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외과의사이자 패션 디자이너인 마야는 '상상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싶다' (인터뷰)

‘죽는 그 순간까지, 재미있게 살아가고 싶다.’

1975년생 뇌 외과의사이자 패션디자이너의 길을 걷고 있는 마야의 인생관은 ‘죽는 그 순간까지, 재미있게 살아가고 싶다’이다.

그는 도쿄에서 태어나 2000년 이와테 의과대학 졸업 후 케이오기주쿠 대학 병원의 뇌신경외과에서 근무했다. 이후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예술 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공부해 개인전 또는 쇼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패션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도쿄의 클리닉과 훗카이도의 한 병원에서 의사로 근무 중이다.

허프포스트는 의사와 패션 디자이너라는 자신이 선택한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는 마야를 만나 인생의 꿈, 그가 어떻게 외모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멋진 작품 세계를 탄생시켰는지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마야
마야

꽃무늬를 싫어하는 이유

보는 이를 행복하게 하는 컬러풀한 그의 작품들에는 어린 시절 외모 콤플렉스도 반영돼 있다.

″전 꽃무늬 옷을 잘 못 입어요. 작은 꽃무늬는 더 못 입어요. 작은 꽃이 가지는 ‘귀여워‘라고 하는 이미지에, 그걸 ‘당신이 잘 입을 수 있어?’라고 누군가 물을까 봐 무서워요”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이런 무서움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런 두려움과 콤플렉스에서 태어난 게 제 배 주위의 지방을 찍은 CT 이미지 텍스타일을 사용한 옷입니다. 이미지를 늘어놓으면 꽃무늬처럼 되더라고요. 나만의 꽃무늬를 만들어 기존의 꽃무늬를 뛰어넘었죠.”

마야가 만든 꽃무늬
마야가 만든 꽃무늬

마야의 작품에서는 화려한 색감의 조화가 눈에 띈다. ”제 작품이 컬러풀한 이유는 여러 색을 단순히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콤플렉스를 나타내기도 하기 때문이죠.’ 그가 말했다. 일반적인 옷차림을 하고 있으면 남의 눈에 띄지 않고 투명인간이 되어 버리지만, 일단 컬러풀한 옷을 입으면 특별한 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오오! 왠지 화려한 사람이 걸어온다’는 느낌을 주기를 바란다.

마야의 작품
마야의 작품

‘여성의 외모란’

일본 사회는 여성에게 외모를 과도하게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마야는 ”나는 비혼이다. 그런데 흔히 비혼인 사람이 주위에서 자주 듣는 ‘결혼 왜 안 했어요?’ 같은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아마도 내가 일본 사회에서 이상적인 외모와 거리가 있기 때문일 거다”라고 말했다.

마야는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 자랐다. ”할머니는 언제나 제게 너는 못생겼어. 그러니 제대로 된 직업이라도 갖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죠. 할머니는 내게 항상 독설만 퍼부었어요.”

처음에 마야는 할머니가 자신에게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중학교에 진학하며 학교에도 학생들 사이에 일종의 ‘계급’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할머니가 해 준 독설을 떠올렸다.

‘의대에 진학해서 자립하자’고 그는 그 때 마음먹었다.

직접 디자인한 안경을 설명 중이다
직접 디자인한 안경을 설명 중이다

할머니는 결국 세상을 떠났을 때 남은 손주들이 살아남을 수 있길 바랐다고 그는 말했다. 이 세상에 혹독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살기를 할머니가 원했다는 사실을 그는 성장하며 이해하게 됐다.

그는 학창 시절 외모 콤플렉스가 작품에 나타난다고 고백했다. ”다만, 반드시 비관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릴 적에 이미 힘든 시기를 보냈기에 사회의 통념에서 좀 더 자유로워졌죠.”

″할머니가 구입하던 여성 주간지를 어린 시절 즐겨 봤는데 연예인 역시 사생활에서 빚이나 가족 문제 등으로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남녀 사이가 험악해질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 여성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것이 무조건 행복하다 같은 ‘통념’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고 깨달았습니다.”

”물론, 이건 제 인생이고, 사람마다 여러가지 경험과 사고방식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의 통념도 변해간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있어 자립은 자유를 향한 여권이 되었습니다.”

마야의 마스코트
마야의 마스코트

‘재미있는 삶을 사는 것’이 내 삶의 한 축

그는 재미있게 살자는 생각이 인생의 축이라고 전했다. 인생을 재미있게 살자는 생각은 그가 의사이면서도 디자이너에 도전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것을 한 가지 더 말씀드릴게요.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할머니는 넌 가정환경이 복잡하니까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눈에 띄지 않게 교실 한구석에 있으라고 하더군요.”

″할머니는 제가 왕따를 당하면 불쌍하니까 저를 생각해서 한 말이지요. 그 말을 듣고 어떻게 하면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재미있는 사람이 되면 모두에게 인정받고 왕따를 당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대모사를 하거나 교실에서 ‘재미있는 사람 포지션’을 목표로 했습니다.”

아틀리에 벽에 글루건으로 그린 무늬
아틀리에 벽에 글루건으로 그린 무늬

상상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싶다

뇌 외과 전문의가 된 후 그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어느 날 그는 지하철을 타고 미래에 대해 고민을 했는데 매일 병원에서 수술만 하다가 75세쯤 고독사하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는 뇌외과 의사로 죽어가는 분들을 눈앞에서 많이 봤습니다. 와 사람은 반드시 죽는구나. 언제 내가 그렇게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라고 실감하던 적도 있었습니다.”

″문득 예측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저는 상상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마음 한구석에 있던 패션에 대한 그리움이 되살아나 패션을 하자!고 결심했어요.”

뇌 외과 의사이자 패션 디자이너

″뇌 외과 의사이자 패션 디자이너는 세계에서 한 명일 수도 있잖아요. 이 얼마나 재미있는 인생인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의사와 디자이너라는 두 가지 일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오히려 한쪽 일의 스트레스를 다른 일로 풀 수 있어 ‘마음의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자신의 우선순위가 뭔지 안다면 새로운 도전은 나이에 상관없이 가능하다고 그는 전했다.

개인의 선택을 인정하는 사회

마야는 세계에서 활약할 수 있는 디자이너를 목표로 한다. 2019년에는 캐나다 벤쿠버에서 성공적으로 쇼를 개최했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어요.”

그는 여성을 위한 메시지도 전했다.

″성별을 불문하고, 여러가지 의견을 흡수하는 힘이 있는 사람이 높은 위치에 올라가면, 의견을 서로 말할 수 있고, 타인을 인정할 수 있는, 재미있고 살기 좋은 사회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사회를 바꾸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여성이 세상에 더 나왔으면 합니다. 여성이 더 높은 곳을 목표로 삼았으면 합니다. 관리직을 목표로 하고, 위에 서서,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입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 가지 경험을 한 여성이 아래 세대의 의견을 종합해 나간다면 사회의 변화의 속도는 더 빨라지리라 생각합니다.”

마야
마야

마야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싶다면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트위터: @Dr_maaya_labo

-인스타그램: @dr.maaya.labo

*허프포스트 일본판 기사를 번역,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