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배운 성별 고정관념이 훗날 성차별이나 여성혐오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성평등 교육의 중요성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허프포스트가 직접 다녀온 인도, 스웨덴, 호주의 성평등 교육 현장 이야기를 4주 동안 전합니다.
스웨덴 정부는 ‘페미니스트 정부’다. 외부에서 붙인 별명이 아니다. 스웨덴 정부 스스로 규정한 이름이다. 2014년 스웨덴에서는 사회민주당이 주도하는 좌파연합이 정권 교체에 성공했고, 이들은 ‘페미니스트 정부’임을 내걸었다. 그 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페미니스트 정부’(A Feminist Government)
스웨덴 정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 글자가 크게 등장한다. 그리고 “여성과 남성은 사회적으로나, 개인 일상에서나 동등한 권력을 가져야 한다. 성평등은 스웨덴 정부의 정책 결정부터 예산 분배까지 모든 것에 있어서 최우선순위”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관습적인 ‘남녀’라는 표현 대신 ‘여성과 남성’(women and men)이라고 여성을 앞세워 기술한 게 눈에 띈다.
약간 과장하자면, ‘세상에 이런 나라가 있어???’라는 충격을 받게 만드는 나라다. 하지만 놀라긴 이르다. 아래 사진도 봐야 한다.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와 장관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장관 24명 중 12명이 여성이다. 스웨덴에서 여성 장관 비율이 50%를 처음달성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94년이었다.
*스웨덴의 성평등 지수
- 세계경제포럼 성 격차 지수 : 3위 (한국은 조사대상 149개 나라 중 115위) - 직장 내 성평등 실현을 점수로 매긴 유리천장 지수 : 1위 (한국은 29개 나라 중 29위) - 여성 국회의원 비율 : 46.1%로 전 세계 7위 (한국은 17.0%로 190위 중 118위) - OECD 성별간 임금 격차 : 7.3%로 10위 (한국은 34.6%로 37개 나라 중 37위)
허프포스트가 지난 9월 스웨덴을 찾았다. 성평등의 나라에서 성평등 교육을 취재하고자 했고, 간 김에 성평등 장관(Minister for Gender Equality)까지 인터뷰하는 것으로 약속이 돼 있던 차였다. 성평등 장관은 1980년생의 오사 린드하겐이다. 녹색당 소속인 오사는 스톡홀름시의회 의원 등을 거쳐 성평등 이슈를 책임지는 성평등 장관 자리에 올해 1월 취임했다.
오사를 만나러 가는 길, 설렘과 긴장된 마음이 교차한다. 구글맵에 주소를 찍고 장관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 앞까지 도착했는데, ‘여기가 정부 부처라고?‘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소박하다. 경비 노동자 단 한명만이 건물을 지키고 있었고, 문에 적힌 ‘정부 기관’(Regeringskansliet) 등의 작은 글씨를 제외한다면 여기가 정부 부처임을 드러내는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높은 담벼락도 없다. 스톡홀름에 머물면서 이 건물을 여러번 지나쳤건만 정부 부처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들어가는 절차는 간소했다. 한국의 정부 부처/ 국회의사당에 방문할 때를 떠올리며 30분 일찍 도착했건만, 여권 확인에 드는 2~3분이면 충분했다. 오사를 기다리는 동안 레깅스 운동복을 입은 여성 등이 건물을 오가는 걸 볼 수 있었다. 이른바 ‘높으신 분들’이 업무를 보는 곳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자유로워 보였다.
약속 시간이 되자 오사가 언론 담당 비서와 함께 나타났다. 약간은 어색하면서도 반가운 인사를 나눴는데, 장관을 수행하는 비서의 캐주얼한 옷차림이 눈에 들어온다. 비서가 장관을 깍듯이 ‘모시는’ 한국의 익숙한 풍경과 달리 두 사람에게서는 수직적인 위계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 게 신선하다.
동그란 테이블 앞에 마주 앉았다. 오사, 나, 그리고 비서. 3명이다. 비서는 “좀 더 페미니즘을”(MORE FEMINISM)이라는 문구가 적힌 나의 양말을 보며 “네 양말 마음에 든다”는 말을 건넸고, 딱딱한 분위기를 깨는 비서의 가벼운 농담(?)에 오사가 내 양말을 확인한 뒤 웃었다.
아래는 오사와 나눴던 이야기들이다.
- 스웨덴 정부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 정부’로 규정했다. 성평등을 왜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자든 남자든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하든, 모든 이는 동등한 기회와 인권을 가져야 한다.
또한, 성평등은 강력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스웨덴에서는 많은 여성이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있다.(2018년 기준으로 스웨덴 여성의 고용률은 80.4%다. 유럽연합 국가 평균 67.4%를 훨씬 상회하는 수치다.)
만약 여성들이 모두 집에서 가사 노동만 한다면, 회사는 남성 인력만 이용해야 한다. 남성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구성원의 경험과 지식을 이용하는 게 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훨씬 도움이 되지 않겠나. (2017년 한국의 국회예산정책처에서도 여성고용률을 남성 수준까지 올리면 연평균 0.2%포인트씩 안정적으로 경제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 많은 이들이 스웨덴의 성평등 정책을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자리에 오기까지 수많은 논쟁과 후퇴, 진보 등 지난한 과정이 있었을 것 같다.
= 물론이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투쟁이 항상 있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올해 여성의 참정권 획득 100주년을 축하하고 있다. 여성들에게도 투표할 권리를 줘야 한다는 싸움은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큰 싸움이었다.
또, 70년대에 스웨덴 여성들은 보육을 위하여 열심히 싸웠다. 매우 중요했던 투쟁이다. 여성들의 운동으로 스웨덴은 ‘모두를 위한 공공 보육 시스템’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공공 보육 시스템은 육아를 하던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일할 기회를 제공했다. 스스로 돈을 벌어, 경제적 독립과 자유를 누리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