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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4월 11일 13시 28분 KST | 업데이트됨 2021년 04월 11일 14시 37분 KST

“많은 여성이 일상생활에서 표적이 된다" : 작가 R.키쿠오 존슨이 '아시아계 미국인 모녀' 뉴요커 표지에 담은 메시지

“지나치게 겁 먹은 모습이 아니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으로 묘사되길 원했다”

THE NEW YORKER
R. 키쿠오 존슨이 그린 미국 시사주간지 <뉴요커> 표지. 제목은 ‘지연된’(delayed)

아시아계로 보이는 모녀가 미국 뉴욕의 한 지하철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기다린다. 초조하게 시간을 확인한 어머니의 시선은 날카롭게 전방을 향하고, 손을 꼭 붙잡은 딸은 어머니의 눈길이 닿지 않는 옆쪽을 살핀다. 아무런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 일상적 풍경이지만, 이 장면을 보는 이들은 모녀가 ‘무사하길’ 바라게 된다. 최근 아시아계를 향한 혐오범죄가 급증하는 미국에서 아시아인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미묘하면서도 강렬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는 시사주간지 <뉴요커> 4월5일치 표지 일러스트레이션이다.    

‘지연된’(delayed)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표지를 그린 미국의 만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R. 키쿠오 존슨(40)을 <한겨레>가 인터뷰했다. 지난 7일 이뤄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존슨은 “그들이 지나치게 겁을 먹은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으로 묘사되길 원했다”고 말했다. 

 

존슨의 표지 그림은 미국에서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제니 한이 이 표지 그림과 함께 “존슨이 포착한 이 순간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고 올린 트위트는 6900번 넘게 공유됐다. <뉴요커>는 존슨과의 인터뷰 기사에서 “이 이미지는 타이밍과 긴장에 관한 섬세한 균형 잡기”라고 평가했다.

하와이 마우이에서 태어난 아시아계 미국인인 존슨은 뉴욕 브루클린에 거주하며 5년 전부터 <뉴요커> 표지를 그리고 있다. 지난 달 16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벌어진 연쇄 총격 사건이 이번 표지 제작의 계기가 됐다. <뉴요커>로부터 표지 삽화를 의뢰받은 존슨은 코로나 이후 아시아계를 상대로 벌어진 증오범죄 기사를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너무나 많은 여성이 일상에서, 특히 지하철에서 표적이 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처한 내 어머니, 할머니, 고모를 상상했다. 그림 속 모녀는 이 모든 여성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 홈페이지
R. 키쿠오 존슨 자화상

존슨은 미국에서 인종 문제가 흑인 대 백인이라는 이분법적 논의에 갇힌 탓에 아시아계를 향한 차별과 혐오는 잘 보이지 않는 문제가 됐다고 했다. 애틀랜타 총격 사건으로 한인 여성 4명을 포함해 6명의 아시아인이 숨졌지만, 애틀랜타 경찰은 수사 초기부터 인종적 동기가 아닌 성 중독 문제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용의자의 진술에 힘을 실었다. 뉴욕 지하철과 길거리 등에서 나이 든 아시아계 여성을 향한 무차별적 폭력이 연달아 벌어졌지만, 미 당국은 이를 인종차별로 인한 증오범죄로 규정하는데 굼떴다.

존슨은 이번 표지로 인종차별과 혐오범죄로 고통받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 ‘지연된 정의’가 오길 희망했다.

“이 커버를 통해 누군가가 드디어 보이게 되었다고, 인지되었다고 느끼길 바랐다. 아시아계 미국인에 관한 이슈는 미국 문화의 차원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아 왔다. 나는 사람들이 이 이미지 속에서 진실을 찾길 희망할 뿐이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어떻게 아시안계 미국인이 겪는 공포스러운 상황을 소재로 표지를 그리게 되었나?

=지난 2016년부터 <뉴요커> 표지 작업을 해왔다. 애틀랜타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난 후, 뉴요커의 아트 에디터가 전화를 해와 아시아계 미국인이 최근 경험하는 차별에 대한 표지 아이디어가 있느냐고 물었다. 가능한 많은 아이디어를 짜내고 스케치를 그리는 데 이틀을 썼다. 내가 이 사안을 조금이라도 정확히 조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랐다.

 

아시아계 미국인 모녀가 뉴욕 지하철을 기다리는 장면, 이 특정한 이미지를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나?

