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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국민 간식' 떡볶이를 "병자"라고 불렀다

떡볶이 없이는 못 살아...........

50년째 영업을 하는 떡볶이 노포 ‘철길 떡볶이’. 가게 곳곳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다.
50년째 영업을 하는 떡볶이 노포 ‘철길 떡볶이’. 가게 곳곳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다. ⓒ한겨레/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그저 흔한 분식집이 아니라 어린 시절 추억이 있는 곳이에요.”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떡볶이 노포인 철길 떡볶이. 송민숙(41)씨는 10대 때부터 먹었던 ‘추억의 떡볶이’를 앞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송씨의 ‘떡볶이 고향’이다. “동네 모습은 변했지만 떡볶이집은 예전 그대로예요. 맛도 변하지 않았어요. 떡볶이 생각날 때 여기에 와요.”

영하의 날씨에도 야외 테라스에서 ‘혼떡’을 하는 직장인 이수연(33)씨는 “충정로에 떡볶이 맛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다”며 “어릴 때 먹던 옛날 떡볶이 맛”이라고 했다. 이씨는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기찻길 옆 풍경이 운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충정로에 있는 ‘철길 떡볶이’ 옆으로 경의중앙선 전철이 지나가고 있다.
서울 충정로에 있는 ‘철길 떡볶이’ 옆으로 경의중앙선 전철이 지나가고 있다. ⓒ한겨레/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떡볶이 애호가들이 찾는 철길 떡볶이는 철거 위기에 놓여 있다. 관할구청에서는 이곳을 공원 녹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가게 한쪽에는 철길 떡볶이를 보존하려는 염원을 담은 국민청원글이 걸려 있었다. 단골손님 등 600여명이 국민청원에 동참했다. 박미희(61) 사장은 “2017년부터 구청을 상대로 소송하고 있는데 최근 2심에서 졌다”며 “끝까지 이 가게를 지키기 위해 3심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재판 결과에 힘이 빠지지만 단골손님들의 응원 덕분에 다시 떡볶이를 만든다. “시어머니가 시작한 이곳을 50년째 이어가고 있어요. 떡집, 고춧가루 가게 예전 거래하던 곳과 지금도 이어가고 있어요. 옛 맛을 그대로 지키기 위해서죠. 그 맛을 여전히 사랑하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50년째 영업을 하는 떡볶이 노포 ‘철길 떡볶이’. 가게 곳곳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다.
50년째 영업을 하는 떡볶이 노포 ‘철길 떡볶이’. 가게 곳곳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다. ⓒ한겨레/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원초적인 맛의 향연

떡볶이는 오랜 시간 우리 곁에 있었다. 떡볶이는 원래 가래떡에 쇠고기 또는 해물, 버섯과 각종 채소를 간장 양념과 기름에 볶은 음식이었다. 옛 문헌에는 떡볶이가 ‘병자’(餠炙)라고 기록돼 있다. 1460년 조선전기 의관 전순의가 쓴 의서인 〈식료찬요〉에는 떡에 고기와 고추를 넣고 만든 음식을 ‘병자’라고 했으며, 1896년에 쓰인 조리서 〈규곤요람〉에도 ‘병자’가 소개되어 있다. 당시에 떡볶이는 궁중과 양반가에서 먹던 귀한 음식이었다. 그러다가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밀가루 떡에 어묵과 채소를 고추장 양념에 끓여 먹는 음식으로 변화하면서 1970년대 이후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먹는 ‘국민 간식’이 됐다.

한국쌀가공식품협회 이상효 식품전문위원(전 떡볶이연구소 소장)은 “궁중에서 먹던 귀한 음식 떡볶이가 대중화된 것은 고추장과 밀의 보급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역사가 깊은 떡볶이는 어떻게 오랜 시간 사랑을 받게 되었을까. 떡볶이는 어릴 적 추억을 자극하는 대표 음식이다. 학교 앞 분식집에서 먹던 2천~3천원 떡볶이, 친구들과 함께 먹던 즉석떡볶이 등 누구나 떡볶이에 관한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운 시절로 잠시 떠나게 하는 고향의 향수 같은 음식이다. 새로운 프랜차이즈가 많이 생겨도 옛 맛을 간직한 허름한 노포집이 여전히 인기를 얻는 것도 이 때문이다.

뭐니 뭐니 해도 빨간 떡볶이의 중독성 강한 맛이 인기 요인이다. 〈모두의 떡볶이〉를 쓴 홍신애 요리연구가는 “떡볶이에는 원초적으로 좋아하는 단맛, 매운맛, 짠맛이 다 들어가 있다”며 “계속 먹을 수밖에 없는 맛이자 질리지 않는 맛”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는 점도 떡볶이가 사랑을 받는 이유이다. 2000년대에 들어 다양한 프랜차이즈가 생기면서 떡볶이는 단순 매콤한 고추장 떡볶이에서 다양한 소스 변화를 추구하며 더욱 풍성해졌다. 로제 소스로 만든 로제떡볶이부터 크림떡볶이, 즉석떡볶이에 치즈, 오징어 등 토핑을 추가한 떡볶이 등 이전보다 더 높아진 가격과 함께 종류도 많아졌다.

