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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는 원더풀!" 경북 청도 한재마을은 지금 '봄 미나리' 향기로 가득하다

미나리 향만 나는 게 아니다. 삼겹살 냄새도 가득하다????

한재미나리 재배단지인 경북 청도군 청도읍 한재마을 풍경.
한재미나리 재배단지인 경북 청도군 청도읍 한재마을 풍경. ⓒ한겨레

 

“건강에도 좋고 맛도 좋고 아플 땐 약으로 쓰이고. 원더풀 미나리, 미나리 원더풀!” 최근 국제영화상을 휩쓴 영화 〈미나리〉 덕분에 먹는 미나리도 인기다. 봄 제철을 맞아 판매량도 부쩍 늘고 있다. 영화 때문에 더욱 화제가 된 미나리. 이참에 ‘인기 채소’ 미나리를 찾아 여행을 떠났다.

지난 17일 ‘한재미나리의 고향’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한재 마을을 찾았다. 한재는 청도읍 초현리, 음지리, 평양리, 상리 일대를 부르는 지명이다. 전국 미나리 생산량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미나리 생산단지’이다. 이곳에서 나오는 미나리를 ‘한재미나리’라고 부른다. 특허청의 ‘지리적 표시 등록’을 받은 ‘명품 채소’라고 할 수 있다.

한재는 산을 병풍처럼 두른 시골 마을이다. 남산, 화악산, 철마산, 오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다. 어디를 바라보더라도 푸른 산이 눈에 들어왔다. 산에는 청도의 명물인 감나무와 밤나무가 군데군데 보였다.

그 산 아래 자리한 마을은 온통 미나리밭. 한재미나리를 키우는 거대한 비닐하우스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인위적으로 온도를 높이거나 낮추지 않는 무가온 방식으로 미나리를 재배한다. 노지의 미나리보다 2~3개월 빨리 수확할 수 있다. 현재 150여 가구가 미나리 재배를 하고 있단다.

복숭아, 자두, 감 등 과수를 주로 키웠던 이곳에선 1980년대 이후부터 미나리 재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주민들은 8월에 미나리 파종을 하고 10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미나리를 수확한다. 특히 한재미나리는 3~4월이면 짙은 향과 풍미가 최고조에 이른다.

미나리는 원래 인도차이나에서 자라던 여러해살이 잎줄기채소다. 국내에서 미나리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 때부터로 추정된다. 신라시대의 학자 최치원이 886년에 지은 〈계원필경〉에 미나리에 관한 기록이 처음 나온다. 최치원이 당나라 회남 절도사인 고변의 종사관으로 일할 때 고변의 생일을 맞아 신라의 인삼과 천마를 바치며 “시골 노인이 드리는 미나리처럼 여겨 주셨으면 한다”라고 썼다. 〈고려사〉에는 미나리밭인 ‘근전(芹田)’이 나오고 미나리김치를 종묘 제사상에 올렸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미나리는 약으로도 쓰였다. 〈동의보감〉에는 미나리에 대해 “술을 먹은 뒤 머리가 아프고 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열독을 고치고, 똥오줌이 시원하게 잘 나오게 한다. 여자들 아기집에서 피가 나거나 냉대하가 나올 때, 어린아이가 열이 심하게 날 때 먹으면 잘 낫는다”라고 기록했다.

비닐하우스의 미나리.
비닐하우스의 미나리. ⓒ한겨레

미나리밭에 들어가니 땅이 축축했다. 밤에 물을 주고 낮에 물을 빼는 방식으로 미나리 재배를 하고 있어서다. 이때 사용하는 물은 화악산에서 흘러내리는 자연수와 암반 지하수이다. 물을 뜻하는 옛말 ‘미’와 나물을 뜻하는 나리가 합쳐진 미나리는 물이 있는 곳에서 잘 자란다.

20년간 미나리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 김성기(59·한고을영농조합법인 대표이사)씨는 한재미나리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재의 맑은 물과 좋은 공기를 먹고 자란 미나리는 아삭아삭하여 식감이 좋죠. 밤에는 물을 대고 낮에는 물을 빼니 미나리가 뿌리 호흡을 잘할 수 있어 땅의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어요. 그러면 미나리 향은 더 강해지고 줄기가 꽉 차게 되죠.” 게다가 한재 땅은 화산암이라 배수가 잘된다. 일부러 물을 갈아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물갈이된다.

