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6년 03월 23일 07시 49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3월 23일 08시 18분 KST

나는 33살이다. 그리고 한 번도 키스해 본 적이 없다.

 

가끔은 고통스러운 사실을 용감하게 밝혀서 냉엄한 진실을 마주해야 할 때가 있다. 나는 만 33세인데 키스해 본 적이 한 번도 없고, 나와 손을 잡고 싶어했던 유일한 남자는 데이트할 섹시한 사람을 찾는 과정에서 그저 같이 시간을 보낼 사람이 약간 필요했던 것뿐이었다. 이건 짐작이 아니고 사실이다. 그가 나중에 내 룸메에게 집적거리면서 그렇게 말해줬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내가 아는 한, 나를 직접 본 사람 중 내게 매력을 느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자가 내게 휘파람을 불거나 희롱한 적도 없다. 내가 했던 연애들은 전부 온라인 상에서였다. 오프라인에서 나를 만난 유일한 남자 친구는 내게 포옹 이상을 하려 하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사귀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만났지만, 나를 봤을 때면 그들의 눈 속에서 관심이 죽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지구상에서 아무도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유일한 여자인 것 같은 기분이 자주 든다. 그리고 수치스럽다.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처녀성을 농담거리로 삼는다. 잘못된 신앙 때문이라거나, 육체적으로 그로테스크하다거나, 사교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섹스는 어떤 사람들에겐 결코 제시되지 않는 선택지'라는 현실에서 탈출하려고 한다. 그리고 '성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 타인에게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무시하려고 한다. 성경험이 없는 사람들, 특히 그게 자기가 선택해서 그런 게 아니었던 사람들은 자신의 무경험을 숨겨야 한다고 강하게 느끼게 된다. 남들이 저 사람도 평범한 수준의 성적 과거가 있겠거니 하고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게 진실을 설명하려고 드는 것보다 훨씬 쉽고 상처도 덜하다.

여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섹스가 화제가 되지 않기를 기도한 적이 셀 수 없이 많다. 결국 섹스 이야기가 나오면 속으로 움츠러든다. 남들이 웃을 때 따라 웃다가 화제가 바뀌고 나서야 안도한다. 내 비밀은 안전하다, 지금까지는.

청소년기에 성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안돼’라고 말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어떻게 섹스해야 한다는 압력을 피하는가, 어떻게 데이트를 솔직하고 공정하게 거절하는가. 내 교사, 성직자, 청년 그룹 지도자들은 내가 압력을 받지 않을 때, 데이트 신청을 받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는 결코 말해 주지 않았다. 십대 시절의 나는 ‘안돼’라고 말할 첫 기회를 생각하며 흥분에 몸을 떨었다. ‘안돼’라는 말을 배우는 것에는 내가 ‘좋아’라고 말하기로 선택할 가능성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겐 그 질문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대학에 가면 좀 나아질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똑똑한 남자들은 적어도 내 지성에는 끌리겠지. 나는 지금도 가까이 지내는 훌륭한 여러 남자들과 친구가 되었지만, 데이트 신청은 한 번도 받지 못했다. 행사가 있을 때나 극장에서 내 몸을 더듬으려 한 사람도 한 명도 없었다. 성적 접촉의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어쩌면 내가 굉장히 보수적인 가정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혹은 고등학교 때 데이트를 몇 번 해봤다면, 기다리지 않고 내가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할 용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로선 그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영화에선 이렇지 않았다. 소설의 결말은 이렇지 않았다. 내 친구들 대부분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했고,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은 적어도 데이트는 했다. 나는 이유를 분석해 보았다. 왜 아무도 관심이 없을까? 내 외모 때문일까? 난 늘 좀 뚱뚱한 편이었지만, 나와 체형이 비슷하거나 덩치가 더 크지만 행복한 연애를 하는 여자들을 많이 알고 있다. 내 얼굴 때문인가? 하지만 이 역시, 나보다 객관적으로 덜 ‘예쁘’지만 사랑을 찾은 여자들을 알고 있다. 내 성격 때문인가? 난 수줍음을 타고 말수가 적지만(단, ‘스타워즈’나 ‘듄’ 이야기를 꺼내면 내 입을 닫게 만들기가 쉽지 않다) 친구들과는 편안하게 이야기한다. 나는 활동적인 사회 단체 몇 군데에 가입해 있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겼다.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는 것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지 10년 정도 된 지금까지도 무관심은 계속되고 있으며, 나는 아직 이유를 찾지 못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싱글이라는 사실에 대한 평화를 어느 정도 찾았다. 시간이 좀 걸렸다. 특히 내게 도움이 될 것을 거의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다. 싱글인 것에 대해 내가 찾은 책들은 거의 전부가 "결혼할 때까지 싱글로 지내기. 왜냐하면 당신은 당연히 결혼할 거니까"에 대한 것들이었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싱글들의 활동은 적었고, 거기 참석하는 사람들은 다 나보다 40살 이상 나이가 많았다. 결국 나는 그런 것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싱글인 삶이 내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내가 스스로 찾아내야 했다. 나의 ‘반쪽’을 찾기를 기다리는 대신 나 혼자의 삶을 만들어가야 했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절박함 때문에 누군가에게 내 자신을 던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밖으로 달려나가 눈에 띄는 첫 남자에게 같이 자자고 하고 싶은 유혹이 드는 날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나는 이게 지금의 내 현실이고, 변화가 빠르게, 혹은 쉽게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냥 받아들인다. 그래도 좌절감은 남는다. 이게 그냥 받아들인 게 아니라 진짜 선택이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나는 몇 번 내 이야기를 해보려고 시도했다. 사람들이 일정 수준의 과거 연애 경험은 보편적이라고 상정할 때 반박해 보았다. 사람들이 내 나이를 생각했을 때 연애를 몇 번 해봤을 거라고 가정하고 별 생각 없이 말할 때 정정해 준다. 나는 사람들에게 ‘처녀’란 욕이 아니고, 섹스가 성인임을 보증해 주는 것도 아니라고 일깨워주려 애쓴다. 내가 이 고통을 끄집어 내는 일은 드문데, 그때마다 관심을 가진 남자들이 있었는데 내가 눈치채지 못한 거였다든가, 내가 ‘내 자신이 되면’ 좋아하는 사람들이 기적적으로 나타날 거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내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믿기를 결단코 거부하는 것, 그게 가장 마음 아픈 부분이다. 그들은 내가 내 삶을 모른다고 우긴다. 내 이야기를 멋대로 바꾸어 다른 사람들을 편하게 하는 더 재미있는 이야기로 바꿔 버린다. 나는 내 이야기가 왜 남들을 불편하게 만드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았다. 모든 연애에 불확실성의 가능성이 개입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연애의 상당 부분이 운에 달린 것이라면? 내가 연애를 못해 본 데는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우연이라면? 그러면 그들이 파트너를 만난 것도 그냥 우연이고, 몇 가지 사건이 다르게 진행되었더라면 그들의 삶도 내 삶과 비슷해졌을 수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그들은 내 이야기를 합리화하고 설명한다. 만약 내가 뭔가 안 하고 있는 게 있기 때문이라면, 그들의 관계는 안전하다. 그들은 내가 저지른 실수를 저지르지 않은 것이다.

