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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을 '멋진 것'으로 만드는 군대 예능 '가짜사나이'

특수부대 훈련이라는 타이틀로 욕설, 고문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짜사나이' 중
'가짜사나이' 중 ⓒyoutube/피지컬갤러리

″일어나, 이 개새끼들아!” 참가자들의 숙소에 한밤중 들이닥친 교관이란 자가 내뱉는 말이다. 참가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뛰어나간다. 교관은 참가자들에게 손과 발, 머리를 들게 해 뒤로 누우라고 하고 얼굴에 물을 뿌린다. 고문이다. 동작이 느리거나 고통스러워하면 참가자들의 멱살을 잡고 얼굴을 가격한다. 파도 속에 누운 참가자들이 겁이 나서 얼굴을 들면, “대가리 박아”라고 소리치며 물속으로 머리를 누른다.

2020년 한국 사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상이다. 위 내용이 담긴 <가짜사나이> 두번째 시즌 첫번째 영상 조회수는 10월7일 현재 1200만회가 넘는다.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가짜사나이> 첫번째 시즌 7개 영상 누적 조회수는 6천만회에 육박한다. CGV까지 나서 더 자극적인 영상을 담은 극장판을 준비 중이다. 열풍, 신드롬이다.

'가짜사나이' 중
'가짜사나이' 중 ⓒyoutube/피지컬갤러리

‘나태하고 게으른 가짜 사나이들이 군대훈련을 거쳐 진짜 사나이가 된다’는 구성은 새롭지 않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방송되었던 문화방송(MBC) <진짜사나이>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콘텐츠가 인기를 끌 때마다 ‘가학적’ ‘군사주의적’이라는 비판도 등장했다. 하지만 <가짜사나이>는 좀 다르다. ‘특수부대 훈련’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처음부터 끝까지 참가자들에게 욕설과 고문을 가한다. 고통을 겪고, 견디고, 포기하는 모습에 천만명이 열광한다.

폭력이 극단으로 치달아갈 때 발생하는 현상은 가해자에 대한 동경이다. <가짜사나이>에서 참가자들은 말할 수 없다. 오직 ‘악’으로만 반응해야 한다. 인격적 주체가 아닌 교정의 대상으로 물화될 뿐이다. 참가자들을 지배하고 구타하는 이들은 교관이라 불리는, 으리으리한 경력의 특수부대 출신자들이다. 이 대비 속에서 폭력은 꽤 그럴듯한 수단이 되고, 가해자는 유능한 교육자가 된다.

시즌1에 출연한 교관은 상업광고를 찍을 만큼 인기가 높고, 그가 훈련생에게 한 비하 발언들은 큰 유행이다. 그렇게 고문은 가능한 것, 멋져 보이는 것이 된다. 그러나 사람 만든다던 폭력은 무수한 ‘의문사’와 ‘트라우마’로 귀결될 뿐이다. 우리 현대사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의 결론이다. 그래서 인류는 그 어떤 조건에서도 고문을 금지했다.

<가짜사나이>는 자발적으로 훈련(고문)을 받겠다고 모인 사람들이고, 참가자들이 언제든 훈련 포기를 선택할 수 있기에 국가의 강제적 고문과는 다르다는, 심각할 것 없다는 반론이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럴까?

'가짜사나이' 중
'가짜사나이' 중 ⓒHuffpost KR

어떤 정치인이 범죄인을 먹여주고 재워주는 교도소 유지 비용도 낮추고 처벌 효과도 극대화하기 위해서 이런 정책을 제안한다고 가정해보자. 모든 죄수에게 선고받은 형기를 그대로 복역하거나 오랜 형기를 채우는 대신 고문을 당하는 선택항을 주자는 제안. 죄수 중에서도 성인을 대상으로, 명료한 의사 표현만 인정한다. ‘몇년 징역형’은 어차피 선고된 것이기에 그것 대신 선택하는 고문이 ‘비자발’적이라고 볼 여지도 크지 않다(레오 카츠, <법은 왜 부조리한가>). 허용될 수 없다. 당하는 이들이 원한다고 하더라도, 고문과 같은 비인격적 수단을 훈육이나 처벌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순간 문명이 힘겹게 쌓아 올린 인간의 존엄성이나 인격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게 된다.

1920년 4월1일치 <동아일보>에는 식민지 조선에서 시행되었던 태형(곤장형)이 폐지된 내용을 다루며 ‘태형근폐’라는 제목을 붙였다. 태형이라는 야만적인 형벌이 이제야 간신히 없어졌다는 것이다. 1920년에 겨우 없애버린 공식적 신체적 가학이, 2020년 ‘동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2013년 5명의 고등학생이 충남 태안에 있는 사설 해병대 캠프에서 ‘훈련’을 받던 도중 사망했다. 고무보트 탑승 훈련을 마친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벗고 해변에서 쉬고 있자 교관이 학생들에게 뒷걸음으로 바다로 들어가라고 지시했다.이유도 목적도 없는 명령. 학생들이 두려움에 주춤거리자 교관은 더 들어가라고 소리쳤다. 바다를 등지고 점점 깊은 물로 들어가게 하는 물고문. 그렇게 학생들이 파도에 휩쓸려 죽었다. 학생 중 누군가가 소리 지르는 교관에게 ‘구명조끼가 없습니다! 계속 가면 위험합니다!’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고문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하는 태도, 그 저항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존중이 누군가를 지키고 구할 수 있다.

 

글ㅣ임재성 (변호사·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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