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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첫 번째 종착역

ⓒhuffpost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세상에 슈퍼히어로가 당신 하나뿐이라고 생각하나, 스타크?”

이 대사로부터 시작되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있어서 닉 퓨리의 이 말은 “빛이 있으라”와 같았다.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놀라운 광경을 목격해왔다. <아이언맨>으로부터 시작된 작은 불씨가 같은 코믹스 세계관 안에 있는 영웅들을 스크린 위로 호출하고, 그들이 한자리에 모여 분투하는 거대한 여정 말이다. 특히 이 모든 여정이 특정한 비전을 공유하는 창작자 그룹의 의사에 따라 일관되게 조율되고 계획되어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건 여태껏 없었다.

서로 다른 영화가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건 특별한 흥분을 가져다준다. 90년대 관객은 <프레데터2>(1990) 후반부에 에일리언의 두개골이 등장하는 찰나의 컷을 가지고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프레디 크루거의 손톱 칼날과 제이슨 부히스의 도끼가 한 화면 안에서 격돌했을 때 팬들은 눈물을 흘렸다.

마블 이후, 이제는 더이상 그런 게 새롭지 않다. 마블은 단지 세계관의 공유를 넘어 더 큰 것들을 시도하고 성공해왔다. <시빌 워>가 영화화될 것이라 이야기했던 건 예지력이 아니라 희망사항이었다. 자유와 안보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한가, 라는 21세기 가장 첨예한 질문을 두고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진영을 나누어 대립하는 코믹스의 <시빌 워> 이슈는,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앨런 무어<왓치맨> 이후 가장 뛰어난 그래픽노블이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시빌 워>를 근사하게 스크린 위에 옮겨놓았다. 그것만으로도 탄성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그게 다가 아니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지난 10년 동안 조금씩 축적되어왔던 인피니티 스톤(코믹스에서는 인피니티 잼) 이야기의 첫 번째 종착역이다. 타노스는 마침내 여섯개의 인피니티 스톤을 모두 모았고, 코믹스의 <인피니티 건틀렛> 이슈에서 그러했듯이 손가락을 튕기는 것으로 우주의 절반을 소멸시켰다. 코믹스에서는 건틀렛을 빼앗아 타노스의 명령을 다시 되돌리는 것으로 우주의 절반을 다시 소생시켰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영화에서 인피니티 건틀렛이 파손되는 걸 확인했다. 인피니티 스톤이야기의 두 번째 종착역이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한 시기를 마무리하는 <어벤져스4>에서는 앤트맨의 양자 영역을 통한 시간 여행과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엔딩 크레딧 영상을 통해 등장이 예고된 캡틴 마블의 참여를 통해 타노스 문제를 해결할 공산이 크다.

영화 속의 타노스는 악당임에도 불구하고 사심과 야욕이 없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그는 자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절반이 소멸되어야만 우주가 균형을 이루어 지속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그것을 이루는 것 이외에 그가 바라는 건 없다. 코믹스의 타노스는 연인인 데스를 향한 인정 욕구 때문에 살육을 감행하고 인피니티 건틀렛의 위력에 현혹되어 신 위의 신처럼 군림하려 들지만, 그조차도 건틀렛을 빼앗기고 난 이후에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갖는다는 것에 대한 허무함과 부질없음을 느끼며 농부가 되어 농사를 짓는 걸로 그려진다.

영화 속 타노스는 마블 세계관에 존재하는 수많은 우주의 신적 존재들을 능가하는 최고 권력자가 되고자 하기보다 흡사 18세기 경제학자 맬서스에게 감화된 급진주의자처럼 보인다. 토머스 맬서스는 32살에 발표한 <인구론>을 통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말했다. 식량 생산이 인구 증가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파국은 예정된 것이라는 이야기다. 더불어 그는 이러한 파국을 피하기 위해 빈민의 인구 증가를 조절해야 하며, 결혼과 출산을 자제하도록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 불평등 문제는 지배계층 탓이 아닌 필연이기 때문에 혁명이 아니라 빈민의 인구 증가를 조절해야 해결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맬서스의 생각은 빈민 구제나 복지 정책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의 근간이 되었다.

