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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권김현영은 "낙태죄 폐지하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 내 존재 자체가 엄마의 짐이 되었을까 전전긍긍했다"

  • 이인혜
  • 입력 2020.09.29 14:56
  • 수정 2020.10.09 17:52
낙태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형법 조항의 위헌 여부가 '헌법 불합치'로 결정되자 2019년 4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기뻐하고 있다.
낙태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형법 조항의 위헌 여부가 '헌법 불합치'로 결정되자 2019년 4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기뻐하고 있다. ⓒ뉴스1

 

2019년 4월11일,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날 헌법재판소 앞에 모여 있던 이들은 헌재 판결 소식에 환호하고 있었다. 마침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외국인 일행들이 무슨 시위냐고 젊은 여성들이 유독 모여 있는 곳을 향해 물었고, 낙태죄가 폐지되었다고 답해주자 모두 크게 미소 지으며 축하한다고 했다. 그 자리는 잠시 축제였다. 바닥에 앉아 낙태죄 폐지 판결을 이끌어낸 변호인단이 판결문을 복기하며 해석해주는 시간은 그저 즐거웠고 활동가들은 맞은편 반대집회의 확성기에서 들려오는 저주 섞인 말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단순 참가자였던 나 역시 무슨 말을 들어도 화가 나지 않았다. 드디어 여성에게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된 날이라고 생각했다.

강조컨대 반복해서 말하자면 여성에게 임신과 관련된 결정 권한이 주어져 있지 않다는 것은 여성이 자기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단지 임신을 지속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여성이 자기 삶을 영위하는 온전한 존재로서 존엄성을 가질 수 있는지 아닌지의 문제다. 그동안 얼마나 임신할 수 있는 몸이라는 이유로 세상의 많은 이들이 여성의 몸에 대해 참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것처럼 굴어왔던가. 일터에서 종종 임신할 수 있는 몸은 능력이라기보단 결함으로 취급되었고,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탐색은 완벽한 피임법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잠재된 임신 가능성에 대한 공포로 뒤덮이곤 했다.

나는 이날 집으로 돌아오며 엄마한테도 축하를 전하고 싶었다. 엄마는 나를 임신하고 난 후 두 번에 걸쳐 낙태하려고 시도했지만 아빠가 반대해서 끝내 낳게 되었다고 했다. 얼핏 원망이나 울분에 찬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나, 전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가족이 꽤나 화목한 순간 아빠의 결단으로 엄마의 의지가 꺾이고 끝내 태어난 내가 그래도 꽤 괜찮은 자식 노릇을 할 때 자주 등장하는 에피소드다.

주로 아빠와 나의 유대감을 만들어온 이야기로 쓰였지만, 엄마와 내가 서로의 존재를 애틋해하면서 동시에 죄책감을 느껴온 이야기이기도 하다. 엄마는 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미안해했고, 나 역시 내 존재 자체가 엄마의 짐이 되었을까 봐 전전긍긍했다. 이런 감정은 엄마와 딸 사이에 흔하게 흐른다. 엄마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하다가 결국은 엄마의 행복을 바라는 딸의 이야기라거나, 임신부터 양육에 이르기까지 양육자로서의 책임을 엄마에게만 강요하는 사회에서 엄마로 살아가는 게 벅차서 살뜰한 애정을 주지 못했다가 나중에야 미안함을 표시하는 엄마의 이야기는 여성서사의 핵심적인 판타지 중 하나다. 어떤 방식으로든 ‘임신’을 좌절이나 고통으로서 경험하게 되는 사회이기 때문이고, 그중에서도 ‘딸’의 탄생을 온전히 축복하지 못해왔던 성차별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계급 역시 큰 장벽이 된다. 미국의 하층계급 빈곤가정에서 태어난 <하틀랜드>의 작가 세라 스마시는 이렇게 쓴 바 있다. “엄마의 문제 중 하나가 나라는 존재라는 건 명백했지. 안에다 하지 말라고 했던 ‘하지 마’의 결과가 나였어.” 원치 않는 임신의 결과로 태어난 아이에게 자신의 존재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입증해야만 하는 것이었고, 자신이 존재할 가치가 있느냐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아이는 무엇이든 한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세라 스마시는 “내 삶에서 가장 가슴 아프게 결여되어 있었던 것은 우리 어머니의 애정”이었지만, “그보다 더 간절히 바란 건 엄마의 행복이었던 것 같다”고 쓴다.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그동안 수없이 많이 듣고 읽었다. 한국의 무수한 장녀들이 케이(K)-장녀 유교걸로 자라는 이유는 바로 존재의 가치를 입증해야만 하기 때문이고, 장녀가 아닌 다른 딸들 역시 자기 자신이 엄마의 인생에 새로운 굴곡을 안겨준 존재라는 자의식 하나쯤은 가지고 성장하곤 했다.

지금까지 소위 낙태반대론자들은 원치 않는 임신에도 불구하고 생명은 소중하니까 같은 이야기만을 반복해왔다. 진짜 우리가 더 알아야 할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환영받지 못한 존재로 태어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런 삶 역시 ‘중요하다’고 여겨질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떤 공백을 메워야 하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이다. 낙태죄를 폐지하고 그 자리에 다름 아닌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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