=팬더믹 동안 일어난 아시아인들을 겨냥한 혐오범죄에 대한 뉴스를 다시 보면서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나씩 하나씩 읽어내려 갈수록 점점 다른 기사를 읽기가 어려웠다. 너무나 많은 여성이 일상생활에서, 특히 지하철에서 표적이 되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 내 어머니를 상상했다. 내게 항상 버팀목이 되어온 할머니와 고모에 대해 생각했다. 그림 속 모녀는 이 모든 여성들로 이루어져 있다.

 

당신은 이 커버에서 미묘하지만 아주 긴장된 순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모녀의 시선, 신고 있는 운동화 등에서 그들이 느끼는 초조함과 긴장감을 우리도 느낄 수 있다. 당신이 특별히 신경을 쓴 그림 속 디테일이 있나?

=두 캐릭터의 적절한 제스처를 찾기 위해서 가장 공을 들였고, 여러 번 그림을 새로 그렸다. 나는 그들이 지나치게 겁을 먹은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으로 묘사되길 원했다. 나는 무언가를 덧붙이는 것보다 생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최초의 스케치에는 여느 뉴욕 지하철역처럼 벤치 주위에 쓰레기들이 널브러져 있는 묘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모든 불필요한 디테일들을 생략해 이 상황을 더 냉혹하고 불길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당신은 SNS에 올린 글에서 ‘격분해서 행동을 촉구’하거나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내는’ 방식 등 여러 시도 끝에 지금의 표지를 그리게 되었다고 했다.

 =최근 아시아인을 향한 연이은 공격으로 너무나 많은 감정을 느꼈다. 분노했고, 슬펐고, 동시에 (아시아계로서) 내가 물려받은 유산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각기 다른 스케치에서 내가 느꼈던 상충되는 감정을 모두 시도해봤다. 올바른 딱 하나의 묘사를 얻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지금의 커버는) 무엇이 이 순간을 묘사하는 데 가장 적합한지 이해하기 위해 모든 가능성들을 펼쳐본 결과다.

 

작가 홈페이지(rkikuojohnson.com)
존슨이 그린 2018년 표지 ‘안전한 여행’.

 

당신의 그림은 아시아인을 묘사할 때 등장하곤 하는 스테레오 타입들, 가령 찢어진 눈, 과장된 피부 색깔을 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을 묘사할 때 최대한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이도록 그리는 게 내 목표다. 진부한 표현과 고정관념은 때로 캐릭터들을 인공적이고 뻔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시아계 미국인인 당신을 포함해, 당신 주변 지인 중에 아시아계를 향한 최근의 혐오공격으로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나?

=뉴욕시에 사는 내 아시아계 여성 친구들은 하나같이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특히 혼자 걷거나 지하철을 탈 때 말이다. 친구들 중 몇몇은 (호신용) 후추 스프레이를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최근 애틀랜타에서 발생한 총격으로 아시아 여성 6명(한국계 미국인 4명 포함)이 사망했다. 뉴욕에서는 아시아 여성들에 대한 공격이 잇따르고 있다. 한국 편의점에서 한 남성이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며 난동을 부렸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는가?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미국에서 언제나 외국인 혐오의 표적이 되어왔다.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에서는 종족주의, 정치적 파당성, 인종적 분화가 심화돼 왔다. 정치적 우파들은 중국을 미국에서 발생한 팬더믹 사상자들을 위한 희생양으로 삼았고, 이러한 (정치적 우파의) 레토릭이 반아시아적 정서를 악화시키고 확대시켰다.

 

미국계 아시아인을 향한 인종차별은 오랫동안 미국에서 ‘없는 문제’로 취급되어 오다가, 최근 팬데믹 이후 혐오공격과 함께 조금씩 가시화되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계 미국인 만화가로서 당신은 미디어가 이런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한다고 보는가?

=미국에서 인종은 압도적으로 흑인 대 백인의 측면에서만 논의되고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끊임없이 이러한 서사가 틀렸다고 입증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러한 이분법적 인종 논의에만 정치적 관심이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어쩌면 최근의 반아시아 혐오의 확산이 이 상황을 변화시킬지도 모르겠다.

 

이번 뉴요커 표지를 통해 미국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커뮤니티는 너무 거대하고 다양해서, 모두에게 통용되는 단일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커버를 통해 누군가가 드디어 보이게 되었다고, 인지되었다고 느끼길 바랐다. 아시아계 미국인에 관한 이슈는 더 넓은 미국 문화의 차원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아 왔다. 나는 단지 사람들이 이 이미지 속에서 진실을 찾길 희망할 뿐이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