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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성의 기회는 항상 '나중에' 주어지는 걸까?: JTBC '슈퍼밴드' 논란을 보며

애초에 방송사부터 남성 중심으로 기회를 배분한다면, 그들이 이야기하는 '나중'은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슈퍼밴드> 시즌1에서 우승한 밴드 호피폴라 출연 장면 <a href='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978020.html?_fr=mt1#csidx94e74d32ec4aa4794b2f372887f0069'></div></a>
<슈퍼밴드> 시즌1에서 우승한 밴드 호피폴라 출연 장면  ⓒJTBC

몇년 전, 여성 가수들이 많이 소속된 회사의 간부급 매니저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상대는 한숨을 쉬며 소속 남성 가수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개가 잘되어야 할 텐데 말이죠.”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회사에 소속된 여성 가수들은 이미 각자의 색을 드러내며 성과를 거두고 있던 중이었고, 그가 한숨을 쉬며 걱정했던 남성 가수는 아직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기 전이었다. 싱글 앨범이나 정규 앨범을 낸다 하더라도 더 여유 있게 준비해 내실을 갖춰 나오는 편이 나은 상황이라, 벌써부터 걱정할 단계로 보이진 않았던 것이다. 회사는 소속 여성 가수들로 다채로운 포트폴리오를 쌓고 있는데, 아직 제대로 첫발도 떼지 않은 남성 가수를 걱정하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쉴 이유는 또 무엇인지 의아했다.

 

남성 가수-여성 팬에 집중하는 음악사업

그의 설명은 이랬다. 오늘날의 음악시장은 단순히 ‘내 가수의 음반을 사주는’ 것만으론 성공을 말하기 어려운 시장이 됐다. 음원이 발매되면 스트리밍으로 순위를 높여주고, 사인회 참가 신청을 할 응모권을 확보하기 위해 다량의 음반을 구매하고, 가수 관련 기사에 ‘좋아요’를 누르고, 각종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에 가수 관련 글이나 이미지를 올리며 검색량과 언급량을 높이고, 콘서트 티켓을 구매하고 관련 굿즈를 구매하는 등 다양한 경로로 가수를 지원해주는 팬들의 활약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그런 활약을 가장 열심히 해주는 소비자층은 젊은 여성 팬들이다. 그들은 팬 활동을 일찌감치 보편적인 또래문화로 접하며 성장했기에 스트리밍부터 검색량 증대에 이르는 다양한 태스크에 익숙하며, 참여 인구 규모도 다른 성별이나 세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다. 수익 구조가 다변화되고 복잡해진 오늘날의 음악시장에 젊은 여성 팬들만큼 기민하게 활약하는 소비자층은 없다. 그래서 회사 입장에서는 주 소비자층인 젊은 여성 팬들이 좋아할 만한 가수를 선보이는 게 중요한데, 여성 가수들에게 환호를 보내는 여성 팬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남성 가수나 남성 아이돌 그룹의 수요가 더 높다는 것이다. 단순히 좋은 음반 하나 만드는 것에 무게를 두면 여성 가수들이 종횡무진 활약하는 지금의 포트폴리오도 훌륭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꾸준히 음악사업을 한다고 생각하면, 현실적으로는 회사에 돈을 더 많이 벌어줄 남성 가수가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JTBC

몇년 전의 대화를 새삼 다시 떠올린 건 <슈퍼밴드> 시즌2 때문이었다. 제이티비시(JTBC)가 만드는 밴드 결성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밴드>는 ‘글로벌 슈퍼 밴드’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실력파 뮤지션이라면 장르나 다루는 악기, 나이, 국적, 학벌에 무관하게 모두 참가할 수 있다고 문호를 열어두었다. 그렇게 열린 마음으로 참가자를 받는 <슈퍼밴드>는 이번 시즌에도 오로지 ‘남성 뮤지션’만 참가자로 받는다. 이미 재작년 시즌1을 만들 때에도 “왜 남성 참가자만 받느냐”라는 논란에 휩싸였으니, 벌써 두차례 연속이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같은 제작진이 만든 크로스오버 중창단 그룹 결성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 또한 오로지 ‘남성’ 사중창단 결성을 목표로 세 시즌을 달려왔으니 다섯차례 연속이다.

