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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마지못해" 트럼프를 미는 이유는?

단 한 번도 공직에 있어 본 경험도 없으며, 국제 정세에 대한 이해가 손톱만큼도 없음은 물론이고, 경제 문제에 있어서도, 돈을 찍어서 빚을 갚겠다는 식의 아연한 주장을 거듭하는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이를, 뭐라도 씐 듯이, 저명한 공화당의 주요 정치인들이, 심지어는 개인적인 모욕을 트럼프에게 당하고 나서도, 자당의 대선 후보로 지지하겠다고 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필자는 정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그렇게 많은 유력한, 멀쩡해 보였던 정치인들이, 대중에게 인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해서, 파멸과 실패가 또렷이 보이는 지도자를, 이렇게 지지한 예가 과연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필자는 그런 역사적 사례가 하나 있었음이 떠올라서 소름이 쫘악 끼치지 않을 수 없었다.

  • 바베르크
  • 입력 2016.05.16 11:05
  • 수정 2017.05.17 14:12
ⓒChris Tilley / Reuters

미국과 전세계의 양식 있는 이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사업가 도널드 트럼프가, 올해 11월에 치러질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설 미국 공화당의 후보 지명을 받는 것은 이제 불가피해 보인다. 트럼프의 당내 경쟁자이던, 테드 크루즈 연방상원 의원과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가 경선 참여 중단을 선언하여, 트럼프는 현재 독주 중이다. 그는 곧 미 공화당 전당대회에서의 대선 후보 지명을 확정짓는데 필요한 대의원을 충분히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히스패닉과 같은 미국 내 소수 인종을 비하하고, 무슬림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시키겠다고 위협하였으며, 여성 혐오 발언을 쏟아 내는가 하면, 유럽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위협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언행을 계속해 왔으나, 결국 미국 양대정당 중 하나인 공화당의 대선 후보 자리를 움켜쥐게 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필자에게 더욱 놀라운 것은, 트럼프를 웃음거리로 취급하고, 그가 결코 대선 후보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폄하하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를 배제한 중재 전당대회(brokered convention)에서 다른 공화당 유력 정치인을 자당의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겠다는 논의를 하였던, 미국 공화당 유력 정치인들의 돌변한 태도였다. 일찌감치 트럼프 캠프에 가담하여 2012년에 이어 2016년 대선에서도 미국 민주당의 집권을 도울 기세인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주 주지사야 그렇다고 치고, 이미 한물간 정치인으로 다시 정치적 운세를 되살려 보려고 애쓰는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 같은 이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이야 그야말로 안물안궁이라 할 만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에게 자신의 북베트남에서의 포로 생활까지 거론되며 모욕을 당하였던, 2008년 미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에 맞섰던, 존 맥케인 연방상원 의원이나, 이번 당내 경선 기간 중에 트럼프에게 여러 가지로 놀림감이 되었던 마르코 루비오 연방상원 의원까지 트럼프 지지를 선언하고 나섰다는 소식에는 필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아가 트럼프에게 전화번호를 털려서, 자신의 핸드폰을 부수는 영상까지 찍었던 린지 그레이엄 연방상원 의원이나, 위 중재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추대될 가능성이 높았던 폴 라이언 연방하원 의장까지 트럼프를 지지할 기세를 보이니 어안이 벙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막말과 차별의 대명사 같은 정치인이, 19세기 중반 흑인 노예제를 폐지하고자 하는 이들이 뜻을 모아 만든 정당인, 다시 말해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정당인, 미국 공화당을, 포획하기에 이른 것에는 그간 이들 공화당의 유력 정치인들이, 티파티와 같은 극우적인 운동의 덕을 보려고 기대해 왔으며,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동성결혼의 합법화 같은 주장에 반대해 온, 복음주의적 개신교도들에 크게 의지해 온 탓이다라고 하는, 말하자면 자업자득이라는 의견들이 있으며, 필자도 이에 상당히 공감하는 편이기는 하다.

암만 그렇다고 쳐도 단 한 번도 공직에 있어 본 경험도 없으며, 국제 정세에 대한 이해가 손톱만큼도 없음은 물론이고, 경제 문제에 있어서도, 돈을 찍어서 빚을 갚겠다는 식의 아연한 주장을 거듭하는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이를, 뭐라도 씐 듯이, 저명한 공화당의 주요 정치인들이, 심지어는 개인적인 모욕을 트럼프에게 당하고 나서도, 자당의 대선 후보로 지지하겠다고 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필자는 정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나마 트럼프에게 당내 경선에서 참패한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및 그의 형인 아들 부시 대통령과 그의 아버지인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트럼프 지지를 선언하지 않은 것이 위안인지 우스개인지 잘 구분이 안되는 느낌적 느낌이라고나 할까).

도대체 그렇게 많은 유력한, 멀쩡해 보였던 정치인들이, 대중에게 인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해서, 파멸과 실패가 또렷이 보이는 지도자를, 이렇게 지지한 예가 과연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필자는 그런 역사적 사례가 하나 있었음이 떠올라서 소름이 쫘악 끼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아돌프 히틀러를 모시고 파멸로 뚜벅뚜벅 걸어 간 2차 대전 때의 독일의 예였다.