<한입에 떡볶이>의 저자인 김봉경 요리연구가는 “떡볶이는 떡부터 소스까지 시대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변해왔다”며 “최근에는 채식 흐름에 맞춰 비건 떡볶이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떡볶이는 다양한 세대, 입맛에 다가가기 위해 다양한 변신을 추구했다는 얘기다. 변신의 귀재인 떡볶이는 조화력도 뛰어나다. 해산물, 육류 등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떡볶이를 먹을 때 입맛에 따라 취향껏 토핑 메뉴를 곁들일 수 있다. 라면, 콩나물, 치즈 등 어떤 재료도 잘 받아들이는 게 떡볶이의 매력”이라고 김 요리연구가는 설명했다.

부드럽고 매콤한 맛으로 인기를 끄는 로제떡볶이.
부드럽고 매콤한 맛으로 인기를 끄는 로제떡볶이. ⓒ배떡 제공
와인과 떡볶이를 파는 떡볶이 바.
와인과 떡볶이를 파는 떡볶이 바. ⓒ한겨레/허윤희 기자

국적·재료 경계 넘나들어

철길 떡볶이 사례에서 보듯 한국인에게 떡볶이는 음식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학교 앞 분식집 등 지난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맛이자, 허기진 마음을 채워주는 솔푸드다. 우울한 코로나 시대에는 위로의 대표 음식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몇해 전 등장한 부드럽고 매콤한 로제떡볶이는 한국인의 떡볶이 사랑을 더욱 불타게 했다. 한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지만, 한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을 정도. 특히 엠제트(MZ) 세대 사이에서 로제 열풍이 크게 일었다. 로제떡볶이는 고추장·고춧가루가 주재료인 일반 떡볶이 양념에 크림·우유를 넣어 만든 로제 소스에 버무린 것. 이에 발맞춰 떡볶이 전문 프랜차이즈들이 경쟁하듯 로제떡볶이를 출시했다.

로제떡볶이를 판매하는 ‘배떡’ 관계자는 “로제떡볶이를 주문하는 이들은 1인 가구, 20~30대층”이라며 “로제 인기에 2019년 론칭을 한 지 2년 만에 가맹점 500호점을 넘었다”고 말했다.

코로나 시기에도 불황을 모르는 떡볶이를 주력으로 내세운 새로운 업종도 생겼다. 와인 등 술과 떡볶이를 판매하는 이른바 ‘분식 바’다. 직접 찾아간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오프트도 그중 한곳. 매콤한 떡볶이 향기가 나는 이곳에선 비트가 빠른 랩 음악이 흘러나왔다. 가게 중앙의 바와 5개의 테이블이 있는 소박한 곳이었지만 시멘트벽이 드러난 빈티지한 인테리어에서 힙한 감성이 묻어 나왔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이들이 동업해 지난해 5월 문을 열고 1년도 안 돼 2호점을 냈다고 한다. 이곳 메뉴는 떡볶이와 튀김, 순대 그리고 하우스 와인(4천원), 와인으로 만든 칵테일 프롬주(4천원) 등이다. ‘콜키지 프리’도 가능하다.

오프트의 백영진 대표는 “튀긴 떡과 토마토소스로 만든 저희만의 시그니처 떡볶이를 만들었어요. 그 떡볶이와 내추럴 와인이 저희 가게의 주메뉴예요. ‘분식 바’라는 새 콘셉트에 관심을 갖는 20~30대가 주로 오지만 40~50대까지 많이 찾아요”라고 했다.

대형마트에 진열된 다양한 떡볶이 상품들.
대형마트에 진열된 다양한 떡볶이 상품들. ⓒ한겨레/허윤희 기자
마켓컬리의 2021년 떡볶이 밀키트 판매량이 2년 전보다 4배 증가했다.
마켓컬리의 2021년 떡볶이 밀키트 판매량이 2년 전보다 4배 증가했다. ⓒ마켓컬리 제공

밀키트도 폭발적인 인기

떡볶이 인기에 힘입어 밀키트(간편조리세트)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만큼 떡볶이가 간식에서 요리로 자리를 잡고 있다는 방증. 온라인 유통업체인 ‘마켓컬리’의 2021년 떡볶이 밀키트 판매량은 2년 전보다 4배(303%) 증가했다. 성수동 금미옥의 쌀떡볶이, 춘천 국물 닭갈비 떡볶이, 석관동 오리지널 떡볶이 등이 가장 잘 팔리고 있다.
마켓컬리 관계자는 “떡볶이는 아이와 어른 모두가 간식, 식사, 안주, 요리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메뉴이고 각기 선호하는 다양한 재료를 더해 취향에 맞추어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에서만 인기 있는 게 아니다. 떡볶이 밀키트는 코로나 특수를 타고 세계에 진출하고 있다. 케이팝, 케이드라마 등 한류 열풍에 힘입어 ‘케이푸드’ 대표주자로 자리잡았다. 관세청에 따르면 2020년 떡볶이 수출액이 5400만달러(약 640억원)로, 전년보다 56.7% 증가했다. 덩달아 떡볶이의 주재료인 고추장도 ‘케이소스’로 주목을 받으면서 수출액이 전년보다 35.2% 늘었고, 떡볶이떡 등 떡류의 수출액도 42.4%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시대에도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떡볶이. 간식으로, 한끼 식사로, 안주로 다양한 형태로 우리의 고픈 배를 채우고 있다. 취향껏 다양하게 먹을 수 있도록 옛 맛을 간직하기도 하고 퓨전 형태로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어떤 막강한 신상이 나온다 해도 떡볶이의 인기는 식지 않는다. 변신에 변신을 거듭할 뿐. 영원불멸 떡볶이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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