한재미나리에 대해 설명을 하던 김씨가 기자에게 밭에서 막 뽑은 싱싱한 미나리 한 줄기를 건넸다. 미나리의 끝이 자주색이고 줄기가 굵고 속이 꽉 찼다. 겨우내 추위를 버틴 뿌리에서 싹을 올리고 봄볕에 줄기를 훌쩍 키운 미나리다. 줄기를 한 입 베어 먹으니 아삭아삭 씹히고 상큼한 향이 입안에 가득했다. ‘이게 한재미나리의 봄맛이구나’ 싶었다.

상리에서 미나리 농사를 짓는 농부 한신옥(59)씨는 봄꽃보다 미나리의 녹색 잎이 더 예쁘단다. 10~15㎝ 길이의 어린 미나리들을 볼 때 더욱 그렇다고 했다. “훌쩍 자란 어른 미나리보다 이때가 가장 푸릇푸릇하다”고 한씨는 말했다.

미나리를 키우는 한재는 예로부터 작물이 잘 자라는 비옥한 땅으로 유명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지하수 덕분에 가뭄이 없는 지역이기도 했다. ‘한재에 시집을 오면 굶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한재는 항시 들이 누렇다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곡식이 잘 자란다는 말이에요. 다른 지역이 가물어도 여긴 농사를 지을 물이 항상 많았대요. 다른 지역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워했겠어요.” (김성기)

 

청도 한재 지도
청도 한재 지도 ⓒ한겨레
미나리를 손질하는 모습
미나리를 손질하는 모습 ⓒ한겨레

 

한재 미나리 농장의 작업장들은 무척 분주했다. 수확한 미나리를 다듬고 씻고 포장하는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업장에서 만난 한 농부는 수북이 쌓인 미나리를 빠르게 손질하고 있었다. “작은 줄기, 시든 걸 떼어 버려요. 일일이 하나하나 솎아내야 하니 손이 많이 가요. 굵고 튼실한 미나리만 바구니에 담아요.” 솎아낸 미나리들은 버리지 않고 논의 퇴비로 쓰인다고 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손질한 미나리를 한재의 맑은 물로 씻어낸다. 물을 좋아하는 미나리를 말리지 않고 젖은 채로 포장 용기에 담는다.

한재에 가면 미나리 향만 나는 게 아니라 삼겹살 냄새도 가득하다. 차도를 따라 미나리 삼겹살 식당이 쭉 이어져 있다. 이 식당에서는 최고의 궁합을 자랑하는 미나리와 삼겹살을 함께 맛볼 수 있다. 코로나19로 예년보다 관광객이 줄었지만 매년 2~3월에는 주변 국도가 막힐 정도로 전국에서 온 차량이 가득할 정도였다고 한다.
코로나19로 한적한 한재 마을 길을 따라 걸었다. 산을 타고 내려오는 봄바람이 불자 미나리들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그럴 때마다 초록빛이 반짝였다. 미나리들이 보내는, 따뜻한 ‘봄 인사’ 였다.

 

 

청도읍 한재 여행 정보

가는 방법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동대구분기점에서 대구부산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청도나들목으로 나간다. 청도와 밀양을 잇는 25번 국도에서 한재로 방향으로 가는 902번 지방도를 이용하면 된다. 서울에서 청도 한재까지 차로 4시간 30분에서 5시간 정도 걸린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청도역 근처에 있는 청도공용버스정류장(054-372-1565)에서 청도읍 한재 방향(초현리, 음지리) 농어촌버스 5번을 타면 된다.

먹을 곳 청도 한재지역에는 미나리삼겹살 식당이 많다. 한재마실(0507-1416-6253), 한재 참 미나리식육식당(054-373-2866), 한재미나리사랑가든(0507-1415-7031) 등이 있다. 주메뉴는 삼겹살과 미나리이다. 쌈 채소로 먹을 수 있는 미나리는 한 접시(500g)에 8천원이다. 식당에서 미나리를 살 수 있는데, 1㎏에 1만원이다. 미나리 비빔밥, 미나리전, 미나리 볶음밥 등 다양한 미나리 요리도 맛볼 수 있다.

주변 가볼 만한 곳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 유호생태공원 안에는 청도레일바이크(054-373-2426)가 있다. 이곳은 청도천을 따라 이어진 2.5㎞(왕복 5㎞) 레일바이크 구간, 아치형 보도교인 은하수다리와 테마산책로, 시조공원 등을 갖추고 있다. 산책로에서는 이색자전거(2인승, 4인승)를 이용할 수 있다. 프랑스 남동부 지역의 프로방스 마을을 재현한 청도 프로방스(청도군 화양읍 이슬미로 272-23/054-372-5050), 감와인 숙성고와 시음장 등이 있는 와인터널(청도군 화양읍 송금길 100/054-371-1904)등은 이국적 풍경을 좋아하는 여행객들에게 추천한다.

청도/글·사진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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