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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10일 16시 12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5월 10일 17시 09분 KST

'시간탐험대' 오마르 왕자, 스카이와 결혼하다

[마부작침③]

huffpost

성우실

목소리가 굵고 친화력이 좋은 동기들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갈 때까지도 나는 거의 출발선 근처를 헤매고 있었다. 정신적으로 위축되고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그 세월을 투명인간처럼, 그림자처럼 살았다.

배역이 없어도 출근은 해야 하니 성우실에 나갔다. 대본 리딩용 테이블에 앉아 전화당번을 했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그 번호를 외운다. 789-3406~3409. 아침에 성우실 사환이 배 역표를 받아 오면 선배들에게 연락했다. 밖에서 선배들을 찾는 전화가 걸려오는 것도 받았다. 휴대전화는 물론 삐삐조차 귀한 시절이었다. 시간이 나면 개그맨실과 탤런트실로 놀러 갔다. 1층에 있 는 탤런트실을 기웃거릴 때면 거기, 내가 가지 못한 길이 있는 듯했다. 지금도 성우 선후배보다 탤런트, 개그맨들과 더 친하게 지내는 배경에는 이런 사정이 있다.

실의에 찬 나날이 이어지면서 ‘그만둬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가능성이 없다면 더 늦기 전에 다른 길을 찾는 게 맞지 않을까 고민했다. 아마 아내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그 시절이 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내

아내를 처음 본 것은 방송국 입사 첫날이었다. 합격 통보를 받고 방송국 로비에 갔더니 신입 성우들을 안내해줄 선배 두 명이 나와 있었다. 남자 선배 한 명, 여자 선배 한 명. 모두 한 기수 위 선배들이었다. 한 기수 차이라고는 했지만, MBC가 7년 동안 신입 성우 들을 뽑지 않았던 터라 햇수로는 8년 차이가 났다.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그날 라디오 부스가 있는 7층을 안내해준 사람 이 지금의 아내, 정미연 선배였다.

첫눈에 아내에게 끌렸노라고 한다면 대부분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말이 좋아 전속성우지, 앞날이 불투명하기 짝이 없는 사회초년병이 연애 감정 따위를 느낄 경황이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랬다. 아내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저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본격적으로 가까워진 것은 〈시간탐험대〉라는 외화를 같이 더빙하면서였다. 더빙용 마이크는 두 개를 쓴다. 하나는 주인공용, 다른 하나는 조연용이다. 조금 전문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마이크에는 지향성과 무지향성이 있다. 지향 성 마이크는 45도 안쪽의 소리를 잡아낸다. 무지향성 마이크 는 모든 방향의 소리를 포착한다. 더빙은 지향성 마이크를 쓰기 때문에 마이크 정면에서 연기해야 한다.

주인공은 마이크를 따로 쓰기 때문에 따로 신경 쓸 일이 없다. 그런데 마이크 하나를 같이 써야 하는 조연들은 사정이 다르다. 자기가 맡은 역을 연기할 때 마이크 앞으로 다가서야 한다. 이게 후배들의 입장에서는 제법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선배가 자신의 역을 소화한 뒤 자리를 비켜주면 편한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애니메이션 〈시간탐험대〉 더빙을 할 때 아내가 그런 스트레스를 덜어줬다. 표 나지 않게 공간을 챙겨준 것이다.

〈시간탐험대〉는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프로덕션 리 드’가 1989년에 제작한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MBC를 통해 1993년 10월 9일부터 1994년 3월 11일까지 5개월간 방송됐다. 주요 등장인물은 돈 테크만, 리키, 스카이, 오마르 왕자 등 네 명이었다. 아내가 스카이 역을, 내가 오마르 왕자 역을 맡았다.

이 애니메이션은 16년 뒤인 2009년 9월부터 2010년 1월 까지 EBS를 통해 다시 한 번 방송됐다. 내가 맡았던 오마르 왕자 역은 김창 성우가, 아내가 맡았던 스카이 역은 정은숙 성우가 맡았다.

이 글을 쓰기 얼마 전 한 케이블 TV에서 〈시간탐험대〉를 다시 한 번 방송할 계획이라며 아내에게 스카이 역을 수정녹음 해줄 수 있느냐고 문의해왔다. 오마르 왕자 역은 수정을 안 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안 성우님 몸값이 워낙 비싸서”라며 말을 흐렸다. 즐거운 마음으로 재능기부를 약속했다. 〈시간탐험대〉는 그 정도로 내가 애착을 지닌, 나의 본격 첫 출연작이었다.

전속 1년 차 성우인 나에게 〈시간탐험대〉의 오마르 왕자 역이 들어온 것은 기대치 않은 행운이었다. 원래 오마르 왕자 역은 박기량 선배가 맡을 예정이었는데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내게 기회가 온 것이었다.

아내가 당시 내게 왜 호의를 보였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아내가 표 나지 않게 배려해준 덕분에 〈시간탐험대〉를 하면서 편안하고 자신 있게 연기할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연기의 기본은 자신감이다. 주눅 들거나 쭈뼛거리면 절대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아내의 세심한 배려는 내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내 키가 아내보다 20센티미터 정도 컸던 덕에 가끔 아내 의 머리 위에서 연기할 때도 있었다. 그때 풍겨 오는 아내의 머릿결 냄새가 싫지 않았다. 아내와 사랑에 빠진 것은 그해가 다 가기 전이었다.

그 시절 젊은 연인들은 대부분 극장에서 데이트했다. 아내에게 영화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공포영화만 빼고 다 좋아한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크리마스이브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님, 저랑 공포영화 한 편 보실래요?”

돌이켜보면 그때 아내도 외로움을 탔던 것 같다. 아내는 광주 출신이다. 모든 일을 똑 부러지게 잘하는 편이었지만, 차가운 면도 있었다. 아내는 성우실 막내이면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의기소침해 있는 내게 연민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내가 데이트 신청을 하자 아내는 뜻밖에도 선선히 받아들였다. 크리스마스에 신촌에서 만났다. 차를 몰고 나온 아내가 키를 내게 넘겼다. 그때 아내는 차가 있었고, 나는 없었던 때였다. 운전면허만 있었다.

만일 그날 아내가 운전석에 앉은 채 나보고 조수석에 타라고 했다면 아내와 그렇게 빨리 가까워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날 드라이브를 하고, 영화를 본 것 같은데, 그게 공포영화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뒤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내와 만났다. 성우들이 잘 가는 식당이나 찻집을 피해가며 몰래 데이트를 잘 즐겼다. 조금씩 소문이 날 때쯤 나 말고도 아내에게 호감을 가졌던 경쟁자들이 있었다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