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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 착취는 연쇄 인격살인이다' :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최초 보도한 '추적단 불꽃' 인터뷰

'n번방' 성 착취 범죄 사건을 읽는 키워드

  • 박수진
  • 입력 2020.03.26 18:35
  • 수정 2020.03.26 20:50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 ‘텔레그램 n번방’ 사건으로 불리는 이번 집단 성범죄가 일어난 곳은 메신저 앱 텔레그램이다. 여기에는 2018년부터 소셜미디어에서 ”고액 알바”를 제안하며 개인정보를 받아낸 후, 이를 이용해 피해자들을 협박해 영상과 사진을 찍는 수법으로 만든 성 착취물들과 불법촬영물들이 유통됐다. ‘박사’ 조주빈이 ‘박사방’을 만든 것은 2019년 9월로, 같은 수법으로 성 착취물을 만들고 유료로 유포했다.

이들의 범죄 행위를 수집해 경찰에 최초로 신고한 것이 ‘추적단 불꽃’이라는 대학생 기자들이다. 통칭 ‘n번방 사건’에 대해 꾸준히 알려 온 이들은 26일 허프포스트와 만나 ‘n번방 참가자 26만명이라는 숫자에만 집중하지 말고, 이 사건을 남녀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로 봐달라’고 말했다. 가해 규모보다 피해 규모에 주목해달라는 것이다.

3월 26일
3월 26일 ⓒHUFFPOST KOREA/Sujong Lee

- 지난해 여름에 탐사보도 공모전에 낼 취재를 하다가 ‘n번방’을 발견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디지털 성범죄를 주제로 정한 이유는 뭐였나요?

= 정준영 사건, 승리 사건, 기자들과 교사들 단톡방 사건처럼 2018년부터 일어난 디지털 성범죄 사건들을 보면서 분노했어요. 이게 해결이 안 되면 한국에서 여성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이 들어서, 조금이라도 해결해보고 싶어서 취재하게 됐습니다.

 

- 텔레그램 n번방 링크는 어떻게 처음 발견했나요.

= ’와치맨’이라고 하는 n번방 운영자가 포르노 후기를 쓰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거기 n번방 후기를 써놨어요. 블로그 상단에 ‘고담방’ 링크가 있어서 들어가게 됐어요. 들어가보니 고담방은 n번방으로 들어가는 큰 통로였죠. n번방까지 들어가는 데 5시간 정도 걸렸어요.

 

- 처음 n번방을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 가해자들이 말도 안 되는 말들을 일상 대화처럼 하고 있는 걸 보고, 이걸 파헤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입 취재를 결심했어요. 그리고 n번방에서 피해 여성들을 보고 경찰서에 가서 신고했어요.

 

‘딱 봐도 어린 아이들, 그곳에서는 말도 안 되는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 신고 당시 경찰 반응은 어땠나요?

= 그분들도 깜짝 놀라고 이런 건 처음 본다는 반응이셨죠. 딱 봐도 어린 아이들의 사진이고, 피해자들의 신상도 나와 있으니까 굉장히 심각한 범죄라고 생각을 하셔서 경찰청 사이버수사대로 연결해주셨어요. 

 

- 방이 여러 개가 있던데 어떤 구조인가요?

= 저희가 처음 들어간 고담방이 있는데요, 그 방은 불법촬영물이나 성 착취물 같은 영상은 안 올라오고 공지만 있고 대화만 해요. 왜냐면 고담방은 다른 방으로 이어주는 중요한 통로이기 때문에 ‘터지면’ 안 되니까. 그런데 거기서 하는 일상적인 대화라는 것도 수준은 당연히 더럽죠. 

고담방을 통해서 n번방이나 다른 방으로 들어가요. 성 착취물이 올라오는 방을 n번방이라고 불렀는데, 그 방이 1번방부터 8번방까지 8개였던 거고요. 채널 기능을 이용해서 구독자들이 대화 없이 자료를 보거나 다운 받는 식으로 운영했어요.