여자 친구들은 내가 매력적이라고 열심히 말해주지만, 왜 남자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지 설명하지 못한다. 그들은 내가 왜 그들의 칭찬을 거부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내가 자존감이 낮아서 그러는 거라고 짐작한다. 사실 나는 현실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만약 내가 매력적이라는 게 사실이라면, 언젠가 누군가가 그 매력에 의한 행동을 했을 것이다.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내 실제 경험이 그들의 시각보다는 진실을 더 잘 보여줄 것이다.

그렇지만 내 친구들은 자기들의 설명을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 걸 고집스럽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나는 나의 진실에서부터 친구들의 감정을 지켜 주느라 나의 에너지를 쓴다. 친구들이 나 때문에 안쓰럽지 않도록 깊은 고통을 웃어넘긴다. 나는 친구들의 신부 파티와 결혼식에 가고, 진심으로 그들을 위해 기뻐한다. 그들의 집에서 저녁 식사를 즐기고, 결혼할 때 받았던 주방 용품들을 부러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싱글 여성을 위한 파티를 열어주는 사람은 없다. 내 주방 용품들은 전부 중고품 할인점이나 싸구려 슈퍼마켓에서 산 것이다.

나는 이런 경험을 가진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사실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 중에 나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싱글인 친구들은 많지만 전부 연애 경험이 있다. CDC(질병통제센터)의 연구 통계도 찾아봤다. 25세~44세의 여성 중 2%(그리고 같은 나이대 남성 중 3%)가 질 삽입 섹스를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 수백만 명의 처녀들 중에는 나처럼 육체적 친근함을 원했지만 누구에게도 제의 받은 적이 없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이야기를 숨긴다. 남들의 판단과 놀림이 두려워서, 그보다 더 나쁜 연민이 두려워서다. 그래서 우리는 비슷한 경험을 가진 다른 사람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놓치고 만다.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문제는 계속 노력을 하느냐 마느냐이다. L. M. 몽고메리가 ‘푸른 성 The Blue Castle’에서 적었듯, “그래, 난 ‘아직 젊어’ – 하지만 그건 젊은 거랑은 너무나 달라.” 현실적으로, 이제까지 그 누구도 내게 포옹 이상을 원하지 않았다면, 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영원히 싱글이고 싶지는 않다. 최소한 한 번은 키스를 해보고 싶다. 내가 계속 누군가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할까, 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른 곳에 에너지를 쏟아야 할까? 다른 사람들은 내가 본의 아니게 싱글인 걸 받아들이게 해줄까, 아니면 계속 내게 사실은 남 모를 매력이 있다고 믿으라고 할까? 모든 실험적 증거는 그 반대 방향을 가리키는데.

나는 내 이야기가 바뀌기를 계속 바라겠지만, 내 이야기를 내 식대로 말하기 위해 계속 싸울 것이다. 나는 진실이 고통스럽다 해도 진실을 고수하려 한다. 나보다 표준적인 경험을 가진 사람들도 이해하기 시작하길 바란다. 그리고 나 같은 여성들도 섹스와 사랑에 대한 논의에 포함시킬 방법을 찾길 바란다. ‘모든 여성’의 경험이라는 소외감을 느끼게 만드는 말을 쓰지 않고 말이다.

우리는 모두 여성이고,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고, 우리는 누구나 존엄과 진실을 가지고 그 이야기를 할 기회를 원한다.

*허핑턴포스트US의 블로그 글을 번역, 편집했습니다.

PRESENTED BY 호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