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공덕동 휘발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사이코지만 괜찮아'에게 법정제재를 내린 이유는 '성기 희화화'다

다소 불공평해 보이는 결과다.

  • 라효진
  • 입력 2020.09.03 17:26
  • 수정 2020.10.16 10:33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 ⓒtvN

시도때도 없이 옷을 벗어젖히는 남자가 있다. 국회의원 아들이라는 이 남자는 조증 환자다. 클럽에서 돈을 내지 않고 도망칠 때도, 정신병원에 붙잡혀 와서도 마찬가지다.

그의 노출 욕구는 남녀를 불문하고 발현된다. 남자 보호사 앞에서 ”누가 집중해서 쳐다보면 그렇게 좋더라”며 발가벗는가 하면, 도로에서 여성 운전자의 차를 멈춰 세우고 ‘자연인 상태’를 선보인다.

그런데 운전자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화려한 차림과 도도한 표정의 여자는 겉옷 속 알몸을 꺼내 보인 남자를 하찮게 바라본다. 특히 여자의 시선은 한곳에 머문다. 여자는 말한다. ”이래서 아담, 아담 하는 거였어? 아담해서?”

 

6월27일 방송된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 3회 속 이 장면을 두고 온라인은 또 한 번 시끄러웠다. ”아담하다”가 성희롱성 발언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이날 방송에서는 극 중 고문영(서예지)이 상의를 탈의한 문강태(김수현)의 몸을 만지며 ”나랑 한 번 잘래”라고 묻는 대목까지 나오며 논란이 커졌다. 이와 관련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접수된 항의 민원은 약 269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방심위 방송심의소위원회는 지난달 26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해당 방송을 법정제재(주의) 의견으로 전체회의에 상정했다. 이 같은 결정 이유는 다음과 같다. ”드라마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부각하기 위한 표현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특정 성을 희화화하고 성희롱과 성추행을 정당화할 우려가 있는 내용을 방송한 것은 제작진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법정제재는 방심위가 내릴 수 있는 가장 강한 징계 중 하나로, 매년 수행하는 방송평가에서 감점을 받는다. 

비슷한 시기에 방송된 SBS ‘편의점 샛별이’도 법정제재를 받았다. 이 드라마는 1회부터 미성년자인 고등학생이 성인 남성에게 담배를 사다 달라고 부탁하고 키스를 하는 장면, 불법 오피스텔 성매매가 적발되는 현장 묘사, 노래방에서 섹시 댄스를 추는 여자 고등학생들의 몸매를 위아래로 훑는 카메라 워크, 방 안에 걸린 여성 나체 그림들, 신음소리를 내며 여성 신체가 강조된 19금 웹툰을 그리는 웹툰 작가 등으로 문제가 됐다. 시청자들이 제기한 민원은 약 7000여 건에 달한다.

방심위는 이 드라마에 ”성인용 웹툰을 ’15세 이상 시청가′ 등급의 드라마로 제작하는 과정에서, 시청자에게 불쾌감과 혐오감을 유발할 정도로 제작진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을 드러냈으며, 방송사 자체심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비속어나 욕설 등이 반복돼 법정제재가 불가피하다”며 징계 처분을 가했다.

SBS '편의점 샛별이'
SBS '편의점 샛별이' ⓒSBS

그런데 이 결과, 좀 불공평해 보인다.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고문영이 문강태의 상체를 멋대로 만지고 성희롱성 발언을 한 건 분명 문제다. 허나 방심위가 방송국 측의 관련 의견을 청취하며 추궁했던 내용 중엔 ‘성기 희화화’가 있었다. 당시 회의에서는 ”남성의 누드 소동이 아니고 여성의 누드 소동이었다면 더 심한 징계가 내려졌을 것”, ”남성 성기를 코끼리에 비유해 희화화했다” 같은 말들이 오갔다.

여성만을 골라 커다란 코트 속에 숨긴 알몸을 보여 주는 ‘바바리맨‘의 존재는 도시전설이 아니다. 특히 여중, 여고, 여대를 나온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본 경험이 있을 만큼 흔해 빠진 성희롱이다. 그러나 방심위는 ‘양성평등‘의 저울을 기계적으로 맞추기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 여자 ‘바바리맨’을 운운한다. 과연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바바리맨’이, 19금 웹툰을 가족 드라마로 만들겠다는 어불성설 발상으로 1회 만에 미성년자 성 상품화와 노골적 성매매 현장 묘사 등을 자행한 ‘편의점 샛별이’와 같은 제재를 받아야 하는지 의문인 이유다.

성기의 코끼리 비유도 마찬가지다. 최근 웹툰작가 기안84가 네이버 웹툰 ‘복학왕’에서 남자 상사에게 성상납해 정사원이 된 여성 인턴을 묘사하며 키조개와 이를 꿰뚫는 기다란 물체를 그린 건 아직까지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러나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바바리맨‘을 등장시키고 성기 부분을 코끼리로 가렸다며 중징계를 받게 생겼다. 둘 다 이제는 사라져야 할 전형적 표현이라 한들, 불공평하다는 인상이 남을 수밖에 없다. 방심위가 이 위화감의 원인을 모른다면, 실제적 ‘양성평등’과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이후 정부는 양성평등에 대한 대책을 내놨고, 방심위에도 적용했다. 그러나 방심위 위원들은 최근까지도 여성혐오성 발언을 했던 것이 현실이다. 2018년 11차 음란 등 선정성정보, 연예인 화보촬영 원본이 본인 동의 없이 유출된 건을 심의하던 위원들은 ”여자들이 옷을 벗고 저런 사진을 찍냐. 왜 찍냐”고 묻고 ”상당한 금전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안다”며 주거니받거니를 하곤 했다.

더 이상 방송 등 문화 콘텐츠는 양성평등에 게을러서는 안 되는 시대가 왔다. 하물며 이를 판단하고 지도하는 권위를 갖춘 곳에서 체감할 수 없는 기계적 평등을 제시하는 건 분란의 불씨만을 제공할 뿐이다.

‘편의점 샛별이‘가 법정제재를 받은 날, 여성 탈북민들의 속옷 쇼핑 이야기를 다루며 가슴 크기를 희화화해 의견제시 처분을 받은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측은 방심위에 불려나와 이렇게 말했다.

″일선 PD들이 이런 양성평등 문제에 대한 인식 자체가 굉장히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번에 다시 영상을 보면서 예전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이제는 굉장히 좀 불편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인식이 많이 바뀌었고, 이런 바뀐 부분들을 일선의 PD들도 느껴야 되는데, 아직도 그냥 재미 포인트로 넘어가도 되겠구나 생각하는, PD들의 의식에 변화가 없다는 게 일단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에 대해 허미숙 소위원장은 ”남성도 어느 경우 신체적 특징을 거론하면 싫지 않나”라며 ”이런 인식의 개선, 이제 시대가 변했다는 그 인식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도 적극적으로 심의에 적용하기 시작한 게 3년째”라고 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남자한테도 이러면 기분 나쁘겠지요” 류의 유치원생 상대하듯 빈약한 논리로는 심의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물론 심의를 받는 자들도 납득시킬 수 없다. 개선될 것은 공정하고 분명한 판단의 기준일 테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성차별 #여성혐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공덕동 휘발유 #사이코지만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