다른 방에는 성착취물이 아니라 불법촬영물이나 포르노물이 공유되는데요. ‘로리방’, ‘쓰레기방’, ‘하드코어방’ 이런 온갖 방이 있는 데다 해외 텔레그램 유저들과 대화방에서 거래를 하기도 했어요. “소수정예”라는 방도 있었는데 그래도 참가자가 100명은 넘었어요.

그러니까 텔레그램에는 디지털 성 착취도 있고, 불법촬영물 공유도 있고, 지인 사진 가져와서 ‘능욕’하는 방도 있고, 일반인이나 연예인 얼굴에 딥페이크로 포르노물처럼 만든 영상들을 공유하는 방도 있고 많았던 거예요.

그런 방에서 n번방 자료를 뿌리는 애들도 있어요. ‘나한테 갠텔(개인 메시지) 하면 n번방 자료 주겠다.’ 처음에는 가입 절차를 따른 사람만 n번방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나중에는 ‘n번방 자료는 흔한 거지’ 하면서 거기 영상들을 다른 방에 압축 파일로 뿌리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n번방 성 착취 강력처벌 촉구 시위 운영진들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열린 'n번방 사건 관련자 강력처벌 촉구시위 및 기자회견'에서 텔레그램 n번방 박사(조주빈), 와치맨, 갓갓 등 관련 성 착취 방 운영자, 가담자, 구매자 전원에 대한 강력한 처벌, 이와 같은 신종 디지털 성범죄 법률 제정 및 2차 가해 처벌 법률 제정 등을 촉구하고 있다.
n번방 성 착취 강력처벌 촉구 시위 운영진들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열린 'n번방 사건 관련자 강력처벌 촉구시위 및 기자회견'에서 텔레그램 n번방 박사(조주빈), 와치맨, 갓갓 등 관련 성 착취 방 운영자, 가담자, 구매자 전원에 대한 강력한 처벌, 이와 같은 신종 디지털 성범죄 법률 제정 및 2차 가해 처벌 법률 제정 등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 왜 그런 거죠?

= 그렇게 뿌리는 거에 대해서 아무 죄책감 없는 거예요. ‘내 일 아니니까.‘ 또 n번방 영상을 찾는 사람도 많았으니까, ‘구걸하니까 내가 줄게’ 이런 식으로. 압축 파일에는 신상정보는 없는데, 와치맨이 ‘n번방 노예 목록’이라고 신상을 담은 글을 공지로 올린 적이 있어요. 1번방부터 8번방까지 피해자 이름, 어느 학교 몇 학년 몇 반인지, 휴대폰 번호, 주소까지 나온 경우도 있고요. 피해자들의 신체적 특징이라든지 피해 유형 같은 걸 묘사를 해놨어요. 그걸 공지로 등록해서 다른 방에서도 n번방 홍보를 한 거죠. 하위방 상위방이라기보다는, n번방이 또다른 방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 또 어떤 대화들을 하던가요.

= 수업 끝나고 저녁에 채팅방 보면 들어가 있는 방이 많다보니까 대화가 1만개 넘게, 몇 만개씩도 쌓여있었거든요. 저희끼리 나눠서 봐도 하루에 너덧시간씩은 봐야 했을 정도로 많았어요.

대화하는 수위는 걷잡을 수 없는 정도예요. 피해자 보고 ‘얘 내 스타일인데 다니는 학교 앞에 찾아가서 강간하자 원정대 모집한다’ 이런 게 일상적인 대화였고요. 피해자 사진으로 텔레그램 스티커(사용자가 직접 제작해 유포할 수 있는 이모티콘)를 만들어서 써요. 스티커는 그냥 개인이 재미로 만들어서 공유하는 거거든요. 기사 나온 다음에는 기자들이나 디지털 장의사, 방송 인터뷰한 전문가나 경찰 얼굴도 캡쳐해서 스티커로 만들었어요.

 

서로 ‘절대 잡히지 않는다’고 격려해주는 가해자들

 

- n번방 관련해서 언론 보도가 본격적으로 나온 게 지난 11월 같은데, 그때 텔레그램 방에서는 어떤 반응이 나오던가요.

