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 맨부커상 수상했다

  • 원성윤
  • 입력 2016.05.17 05:16
  • 수정 2016.05.17 06:08
ⓒ연합뉴스

소설가 한강(46)이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을 받았다.

맨부커상선정위원회는 16일(현지시간) 밤 영국 런던 빅토리아앤알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공식 만찬 겸 시상식에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발표했다.

영어권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이 책을 번역해 해외에 처음 소개한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29)도 한강과 함께 공동 수상자로 호명됐다.

'채식주의자'는 한강이 2004년 발표해 2007년 단행본으로 출간한 작품이지만, 해외에서는 작년 1월 처음으로 소개됐다. 어릴 때 육식과 관련된 트라우마를 입은 한 여자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극단적인 채식을 하면서 죽음에 다가가는 이야기다.

사진은 한강(오른쪽)이 시상식 후 스미스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한강은 "책을 쓰는 것은 내 질문에 질문하고 그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때로는 고통스러웠고 힘들기도 했지만 가능한 한 계속해서 질문 안에 머물고자 노력했다"며 "나의 질문을 공유해줘서 감사하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영국 인디펜던트 문학 선임기자인 보이드 턴킨은 "맨부커 인터내셔널을 수상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잊혀지지 않는 강력하고 근원적인 소설"이라며 "압축적이고 정교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로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묘한 조화를 보여줬다"는 찬사를 보냈다.

그는 "간결하고 아름답게 구성된 이야기는 한 평범한 여성이 자신의 집과 가족, 사회를 묶는 모든 관습을 거부하는 과정을 그린다. 서정적이면서 동시에 날카로운 스타일의 이 소설은 독자들의 마음 속이나 꿈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고 평했다.

맨부커상은 영국 등 영연방 국가 작가에게 주는 상(Man Booker Prize)과 영연방 외 지역 작가와 번역가에게 주는 인터내셔널(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 부문 상으로 나뉘어 수여된다. 한강은 지난 3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longlist) 13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된 데 이어 지난달 6명의 최종후보(shortlist)에 이름을 올렸다.

터키의 노벨상 수상자 오르한 파무크, 중국 거장인 옌렌커, 앙골라의 호세 에두아르도 아구아루사, 이탈리아의 엘레나 페란트, 오스트리아의 로베르트 제탈러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최종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맨부커상은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번역의 중요성을 고려해 작가와 번역가에게 공동으로 수여한다. 상금 5만 파운드(한화 8천600만원)를 나눠 갖는다.

스미스는 문학적 뉘앙스를 잘 살린 수준 높은 번역으로 이번 수상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채식주의자'를 읽고 매료된 그가 번역본 일부를 영국 유명 출판사 포르토벨로에 보내 출간이 이뤄지면서 영국을 비롯한 해외에 한강의 이름을 알렸다.

한강은 수상하게 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단 한국에 훌륭한 동료와 선후배 작가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좋은 번역자와 편집자를 만나서 굉장히 행운이라고 생각하는데 앞으로 이런 일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 소설은 상업성이나 대중성이 없는 소설이며, 인간에 대한 질문들을 붙잡고 씨름하는 소설들"이라며 "만약 이번 수상을 계기로 독자들이 소설 읽기를 좀 다르게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독자들에게 "조금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내치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나눠갖는 마음으로 읽어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맨부커상 수상자에게는 국제적인 명성도 따른다는 인식에 대해서는 "일단은 제게 중요한 것은 제가 계속 글을 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하나의 작품을 쓸 때마다 '작품을 완성할 수 있을까?'라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그렇게 때문에 아마 이런 상을 받은 것도 곧 잊어야 할 것이고, 곧 잊게 될 것이다"고 했다.

그는 수상 직후 연단에 나와 "10년 전쯤에 쓰인 책으로 지금 이런 상을 받게 된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며 "책을 쓰는 것은 내게는 질문하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가능한 한 계속해서 질문 안에 머물고자 노력했다"며 "때로는 고통스러웠고, 힘들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마지막으로 "깊이 잠든 한국에 감사드린다"며 "(독자들이) 나의 질문을 공유해줘서 감사하다. 이 기쁨을 가족과 친구와 나누고 싶다"고 밝혔다.

'세계 3대 문학상' 맨부커상은 어떤 상인가

맨부커상은 1969년 영국의 부커사가 출판과 독서 증진을 위한 독립기금인 북 트러스트의 후원을 받아 제정한 문학상이다. 2002년부터 맨 그룹(Man group)이 후원하기 시작하면서 맨부커상(The Man Booker Prize)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원래 매년 영국, 아일랜드 등 영국 연방국가 내에서 영어로 쓴 영미 소설에 한해서 수상작을 선정했다. 오랜 전통으로 영어권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아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 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부커상은 영연방 출신 작가만을 대상으로 해 다양한 문화권의 작품을 아우르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05년부터 인터내셔널 부문을 신설해 격년제로 비(非)영연방 지역 작가의 작품을 대상으로 작가와 번역가에게 공동으로 상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다 올해부터 인터내셔널 부문을 매년 시상하는 것으로 개편됐다.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오르려면 비영어권 지역의 작품이라도 영어로 번역돼 영국에서 출판돼야 한다. 한 작가의 작품 세계 전체를 평가하는 노벨문학상과 달리 맨부커상은 작가보다 작품을 우선으로 평가해 수여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원작 소설인 토머스 커닐리의 '쉰들러의 방주', 리안 감독의 영화로 유명한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국내에서도 인기를 끈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일본 출신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도 맨부커상 수상작이다. 인도 출신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의 소설 '한밤의 아이들'은 2008년 역대 부커상 수상작 중 최고작에게 주는 '최고의 부커상' 수상작으로 뽑혔다.

캐나다 출신 작가 앨리스 먼로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존 맥스웰 쿠체, 나딘 고디머는 맨부커상과 노벨문학상을 모두 수상한 작가들이다. 맨부커상 수상작은 수상 직후 영미권 판매량이 수십배 뛰어 베스트셀러가 된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소설가 #한강 #맨부커상 #문학 #문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