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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19일 10시 25분 KST

41년 전 "김일성 만세" 외쳐 구속된 아빠 억울함 풀어준, 결정적 증거는 이것이었다 (딸 편지)

"아빠 얼굴 모른다." 41년 전 딸의 편지가 반공법 피해 재심 길을 열었다.

한겨레/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제공
1979년 8월26일 고 이아무개씨의 딸이 보낸 편지 전문.

 

40여년 전 술에 취해 “김일성 만세”를 외쳤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던 한 남성이 당시 수사기관에 어린 딸이 보냈던 편지 덕분에 재심을 받게 됐다. ‘아빠를 못 본 지 20일이 다 돼간다’는 등의 호소가 수사기관의 불법구금 정황을 입증할 증거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18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6월 대구지법 경주지원은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던 고 이아무개씨의 유족들이 고인을 대신해서 낸 재심 청구에서 “이 사건은 수사에 관여한 경찰관들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인정된다”며 재심 개시 사유를 인정했다.

이씨는 1979년 8월 마을 주민들 앞에서 “나는 대통령하고도 친하고 김일성하고도 친하다. 김일성을 지지하면 어떤가”라며 “김일성 만세”라고 세번 외친 혐의(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그는 술에 취해 상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수사관들에게 “앙심을 품은 누군가가 허위 제보를 한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이씨의 유죄를 인정하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교사였던 이씨는 이 일로 직업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유죄 받고 직업 잃은 뒤 세상 떠나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씨는 나중에 아내에게 ‘경찰에게서 전기고문 등을 당해 어쩔 수 없이 자백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재심 청구 절차를 잘 알지 못했던 그는 억울함을 풀지 못한 채 2005년 세상을 떠났다.

당사자가 세상을 떠난 뒤 재심 개시의 길을 연 것은 41년 전 이씨의 딸과 아내가 수사기관에 보낸 탄원서다. 당시 열살이었던 이씨의 딸은 아빠가 검거된 8월3일로부터 3주가 지난 8월26일 “검사 아저씨께”라는 제목으로 편지를 보냈다. 편지엔 “저의 소원은 우리 아빠 나오시는 것이어요. 저는 아빠 얼굴을 몰라요. 벌써 20일이 넘었을 테니까요”라고 적혀 있었다. 이씨의 아내도 “(남편이 검거된 지) 한달이 거의 다 되어가는데 가장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알았습니다”라며 선처를 구했다.

재심 청구를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변호인들은 이를 불법구금의 근거로 제시했다. 형사소송법상 긴급구속 뒤 48시간 또는 72시간 안에 구속영장이 발부돼야 하는데, 이씨의 영장은 검거된 지 7일이 지난 8월10일에야 발부됐다. 재심 청구 사건 재판부는 이를 두고 “아내의 탄원서와 딸의 편지를 봐도 이씨가 검거된 이후 석방된 정황이 엿보이지 않아 (영장 발부 시까지) 구금 상태가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며 불법 구금 정황을 짚었다. 그러면서 “여기 관여한 경찰관들의 행위는 불법체포·불법감금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씨의 가족을 대리하는 서채완 변호사는 “지난 9월 열린 재심 첫 재판에서 ‘이씨가 김일성 만세를 고창한 사실이 없고, 불법구금과 고문으로 수집한 증거는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이므로 증거 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가족들이 41년 전 절박한 마음으로 제출한 탄원서로 시작된 재심을 통해 피해자의 무죄를 입증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재심을 받게 된 이씨의 딸도 “(아버지는) 시대의 희생을 당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한스럽게 받아들이고 사셨다. 세월이 변해서 국가 폭력에 희생을 당한 개인도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