이 됐다

Rhiannon Adam for HuffPost

Photo by Rhiannon Adam

[런던=허프포스트 영국] 영국 버밍엄의 초등학교 교사 앤드류 모팻은 자신의 수업계획서 하나가 이토록 전국적인 논란을 불러 일으킬 거라곤 생각하지 못 했다.

모팻의 계획서에는 초등학생들에게 다양성과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무슬림이 다수인 이 지역의 학부모들은 이에 대해 요란하게 항의했다. 버밍엄의 한 마을에서 일어난 이 논란은 곧 영국에서 브렉시트 다음으로 큰 화제의 뉴스가 되었다. 

시작은 지난 1월, 한 학생의 어머니가 지역 신문과 인터뷰를 하면서부터였다. 모팻이 재직 중인 파크필드 커뮤니티 스쿨에서 10살 딸을 빼낼 것이며, 교실에서 동성 결혼에 대해 배우기에는 아이들이 아직 너무 어리다고 말한 내용이었다. 모팻은 인터뷰를 읽고 매우 당황했다.

모팻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의 평등을 지지하는 어린이책들을 골라 설계한 교육 프로그램 ‘노 아웃사이더’(No Outsiders)로 100만 달러 상금을 주는 영국의 저명한 교육상인 바키 재단 글로벌 교사상 최종 후보까지 오른 바 있다. 하지만 분노한 학부모들은 이와 관계 없이 모팻이 “가족관에 대한 도덕적 위치를 바꾸고 있다”, “이성애적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동성애도 괜찮다고 생각하도록 전환시키고 있다”며 비난했다.

허프포스트 영국판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교사 앤드류 모팻을 만났다.

(*아래 대화는 명확한 전달을 위해 편집되었습니다.)

 

-‘노 아웃사이더’는 어떻게 시작한 것인가?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경제학 기반 씽크탱크인 경제연구위원회(Economic Research Council)의 자금 지원을 받아 ‘노 아웃사이더’라는 단체가 생겼다. ‘노 아웃사이더’는 초등학교에서 섹슈얼리티에 어떻게 가르칠지를 연구하는 2년짜리 학술 프로젝트였으며 관련 분야에서는 최초였다. 경제연구위원회 측에서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와 가입했고 그때부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개인적으로는 8년 동안 교사로 일하며 그림책 제작 등 학생들의 정서적 소양과 관련된 일을 해온 경력이 있다.

 

-영국 전역에서 활용하고 있다던데?

=전국에서 잘 활용되고 있다. 매주 나는 영국의 학교들을 돌며 ‘노 아웃사이더’ 관련 행사에 참석한다. 효과가 있기 때문에 학교들도 반긴다.

내가 있는 학교에서는 지금은 어려움이 있지만, 그건 단 한 학교의 일이다. 문제가 없는 수백 개의 학교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하고 있다. 아이들은 ‘노 아웃사이더‘를 아주 좋아한다. ‘노 아웃사이더’가 가진 의미를 믿는다.

 

-‘노 아웃사이더’는 4년 활동 기간 동안 항의를 받지 않았지만, 올해 갑자기 부모들의 반발이 있었다.

=학교 전체가 충격을 받았다. 4년 동안 우리는 ‘노 아웃사이더’ 워크숍을 38번 열었고 학부모들이 찾아와 책들을 살펴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의하고 지지의 사를 표하던 학부모들이 기사화가 되자 갑자기 자기들은 몰랐다며 대규모 시위를 열었으니, 충격이었다.

일부 아이들과 부모들이 학교 앞에서 ‘모팻을 내보내라’고 외칠 때는 정말 끔찍했다. 어떤 교사도 그런 말을 들을 일이 없길 바란다.

 

-반대하는 학부모들은 당신이 ‘개인적인 믿음’을 퍼뜨린다고 비난했다. 그에 대한 당신의 대답은?

=나는 아무것도 퍼뜨리지 않는다고 말하겠다. 나는 평등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노 아웃사이더’는 우리가 틀을 가지고 평등과 다양성에 대해 가르칠 수 있게 해준다. 모든 아이들이 자신이 이 학교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바로 그 틀이다.

나는 모든 아이들이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길 바란다. 그리고 모든 부모가 원하는 것도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아이가 괴롭힘을 당하길 바라는 부모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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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하는 부모들이 이해되는 면도 있다고 했다.

=공감하지는 않지만, 왜 그러는지는 이해한다. 나는 4년 전 어려움을 예상하고 일부러 그 학교를 찾은 것이다. 변화를 위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만두고 싶은 때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 이 일이 왜 중요한지 한 번 더 깨닫게 된다. 변화는 늘 쉽지는 않다. 이미 성취한 부분들에 안주하지 않고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십대 동성애자로서, 당신의 학창시절은 어땠나?

=아주 힘들었다. 롤 모델이 없었다. 그냥 자기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성소수자는 TV에 나오지 않았다. 어린 시절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누구와 공감할 수 있는지를 끝없이 찾았다. 나는 6살 때쯤 내가 다른 남자아이들과는 다르다고 느꼈으며 아웃사이더라는 느낌이 강했다. 

중학생 때 게이라는 걸 확실하게 알았다. 학교에서 커밍아웃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스스로가 게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을 찾아 롤모델로 삼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없었다. 내가 12살이었던 1984년에 보이 조지는 아직 커밍아웃하기 전이었다. 나는 보이 조지의 포스터를 방에 잔뜩 붙여놓았지만 그가 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그냥 흥미롭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프랭키 고스 투 할리우드, 브론스키 비트는 스매시 히트에서 게이 이야기를 하기는 했다.) 심지어 내 학창 시절에는 다들 프레디 머큐리가 이성애자라고 생각했다. 

 

-그때 ‘노 아웃사이더’ 같은 것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 제발 그랬다면! 게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이야기라도 꺼낼 수 있었다면. 아버지만 두 명, 혹은 어머니만 두 명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았다면. 게이 교사가 있었다면 그것도 멋졌을 것이다. 나는 너무 두려워서 27세가 될 때까지 커밍아웃하지 못했다. 엄청나게 괴롭힘을 당하기 때문에 이야기도 꺼낼 수 없었다. 16살 때 영어 수업시간에 매주 1시간 반 동안 토론을 했는데, AIDS 이야기가 나오고 동성애자와 관한 주제가 나왔다. 수업 중 한 남자아이가 “나는 게이들은 전부 벽 앞에 줄세워 놓고 총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다들 환호했다. 교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런 것을 못 하게 하는 ‘노 아웃사이더’ 같은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혹은 커밍아웃한 게이가 있었다면 나의 십대는 정말 달랐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 일을 시작한 이래 가장 힘든 2개월을 보냈지만, 동시에 정말 많은 관심과 지원을 받았다. 차별하지 않도록 평등을 가르치는 ‘노 아웃사이더’는 초등학교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요란한 항의가 있었지만 단 한 학교도 내 강연 섭외를 취소하지 않았다. 그러니 미래에 대한 희망은 있다. 80년대에 자라나며 소외감을 느꼈던 내 경험담을 생각해 보라. 나는 그 어떤 아이도 그런 경험을 하길 바라지 않는다. 성소수자여도 괜찮다, 너는 잘 살 것이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허프포스트코리아가 허프 국제 에디션들과 함께 진행한 프라이드의 달 프로젝트 ‘프라이드를 외치다 Proud Out Loud’의 여섯 번째, 영국편 인터뷰입니다. 다른 인터뷰들은 여기에서 더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