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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게 나누는 희열을 즐겨보자

나는 내가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 안승준
  • 입력 2018.03.06 17:16
  • 수정 2018.03.06 17:22
ⓒhuffpost

난 모르는 전화번호로부터 걸려 오는 전화를 자주 받는 편이다. 생전 처음 보는 ID로부터 발송된 메일이나 메시지도 적지 않게 받는다.

인터넷 검색하면 나오는 몇 안 되는 시각장애인 중에서 온라인으로도 오프라인으로도 가장 접근가능성이 높아보여서인것 같다.

쉽게 말하면 적당히 알려져 있는 만만한 인사라고 느끼는 것 같다.

직장과 직업도 일반적으로 예측 가능한 공간을 벗어나지 않아서 어떤 경우는 무작정 사무실로 습격해 오는 분들도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내가 아는 선에서 질문에 답변을 드리기도 하고 만나서 함께 일을 하기도 한다.

특히 방학처럼 시간적 여유가 있는 시즌에는 학기 중보다 더 많은 사람과 만나고 더 다양한 일을 접하기도 한다.

나를 찾는 이들의 공통된 특성 중 하나는 매우 간절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넉넉한 대가를 지불하기엔 좀 곤란한 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takasuu via Getty Images

학교과제를 들고 오는 어린 아이도, 갓 시각장애를 겪게된 중도 실명인이나 그 부모님도, 장애 관련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청년 스타트업도 넉넉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리 발품 팔아가면서 나 같은 이를 만나러 오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도 한다.

나도 그닥 돈 욕심 많은 스쿠루지형 인간은 아닌지라 그런 쪽에서라면 세상 누구보다 쿨한 말투로 괜찮다는 의사를 표현한다.

상대가 나보다 경제적으로 극단적 우위에 있는 대기업 같은 경우는 제외하면 말이다.

인터넷이며 전화번호며 이리저리 뒤지고 찾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가지고 오는 문제는 그들에겐 해결 불능에 가까운 난제일 때가 많지만 내겐 특별한 고민 없이 답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과제인 경우가 더 많다.

시각장애인들의 삶에 관한 질문은 특수교육이나 장애인 복지를 전공한 친구들에게는 어려운 과제일 수 있겠으나 내겐 30여년의 일기 중 몇 쪽만 꺼내어 주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엊그제 시각장애와 만나게 된 중도 시각장애인이나 그 가족들에겐 지금의 상황이 하늘이라도 무너진듯 진퇴양란이겠지만 난 담담하게 때로는 웃음을 섞어가면서까지 그들에게 희망과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다.

장애 관련 사업을 준비하는 청년창업가에게 내 아이디어는 이노베이션일 수 있지만 그건 내가 가진 불편함에 대한 수많은 고민 중 아주 작은 부분을 나눠준 정도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리저리 돈도 안되는 일 쫓아다니는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연애 못하는 확실한 이유라며 충고하기도 하지만 나의 연애 장애는 그 때문만은 아니며 나의 일상은 예측불가능한 방문과 만남으로 더 즐겁다.

지상파 다큐맨터리나 감동을 유도하는 잡지사 인터뷰라면 내가 움직이는 이유를 제자들에 대한 책임감이나 장애를 먼저 가진 선배로서의 선구자 정신 따위로 포장할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전혀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그것보다 좀 더 단순하고 정확한 이야기는 나의 과거로부터 찾아진다.

처음 눈이 보이지 않았을 때, 그 눈으로 대학에 입학했을 때, 직장에 신입교사일 때도 내 삶의 많은 부분은 도움을 받는 장면으로 채워지고 색칠되어갔다.

동료의 팔을 잡고 이동하고, 다른 이의 눈으로 서류를 읽어내고, 일도 공부도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어렵사리 청한 도움이 거절된다는 것은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내겐 그렇지 않은 사람이 느끼는 몇 배의 상처가 되기도 했다.

난 조금씩 커 가면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도왔을 때의 희열을 진하게 기억하고 있다.

익숙한 길을 나보다 더 불편한 친구들을 안내할 때, 녹음하고 정리한 필기를 눈 보이는 대학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을 때,힘들어하는 후배들의 상담자가 되어줄 때, 첫 월급으로 선물을 살 때 비로소 난 좀 더 높은 수준의 존재감을 느꼈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에게 시험 답을 불러줬던 컨닝마저도 내겐 나눌 수 있는 권리에 대한 동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모든 것을 받기만 해야 하는 사람에게 나눌 수 있는 한 가지는 소원이고 목표이고 꿈이다.

밤에도 주말에도 방학에도 쉬지 않고 걸려오는 전화는 귀찮기도 하고 피하고 싶을 때도 많다.

그렇지만 그들의 목소리의 떨림을 듣고 간절함을 느낄 때 난 올챙이적의 첫 희열을 기억하고 감사하게 주어진 권한을 나누기로 한다.

불편한 눈을 가진 나의 삶은 아직도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많고 도움 줄 일보다 도움 받을 일이 더 많다.

늘 받기만 해야 하는 우울함이 다시 찾아오지 않도록 내가 가진 작은 것이라도 나눌 수 있을 때 열심히 나누도록 더 힘을 낸다.

내가 가진 나눔의 권한은 언제 다시 사라질지 모른다.

당당하게 도움을 청하려면 가진 것이 있을 때 신나게 나누는 희열을 즐겨보자.

그것이 서로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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