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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을 홀대해서는 안 되는 까닭

국제 정치에는 영원한 동맹국도 적국도 없다. 대한민국도 1992년 '자유중국'과 단교하고 '중공'과 수교했다. 대세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을지라도 과정이 비정했다. 적정한 예고도, 설득도, 양해를 구하는 위무의식도 없었다. 타이완 정치의 핵심은 대륙 출신 국민당과 토착 세력을 바탕으로 한 민진당 사이의 경쟁이다. 지난 1월 선거에서 청년 세대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민진당이 승리해 입법부와 행정부를 함께 장악했다. 오는 20일, 차이잉원(蔡英文) 새 총통이 취임한다. 우리 정부가 어떤 형식으로 적절한 관심을 표할지 궁금하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타이완을 너무 홀대했다. 독립국의 자존심이 무색할 정도로 중국 정부의 눈치를 살폈다.

  • 안경환
  • 입력 2016.05.13 09:45
  • 수정 2017.05.14 14:12
ⓒASSOCIATED PRESS

지난주에 박근혜 대통령이 이란을 방문했다. 경제적 성과가 크다고 한다. 성급한 대차대조표에 흥분하기보다 차근차근 두고 챙길 일이다. 근래 들어 국가원수의 해외 나들이가 부쩍 늘어난 것은 국제사회에서 나라의 비중이 높아진 징표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비행기로 2시간, 지척에 두고서도 대한민국 국가원수가 찾지 못하는 외국이 있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편을 택한 것이다. 한때 우리가 '자유중국'으로 부르던 타이완이다. 국제사회에서 타이완은 나라이기도 아니기도 한 특이한 존재다. 1971년 유엔은 타이베이 정부 대신 베이징의 공산당 정부를 유일한 중국으로 인정했다. 그때부터 타이완은 유엔 밖의 외계국(外界國) 신세로 전락했다. 기껏해야 '양안(兩岸) 체제' 또는 '1국 2 체제'의 일원으로 '나라 안의 다른 나라'가 된 것이다. 실체는 엄연하되 국제 호적부에 등재되지 않은 인구 2400만의 섬이다. 일찍이 이 나라 소설가 우줘류(吳濁流)는 자신의 조국을 일러 '아시아의 고아'라고 자조했다. 1895년 전쟁에 진 청국이 버리다시피 일본에 건네준 섬이다. 그전에도, 그 후로도 침략자, 착취자들만 차례차례 '아름다운 섬(美麗島)'을 유린했을 뿐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자 하나 없는 외톨이였다.

10월 24일 '유엔 데이'는 1970년대 초까지 우리의 국가기념일이었다. 1948년 8월, 유엔은 새로 탄생한 대한민국을 즉시 승인했고, 전쟁이 일어나자 군대를 보내 나라를 지켜 주었다. 이날을 맞아 '국민학교' 학생들은 유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인 '자유중국'의 장제스(蔣介石) 총통 앞으로 감사의 편지를 썼다. 장 총통의 은혜도 기렸다. 나라를 빼앗긴 망명객들이 주권 회복의 꿈을 품던 상하이, 충칭 임시정부를 지원해 준 그였다. 1949년 8월, 대한민국을 찾은 최초의 국빈으로 격려의 언사를 건네주었고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이 끝나자 1953년 11월, 타이베이를 방문하는 답례를 치렀다. 당시 두 나라는 그런 사이였다.

국제 정치에는 영원한 동맹국도 적국도 없다. 대한민국도 1992년 '자유중국'과 단교하고 '중공'과 수교했다. 대세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을지라도 과정이 비정했다. 적정한 예고도, 설득도, 양해를 구하는 위무의식도 없었다. 한때 이 땅에 성행하던 전형적인 속물 드라마를 연상시키는 냉혹함으로 일관했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시골 청년이 부잣집 딸에게 장가들면서 그동안 몸과 마음 바쳐 뒷바라지한 시골 처녀를 헌신짝처럼 버린 격이다. 오늘 이날까지 풀리지 않은 타이완 국민의 분노와 배신감은 정당한 이유가 있다. 설령 '용서는 하되 결코 잊지는 않을 것이다.' 타이완 국민의 가슴에 숨겨진 비수다.

세월이 흘렀다. 역사는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간다. 당시에는 '국부(國父)'로 숭앙받던 두 지도자에 대한 후세인의 평가도 극단으로 갈린다. 그러나 적어도 강력한 반공 국가의 건설에 헌신했다는 공로는 기억해야 한다.

아직도 우리에게 타이완은 소중한 존재다. 정서적 차원의 과거 때문이 아니다. 국제 정치에 매우 유용한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날로 고조되는 베이징 중국의 패권주의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카드 만들기에 고심한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열네 나라가 공유하는 두려움이기도 하다. 중국 인접국과의 유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중국도 이러한 '오랑캐들의 합창'을 두려워한다. 분단, 민주화와 경제성장의 동시 성취, 자유주의 반공 국가, 이 모든 점에서 타이완은 우리와 동질성이 가장 강한 나라다. 학자들의 분류대로 '중국 최초의 자유민주정체(First Chinese Democracy)'이다. 그래서 우리와 동조하고 유대할 수 있는 주제와 폭이 넓다. 좀 더 큰 국제 정치의 그림으로 보면 남북한의 통일은 대륙 중국과 타이완, 양안국의 통일 문제와 연계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타이완 정치의 핵심은 대륙 출신 국민당과 토착 세력을 바탕으로 한 민진당 사이의 경쟁이다. 지난 1월 선거에서 청년 세대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민진당이 승리해 입법부와 행정부를 함께 장악했다. 오는 20일, 차이잉원(蔡英文) 새 총통이 취임한다. 우리 정부가 어떤 형식으로 적절한 관심을 표할지 궁금하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타이완을 너무 홀대했다. 독립국의 자존심이 무색할 정도로 중국 정부의 눈치를 살폈다. 이제라도 독자적인 타이완 정책을 세웠으면 한다. 비록 정식 국교가 끊어진 상태에서도 충분한 운신의 여지가 있는 법이다.

* 이 글은 조선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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