아돌프 히틀러 역시 정권을 잡기 전에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하사라는 비아냥을 들었었다. 히틀러가 독일의 수상이 되었던 1933년 1월에 그를 밀어 올린 독일의 보수파 정치인들은 히틀러를 꼭두각시처럼 여겼고, 그를 조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히틀러가 초기에 보여 준 "성과"가 신기루임이 드러나고, 그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하는 것이 분명해진 다음에도, 심지어 당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들이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독일 국방군의 장교단조차도 히틀러를 끌어내릴 꿈조차 제대로 꾸지 못했다. (그나마 슈타우펜베르크 중령의, 실패로 끝난, 히틀러 암살 기도가 있었기에 독일 군부와 독일인들은 겨우 명예를 지켰다.)

나치 독재정권 하에서 정보가 통제되어 있었고, 비밀경찰들이 촘촘히 사회 곳곳에 박혀 있었기에, 독일의 일반 대중들이야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이라든지, 전쟁에서의 승리 가능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나치에 복종했다는 변명이라도 혹시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중들보다는 히틀러의 실상을 훨씬 더 잘 파악할 수 있었던, 독일의 정계, 재계, 군부의 주요 인사들은 어찌하여 히틀러와 같은 괴물에 질질 끌려다녔고, 끝내 조국과 국민들이 파멸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 본 것일까? 이에는 거칠게 보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아래의 두 가지 이유는 이언 커쇼 교수의 히틀러 전기의 해당 부분에서 얻은 견식이다).

첫째, 독일의 엘리트 집단 중 하나인, 독일 국방군 장교단의 경우에, 이러한 현상에 대한 하나의 가설로 꽤 많이 논의되는 것은, 그들이 히틀러에게 하였던 충성 서약에 묶여 있었다는 관찰이 아닐까 싶다. 즉 히틀러가 총통으로 독일의 군부도 모두 장악하고 난 후에 그는 장교단으로부터 충성 서약을 받았는데, 의무와 규율을 중요시하는 독일 국방군의 장교단이, 그러한 충성 서약에 묶여, 객관적으로 보아도 히틀러가 독일을 망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음에도 그를 처단하거나 끌어내리려는 기도를 감히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둘째, 또한, 히틀러가 독일의 국가 최고 지도자였고, (비록 히틀러의 침략으로 개시된 것이기는 하지만) 독일이 당시 전쟁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최고 사령관이라 할 히틀러에 반기를 드는 것은 조국을 반역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딜레마를 이들 독일의 엘리트 장교단이 안고 있었다는 것이 다른 이유로 들어지는 것 같다. (그나마 슈타우펜베르크 중령과 그에 동조한 독일 내의 양심적 인사들은 독일 내에서도 모두가 그렇게 비굴하게 히틀러에게 복종하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며 저항하는 목소리도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하여 히틀러 암살 시도를 감행했던 것이다.)

논리의 비약이 없지 않겠으나, 독일 국방군의 엘리트 장교단이 이렇게 충성 서약에 묶이거나, 조국의 반역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히틀러의 광기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 것을 떠올려 보니, 미국 공화당 유력 인사들의 행태도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다. 즉 미 공화당 주요 인사들로서도, 당내 경선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합법적으로 자기네 당의 대선 후보 자리를 꿰어 차게 될 도널드 트럼프를, 그가 아무리 자격이 없어 보이는 언행을 거듭해 왔다고 해도, 거부하기는 어려웠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트럼프를 거부하는 것은, 아마도 그들이 대중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정치인이라는 것을 완전히 망각하지 않은 다음에야 불가능할 것이었을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부시 가문의 트럼프 거부는 상원의원과 주지사, 대통령 둘을 배출해 왕조라 불리는 부시 가문의 정체성과 어떤 면에서는 썩 잘 어울리는 셈이라고 하겠다).

둘째, 또 하나 미국 공화당 유력 정치인들이 결국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히틀러를 마지막까지 부여잡고 있던 독일 국방군의 장교단처럼, 그들이 트럼프를 버릴 경우에는, 정치적 적수인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금년 11월 미 대선에서의 승리를 헌납하게 되는 꼴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즉 그들은 이번 미국 대선전에서 적전 분열을 일으켜서 민주당이 승리하게 만들었다는 비난을 뒤집어 쓰기 싫었기에(2차 대전에서 미치광이 히틀러를 제거하는 것이 적인 연합국의 승리를 가져오게 될까 주저하였던 독일 국방군 장교단의 고민과 닮았다고 할 것이다) 결국은 마지못해서라도 트럼프를 지지하는 일에 나서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나름 내재적 접근법(웃음)으로 미국 공화당 유력 정치인들이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게 된 기이한 행동의 동기를 필자는 나름대로 해석해 보았다. 그러나 그들과 꽤 닮은 논리로 히틀러의 광기를 수용하고, 나치에 협력하였던 독일의 국방군 장교단이 결국 히틀러와 공범이 되어, 그들의 조국인 독일과 독일 국민들을 파멸시켰음은 물론이고, 세계와 인류에게 결코 씻지 못할 큰 죄를 짓고,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등을 통해 처벌되었듯이, 이들 공화당 유력 정치인들 역시 도널드 트럼프의 어이없는 행태에 가담한 죗값을 반드시 치르게 되리라고 믿고 싶다. 아니 미국과 미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와 인류를 위해서라도, 이번 11월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이 반드시 승리하여, 도널드 트럼프와 그를 지지했던 정신줄 놓은 미국 공화당 정치인들이 웃음거리가 되고, 그저 역사의 각주로나 남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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