= 보통 욕하는데, 본인들이 기사에 나온 걸 좋아하는 애들도 있었어요. 기사에 나온 대화 캡처본에 자기 대화명 나오면 ‘봐, 나 기사 나왔다’ 자랑하고, 그러면 서로 축하한다고 하고.

불안해하는 사람은 전혀 없었어요. ‘우리 이런 거 하다가 잡히면 어떡하나?’ 이런 말이 어쩌다 올라오면 다같이 몰려들어서 격려 해줘요. ‘절대 안 잡힌다’, ‘텔레그램은 수사 협조 안해준다’, ‘니가 올린 게 아니면 넌 안 잡혀’, ‘괜찮아’, ‘나가지마.’ 이렇게 격려를 해줘요. 끈끈하게.

요즘도 잡히지 않을 거라는 대화가 올라와요. 텔레그램 보안에 관한 기사들 검색해서 공유하고, 해외 번호로 텔레그램에 가입한 다음에 2차적으로 텔레그램 기능을 이용해서 개인정보를 가려라, 이렇게 자기들의 가해 수법을 안전하게 만드는 데 정보가 빠삭했어요. 그런 정보는 첫 통로인 고담방에서 공유했었어요.

 

- ‘아무 말 안 하고 보기만 했는데 억울하다’ 얘기한 사람들도 있었는데요.

= ’조주빈 때문에 우리까지 이게 뭔 난리냐’ 이런 반응이 지금도 있어요. 대체로 ‘야동 하나 봤다고 이 난리냐’ 이런 식이에요. 성 착취를 한 건데 그걸 그냥 ‘야동’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리고선 안심해요. 관전한 가해자들의 공통적인 특성이에요.

ⓒyoutube/추적단불꽃
ⓒyoutube/추적단불꽃
ⓒyoutube/추적단불꽃

- 직접 유튜브블로그를 만드셨던데, 어떤 것을 알리기 위해서인가요?

= 저희가 협조하는 경찰분이, 요즘 뜬 소문 때문에 경찰 수사에 혼란이 있다고 전해주셔서,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청와대 국민청원 내용 중에 ’150만원 내고 여성 성기에 벌레 넣은 걸 관음했다’는 표현이 있는데 그런 영상이 있는 건 맞지만 유료방이 아니라 그냥 클릭 몇 번만 하면 볼 수 있는 무료방에 올라왔던 거였어요. 2000명 넘게 들어가 있던 방이었어요.

또 피해자 중에 신상이 알려지는 게 두려워서, 혹은 경찰에게 피해 사실을 말하는 게 어려워서 신고를 못 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런 분들이 경찰이 신고나 언론 제보 같은 걸 원하시면 도와드리기 위해서예요.

 

회원은 26만보다 적지만, 가해자는 26만명보다 많을 수 있다

 

- ’추적단 불꽃’은 ’n번방’ 최초 신고자로 많이 알려졌는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뭔가요?

= ’26만명이 진짜냐 가짜냐’ 댓글로도 물어보시고 인터뷰에서도 많이 물어보세요.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가해자의 수에 초점을 맞춘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거든요. 피해 규모에 초점을 맞추고 그 규모를 축소시키기 위해서 경찰은 어떤 수사를 해야할지, 시민들이 감시자 역할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희는 가해자가 26만명보다 많을 수 있다고 봐요. 텔레그램 방 가입자들은 중복된 사람들이 있으니 26만명이 안 될 거예요. 그런데 디지털 성범죄는 텔레그램 안에서 공유될 뿐 아니라 밖에서도 공유될 가능성이 충분하잖아요. 다른 메신저, 해외 사이트에서도 공유되기 때문에 성 착취 영상들을 본 사람은 26만명 이상이지 않을까 싶어요. 남녀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로 봤으면 해요. 이 기회에 디지털 성범죄 문제 해결에 국민들이 힘을 합쳐야 할 것 같습니다.