타노스는 고향별 타이탄이 자원 고갈의 문제를 겪자 인구의 반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침묵했다. 타이탄은 멸망하고 말았다. 이에 자신의 주장이 옳았다고 확신한 타노스는 우주의 절반을 없애 균형을 찾고자 한다. 타노스가 맬서스와 다른 점은 부자와 가난한 자를 가리지 않고 인구를 줄여야 한다고 믿는다는 데 있다.

여기서 다소간의 논리적 모순이 생긴다. 코믹스에서의 타노스는 앞서 이야기했던 바와 마찬가지로 연인 데스를 향한 인정 욕구 때문에 우주적 살육을 자행했다.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의 타노스는 고향별 타이탄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고 우주 만물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우주의 절반을 없애려 한다.

그렇다면 6개의 인피니티 스톤을 장착한 건틀렛을 가지고 우주의 절반을 없애는 건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게 된다. 완성체가 된 인피니티 건틀렛을 소유한 자는 뭐든지 할 수 있다. 새로운 우주를 만들 수도 소멸시킬 수도 있다. 차원을 없애거나 합칠 수도 있다. 그야말로 우주 만물의 규칙을 바꾸고 새로 쓸 수 있는 우주의 주권자가 된다. 한정된 자원으로 인한 인구 과잉이 문제라면, 이를테면 엔트로피 법칙을 역전시켜 거스를 수 있도록 우주의 규칙을 새로 쓰면 된다.

양보해서 엔트로피 법칙을 역전시키는 정도의 일을 벌이려면 인피니티 건틀렛으로는 안 되고 하트 오브 유니버스(마블 세계관에 존재하는 절대적 힘. 하트 오브 유니버스의 소유자는 마블 세계관에서 원 어보브 올을 제외한 최상위 존재라고 할 수 있는 리빙 트리뷰널이나 이터니티를 능가하게 된다)가 필요하다고 해보자. 그러면 인피니티 건틀렛을 가지고 자원이 고갈될 때마다 자원을 만들거나 새로운 행성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인피니티 스톤을 모두 모은 시점에서 더이상 할 필요가 없는 고민때문에 굳이 우주의 절반을 없애는 걸 보면 타노스가 과연 지혜를 관장하는 소울 스톤을 제대로 장착한 게 맞나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물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의 인피니티 건틀렛이 오직 우주의 절반을 없애는 특정한 명령만을 수행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는다면 앞선 의문은 해소된다. 하지만 그다음에는 애초 인피니티 스톤을 만든 마블의 우주적 존재들- 인피니티, 이터니티, 엔트로피, 데스가 왜 그런 괴상한 명령만을 수행하는 조합을 만들어냈을지에 관한 의문이 생긴다. 일단 지금 시점에서는 전개상의 작지만 깊은 틈으로 보는 게 적절해 보인다.

내년에 공개될 <어벤져스4>를 기점으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현재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만 치중되어 있는 코스믹 유니버스 분량이 대폭 늘어날 것이다. 타노스와 인피니티 건틀렛 이슈까지 등장했으니 그보다 더 강한 적을 상정하려면 다른 경우의 수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를 통해 등장이 예고된 아담 워록이 등판할 것이고 인피니티, 이터니티, 엔트로피, 데스, 리빙 트리뷰널까지는 아니더라도 갈락투스나 실버 서퍼 정도는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일단 폭스가 디즈니에 인수된 상황을 고려하면 타노스 이슈를 마친 향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메인 이벤트는 <어벤져스 대 엑스맨>으로 이어지면서 피닉스 포스를 다루는 게 가장 타당해 보인다. <시빌 워>가 그랬듯이 영화적으로 펼쳐내기에 가장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폭스의 <엑스맨> 세계관을 그대로 가져오려면 퀵 실버나 스칼렛 위치 등 몇 가지 설정 충돌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다시 10년의 기다림과 상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10년이 그랬듯이, 마블은 그 이상을 보여줄 것이다.

* 씨네21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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