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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18일 13시 56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5월 18일 13시 56분 KST

빨간 멍에

huffpost
한겨레 국사편찬위원회
 산으로 피신한 주민들이 마을로 돌아가고 있다. 1948년 5월15일 촬영됐다. 

“그때 스물여섯. 등에 업은 열 달 된 애기 굶어 죽었는데 그 애기 생각허민 가슴 아팡 살질 못허쿠다. 이제도록, 지금 몇 년이우꽈? 배에서 죽은 애기 업엉(업고) 내리라고 해서 내렷수다. 애기 두고 가면 목포 파출소에서 묻어준다고. 거기 그냥 애기 놔두고 징역 갔수다.”(오계춘, 96살)

“그때 스물두 살. 남편을 잃어버렸어요. 저는 두 살 아들을 안고 배에 탔어요. 배에서 아이가 죽었다고 울부짖는 여자가 있었어요. 아까 그분 맞아요. 전주교도소에 갔을 때는 어두웠는데, 죽은 줄 알았던 내 아기가 죽을 세 번 떠먹이니 살아났어요.”(박내은, 92살)

법정 울린 할머니의 증언

지난 4월 마지막 날, 4·27 남북 정상회담의 훈풍이 스며들 때였다. 제주지법 201호. 제주4·3 당시 군법회의 재심 청구(생존 수형인 18명)로 세 번째 심문이 열렸다. 4·3(1947년 3월~1954년 9월) 당시 많은 제주도민이 적법 절차 없는, ‘재판 아닌 재판’을 받고 수감됐다. 이날 휠체어를 탄 두 구순 할머니의 증언이 법정을 울렸다.

서귀포시 서홍동 오계춘 할머니. 아흔여섯 목소리는 떨렸고, 격한 기억이 피를 토하듯 증언을 밀어내고 있었다. 4·3 때 남편은 행방불명. 아기 안고 이리저리 숨다가 붙잡혔다. 제주경찰서에 한 달가량 구금됐다가 아무개 10년, 아무개 5년, 나머지는 1년형을 불렀다. 그는 ‘나머지’로 죄명도 모른 채 배에 태워졌다. 전주형무소와 안동형무소를 거쳐 출소한 것은 1949년 10월. 70년간 그에게 맺힌 한은 숯이 된 채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이어 표선면 가시리의 박내은 할머니가 앉았다. 변호인의 심문에 긴장된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배에서 죽은 아기를 안고 울던 여자가 오계춘임을. 이어 자신에게 가해진 고문에선 호흡이 빨라졌다. “산에다 신발을 몇 켤레 올렸냐? 팬티 몇 개 올렸냐? 그런 걸 물으며 고문을 했어요. 쌀 한 되, 돈 5원, 장 2홉짜리 준 것밖에 없어요. 안 했다고 말하니 바른말 하라며 고문했어요. 눈이 팡팡 오는데 기절하면 찬물을 얼굴에 부었어요. 천정에 매달아놓고 몽둥이로 때렸어요. 양 엄지손에 전기를 감아서 찌르륵 찌르륵 고문했어요.” 팔목을 보여줬다. 튀어나온 팔목, 다친 허리로 아파서 잠도 잘 못 잔다.

오계춘과 박내은. 1948년 11월 4·3 초토화 시기, 어린 아들을 데리고 숲으로 도망다니다 토벌대에 붙잡혔다. 둘 다 남편이 행방불명. 구금과 고문, 군사재판을 받고 육지 형무소행. 어린 아기를 업고 산지항에서 목포항으로 향하던 배를 탄 여인들이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는 심문. “죽은 아기 생각허민 아직도 가슴이 벌러졍 살질 못헙니다. 이 억울함을 재판을 통해서 풀어줬으면 좋겠수다.”(오계춘) “나는 죄가 없는데 왜 그런 고문을 받고 삶을 살아야 했는지 이것이 억울하고 억울하니까 이 원을 풀어주십시오. 억울해서 죽어도 눈 감을 생각이 없어요.”(박내은) 슬픈 목소리였으나 있는 힘을 다 짜내고 있었다.

그날 이후, 몸에 가해진 고문의 기억과 고통은 4·3 뒤 70년이 흘러서도 그렇게 여전했다. 오 할머니에겐 아기를 잃었다는 죄인 트라우마가 비수처럼 꽂혔다. 고통은 너무나 깊고 날카로웠다.

 ‘빨갱이’ 연좌제로 뒤틀린 생

증언을 마친 두 할머니가 각자 아들의 손을 잡았다. 그들을 지금까지 짓누르는 이름, ‘빨갱이’. 느닷없는 군사재판은 그들의 전 생을 앗아갔다. 남북 경계를 넘는 이 평화의 봄, 이제 진실의 법정은 어떤 판결을 할 것인가. 이들은 바란다. 죄 없이 자신의 이름자에 그어진 빨간 줄을 살아서 지울 수 있기를.

두 어머니 모습에서 굴절된 한국 현대사 속 잃어버린 아이들을 품은 이 땅 어머니들을 보았다. ‘빨갱이’ 연좌제로 뒤틀린 생이 되어버린 가족사를 보았다. 제주 4월, 5월 광주의 어머니를, 여수, 순천…. 국가의 폭력으로 빨간 멍에가 핀 그들을 보았다.

* 한겨레21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