 

여성들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면

<슈퍼밴드> 시즌1 당시 “왜 여성은 받지 않느냐”라는 논란이 커지자, 연출을 맡은 김형중 프로듀서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기획 의도는 머룬파이브 같은 글로벌 팝 밴드를 만들어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초반 시즌은 지향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남성 위주로 갔다”고 말하며, “추후 프로그램이 잘되면 여성 멤버 위주이거나 혹은 여성이 포함된 시즌도 제작할 의향이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시즌1은 조원상 팀이 재해석한 콜드플레이의 노래 ‘어드벤처 오브 어 라이프타임’(Adventure of a Lifetime) 영상이 원곡자인 콜드플레이의 극찬을 받는 등 다방면으로 화제가 되며 성공을 거뒀지만, 시즌2가 됐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중에’라는 약속은 이처럼 반복해서 유예된다. 그 ‘나중’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사실 우리는 더 솔직한 대답을 들었던 적이 있다. <팬텀싱어> 시즌2 톱12 기자간담회에서, 김형중 프로듀서는 왜 여성은 참가를 못 하냐는 질문을 받고는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애초에 기획 단계에서 남성 사중창단을 찾는 것으로 콘셉트를 잡았다. 막상 방송이 나오니 ‘여자 사중창단은 왜 안 나오나요’ 하고 물으면 ‘그러게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할 생각이 없었다는 얘기다. <팬텀싱어> 또한 꾸준히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하라는 지적을 받았음에도 끝까지 남성 사중창단 기획으로만 유지되었으니, 같은 제작진이 만든 <슈퍼밴드> 또한 시즌을 반복하더라도 ‘나중에’라는 말을 반복하며 남성 밴드 결성 프로그램으로만 갈 것이라 추측하는 것도 결례는 아닐 것이다.

방송을 상업적으로 안정적인 가도에 올려둬야 한다는 부담감을 짐작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사실 그 이유가 아니라면 굳이 남성으로만 참가자를 제한하는 정당한 명분을 찾기가 어렵다. 엠넷 <언프리티 랩스타>, 티브이조선 <내일은 미스트롯>, <내일은 미스터트롯>처럼 솔로 가수를 찾는 종류의 쇼라면, 재능과 매력을 같은 선상에 두고 가늠할 수 있는 기준으로서 성별이 정당성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밴드도, 중창단도, 각기 다른 소리를 내는 멤버들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소리를 완성해나가는 게 목표인 집단이 아닌가. 상업적인 이유를 제하고 나면, 반드시 남성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해야만 하는 정당한 이유를 떠올리기 어렵다. 

그런데 남성 가수들의 수익성이 더 높다는 것이 과연 원인일까, 결과일까? 어쩌면 우리는 원인과 결과를 헷갈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남성 가수들의 수익성이 더 높기 때문에 남성 가수들이 더 많이 기획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의 기획이 남성 가수들 위주로 되었기에 남성 가수들의 수익성이 더 높은 건 아닐까? 실제로 음악시장의 상황이나 젊은 여성 팬들의 소비 패턴은 지난 몇년 사이 유의미하게 변하고 있다. 그사이 스스로 곡을 쓰며 팀 전체의 프로듀싱을 진두지휘하는 전소연이 리더로 있는 아이돌 그룹 (여자)아이들, 무대 장악력으로 대형 여성 솔로 댄스 가수의 명맥을 이어갈 거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청하, 90년대 질 앤 스윙을 2020년대 감성으로 풀어내는 싱어송라이터 박문치, 무대 위의 카리스마와 소셜미디어 속 친근함으로 가장 주목할 만한 래퍼로 떠오른 이영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밴드 ‘새소년’의 프론트퍼슨 황소윤 등의 여성 가수들이 대중의 환호를 받으며 ‘덕후몰이’에 성공했다.

이제 뛰어난 여성 가수를 단순히 동경이나 선망의 대상, 롤모델로 삼는 것을 넘어, 남성 가수를 소비하고 지지하는 것과 같은 패턴의 적극적인 애정표현과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 일은 젊은 여성 팬들 사이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광경이 됐다. 아직 수익성이나 지지도 면에서 남성 가수들이 더 유리한 면이 있지만, 반복되는 도전 속에서 분명 상황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잠재력과 가능성은 그걸 키우고 펼칠 만한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키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주된 플레이어인 방송사부터 남성 중심으로 기회를 배분한다면, 그들이 이야기하는 ‘나중’은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슈퍼밴드> 시즌2 관계자는 “향후 지원 요건을 여성으로 넓히는 것을 열어놓고 고민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지금 여기서 더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우린 같은 방송사의 같은 제작진이 만든 오디션 프로그램의 다섯 시즌 동안 들었던 대답을 다시 듣게 될지도 모른다. “추후에, 향후에, 이번 시즌이 성공하면, 나중에.” 당장의 기회는 간절한데 미래의 약속은 턱없이 막연하다. 그러니 나중이란 말은 넣어두고, 여기서 뛰어라. 여기가 로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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