25일 검찰 송치 중 언론에 공개된 조주빈
25일 검찰 송치 중 언론에 공개된 조주빈 ⓒKim Hong-Ji / Reuters

- 25일에 조주빈이 포토라인에 서서 여러 발언을 쏟아냈죠. 그 때문에 “범죄자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말라”는 목소리도 나왔고요. 사실 과시욕 강한 범죄자들에게 발언 기회를 주지 말자는 지적은 이번 사건에서 처음 나온 건 아닌데, 어떤 게 맞다고 보시나요.

= 저희도 그렇고 전 국민이 그때 같은 생각을 했을 거예요. 진심이든 아니든 가장 먼저 나왔어야 할 말은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라고요. 그런데 그건 없었잖아요. 유명한 사람들 이름이나 말하면서, 사기 혐의로 시선을 돌렸죠.

저희는 실시간으로 조주빈이 성 착취하고 중계하는 순간들을 지켜봤기 때문에 이게 ‘인격 살인’이라는 걸 알아요. 경찰에 신고를 하기는 하지만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 어떡하나 싶고. 피해자가 70명이 넘는 연쇄 인격 살인인데. 불우한 어린 시절 얘기하면서 동정 여론 같은 걸 끌어내려고 할지도 모르는데 연쇄살인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대우였다고 생각해요.

 

‘연쇄 인격 살인’, 반성은 없었다

 

- 신상공개만 하고 이 사건이 끝날까봐 우려된다고 하셨는데, 디지털 성범죄를 없애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 다 바뀌어야 해요. 개인의 인식부터, 교육, 처벌. 우리나라는 성범죄자에게 너무 관대하거든요. 영국이나 미국은 아동 성착취물이라고 하면 다운만 받아도 징역 22년 이런 식인데, 우리나라는 아니잖아요. 다운 받은 몇 만명에 대한 수사가 진행된 것도 아니고, 박사, 와치맨, 켈리, 이런 몇 명만 잡은 거잖아요. 아동 성착취 이끈 사람 중에 하나인 켈리는 작년에 고작 1년형 받았고요. 그 소식 들었을 때 지금 이렇게 채증하는 게 의미가 있나 무력했고 힘들었어요. 우리도 이번이 계기가 되어서, 처벌을 강화하면 좋겠어요.

또 피해자들은 ‘네 탓이야’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숨어버리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성범죄를 당했을 때 도울 수 있고, 앞서 예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그런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성세대도 성 착취 문제나 디지털 성범죄에 좀더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인식을 가지게 하고, 학생들도 남학생 여학생 전부 미디어에서 성역할이나 여성혐오적인 것들을 가려볼 수 있게 교육도 해야 하고요.

온라인 청원 사이트 change.org에 게재된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관련 청원
온라인 청원 사이트 change.org에 게재된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관련 청원 ⓒchange.org

- 텔레그램 같은 플랫폼에도 책임이 있다고 보시나요?

= 너무 있다고 보고요. 디스코드위커는 그래도 협조가 되는데 텔레그램은 협조한 이력이 없으니까 걔들이 안심을 하거든요. IT, 보안업계에서도 대응을 해야 합니다.

 

- 시민들에게 감시자 역할을 해달라고 했는데,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 지금도 잘 해주고 계신 거 같아요. ‘텔레그램 탈퇴 총공’해서 텔레그램의 반응을 유도하는 운동,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서 이 사건이 계속 이슈가 되도록 공론화하는 운동, 온라인 청원, 저희 유튜브에 응원 댓글도 남겨주시고 있고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 있으세요?

= 저희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응원도 감사하지만, 저희는 국민들이 다같이 디지털 성범죄 타도, 해결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힘을 합쳤으면 해요. 코로나19도 있고, 선거도 있지만 이 이슈가 죽지 않고 끝까지 힘을 합쳐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사건을 이해하기 어려워하시는 기성세대 분들도 계신데, 자식들 문제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갖고 들여다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답변은 명료성을 위해 일부 축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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