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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13일 10시 45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6월 13일 10시 45분 KST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결과 단상

David Mercado / Reuters
huffpost

CVID에 천착하는 일부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은 이번 정상 정상회담 결과를 폄하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대체로 성공적인 회담이었다고 본다.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1. CVID는 과연 현실적인가?

이번 합의문에는 미국이 요구해 왔던 CVID(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라는 용어 대신 CD(Complete Denuclearization)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CVID는 북한의 완벽한 항복을 의미하는 비핵화이다. VI는 ‘검증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이라는 뜻으로 미국 주도로, 미국이 완전하다고 인정할 때까지,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검증가능’하다는 요구를 완벽하게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언제든지 북한 전역을 이 잡듯 뒤지면서 북한의 비핵화 프로그램을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돌이킬 수 없는’이라는 요구를 완벽하게 실현하기 위해선 북한의 핵무장 능력을 완벽하게 파괴해야 한다. 그것은 북한의 핵과학자와 기술자들을 완벽하게 북한의 통제 범위 밖으로 이주시키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나아가 핵무장에 관심 있는 북한의 지도층을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미국이 군사력을 동원해 북한을 굴복시키지 않는 한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VI는 북한정권의 해체와 같은 말이며 이것은 북한의 체제보장(안전보장) 요구와는 정반대의 상황으로 북한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번에 북미 정상이 CVID를 CD로 정리한 것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미국의 체제보장 약속의 적절한 절충이라고 본다. 주권국가인 북한으로서는 정당한 주장이었고 미국으로서는 현실을 수용한 것이다. 이 지점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다.

2. 우리가 CVID를 요구할 필요가 있는가?

이 시점에서 우리(남한) 자신에게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북한에 요구하는 비핵화의 수준이 어느 정도이어만 할 것인가이다. 우리도 그동안 미국이 요구하는 것처럼 CVID를 북한에 요구해야 할까? 결단코 아니다. 우리에겐 그만큼의 이해관계가 없다. 북한의 핵무장은 미국을 겨냥한 것이지 남한 타격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이 남한을 상대로 핵무기든 재래식 무기든 관계없이 전면적 도발을 해 오면 남북한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북한의 지도부가 이성능력이 없는 괴물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우리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무모한 짓을 벌릴 수 없다. 북이 핵을 개발한 것은 남한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과의 협상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더 이상 부인해선 안 된다. 사실 우리로선 북이 핵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게 남한 공격용이 아닌 바에야, 크게 두려워 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북에 대해 비핵화를 요구하는 것은 북의 핵이 북미의 첨예한 갈등을 가져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북에 대해 비핵화를 요구하는 수준은 CVID 그 자체가 아니고 미국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즉, 협상 가능한 수준)이면 되는 것이다. 어제부로 그 수준이 CD로 조정되었다면 우리가 그것을 거부하기는커녕 환영할 일이다.

3. 이번 합의는 위대한 미래를 위한 첫 걸음이다.

북미 정상간 서명된 합의서가 희망적인 북미관계를 보장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합의는 두 나라 간의 작은 진보(A small step for two countries)에 불과하다. 사실 그것은 언제든지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취약한 정치적 선언이다. 문제는 그 내용을 담보할 수 있는 후속조치다. 그것은 CVID 여부가 아니라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가시적 조치에 있다고 본다.

신뢰구축을 위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그래야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대접받으면서 CD 수준으로 조정된 비핵화를 진행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도와야 한다. 북미가 지속적으로 직접대화를 해나가면서 하나 둘 신뢰를 쌓아나가고, 가까운 시일 내에 평양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그것이 곧 완전한 국교 정상화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만, 이번 합의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될 때 그것은 한반도를 넘어 전 인류의 큰 축복(A great leap for all mankind)이 될 것이라 믿는다.

*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