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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성소수자+대한민국=그들이 한글로 쓴 이야기

미국에서 16살 때 커밍아웃한 저는 한국 생활에 익숙해지기 힘들었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솔직히 못하기 때문에 어색한 상황을 많이 났습니다. 예를 들어서 저한테 매날 물어보던 그 질문 '션, 여친 생겼어? 아니라고? 왜 아직.. 잘 생겼는데...'. 미국이었다면 제가 '저는 게이예요'라고 대답해 버렸을 텐데 여기서는 반응이 뭘건지 몰라서 되게 조심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답답해지는 저는 드디어 동료들에게 고백해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 히지양
  • 입력 2016.05.16 07:48
  • 수정 2017.05.17 14:12

어느덧 5월 중순, 그 말은 제 17회 퀴어문화축제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 입니다. 저는 청계천 인근에서 축제가 열리던 2011년부터 퀴어문화축제에 관객으로서 참가를 해 왔으며, 2013년부터는 공연 및 퍼레이드 차량 탑승 등을 통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참여를 해 왔답니다. 공연과 퍼레이드뿐만 아니라 퀴어문화축제의 다양한 볼거리 가운데 하나는 수많은 부스들인데요. 최근에 들어서는 미국과 여러 유럽 국가들의 대사관에서도 부스를 열고 참여해 미디어의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대사관 외에도 여러 단체들, 개인들이 부스를 신청하여 축제를 찾는 이들과 소통하고, 다양한 기념품이나 예술작품, 먹을 거리와 마실 거리를 판매하기도 합니다. 최초로 시청 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작년에는 그 부스의 수가 200여 개에 달했다고 하지만 저는 여태까지 부스활동에는 크게 참여할 필요성을 못 느껴 직접 부스를 내지는 않고 구경만 했습니다.

작년 퀴어문화축제 현장의 수많은 인파와 파란 천막의 부스들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부스를 직접 차려보기로 했습니다. (물론 공연도 하고 퍼레이드 차량에도 올라가고 행위예술도 하기 때문에 굉장히 바빠지겠지요...) 저만을 위해 개인으로서 부스를 차리는 것은 아니랍니다. 현재 제가 페이스북 그룹을 기반으로 운영하고 있는 성소수자 관련 모임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LGBTQIA and Allies in Korea (한국 퀴어와 그 친구들)'라는 이름의 모임이랍니다. 제가 퀴어문화축제 및 퀴어 관련 행사와 예술활동에 많이 참여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에서 인지도가 늘고 관련 지식이 많아지기 시작했는데요, 이를 바탕으로 2014년 여름부터 운영을 시작한 모임입니다. 현재는 페이스북 그룹 기준으로 2400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답니다. 저는 제 성 정체성도 모두에게 오픈했을뿐더러 예술활동을 하면서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또 영어가 가능하다 보니 자연스레 회원들도 영어가 가능한 분들, 그리고 소위 말하는 '오픈마인드'를 지닌, 의사 및 개성의 표현을 자유롭게 하는 외국인 분들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인 성소수자 분들은 보수적인 직장환경이나 가족문제로 인해 성 정체성을 밝히지 못하고 그러다보니 이러한 모임에 참여하는 데에 다소 제약이 있는 경우가 많지요.)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한 모임 'LGBTQIA and Allies in Korea (한국 퀴어와 그 친구들)'의 로고

영어와 한국어가 모두 가능한 회원들, 다양한 시각을 가진 외국인들, 해외에 네트워크, 즉 인맥이 있는 회원들을 가진 모임은 그 모임만이 가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모임의 회원들은 한국에서 성소수자 문제와 관련해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을 한국어에서 영어로 번역해 해외로 전파하는가 하면, 반대로 해외의 성소수자 관련 소식과 문화를 한국으로 들여오는 역할도 수행합니다. 특히 시청광장 사용 여부를 두고 일부 기독교, 경찰세력과 크게 마찰을 빚은 작년과 같은 경우에는, 우리 모임의 회원들이 해외 여러 단체와 미디어에 이러한 소식을 알려 전세계인들이 기술적으로 경제적으로 놀라운 성장을 이룬 한국이, 인권문제에 있어서 이렇게나 뒤처져 있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한 바가 있습니다. 여러 사례가 있지만 대표적인 사례는 회원 가운데 한명인 Jenny가 연락을 취해 인터넷 상에서 아주 유명한 미디어 매체인 미국 버즈피드(Buzzfeed)에서 한국의 퀴어문화축제 취재를 위해 기자를 한국으로 특파를 보낸 것입니다.

또한 매년 열리는 퍼레이드만 보아도, 참여하는 외국인의 비중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지를 보내는 만큼 대우를 받고, 참여 의사를 밝히는 만큼 참여 기회를 제공받을까요? 한국의 특성상 많은 단체와 활동들이 지인들과 인맥에 의존을 하는 경향도 있고, 외국인을 같은 사람으로 보기 이전에 그저 '신기한' 존재로 보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너무 많습니다. 외국인들에게 제공되는 정보 또한 매우 제한적입니다. 저는 여태까지 퀴어문화축제에서 또한 외국인들이 주체가 되거나 외국인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부스나 활동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LGBTQIA and Allies in Korea (한국 퀴어와 그 친구들)'이라는 모임을 이끌어나가는 제가 이러한 소외계층(외국인 성소수자들)을 위해 조금 더 뭔가를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올해 퀴어문화축제에서 'LGBTQIA and Allies in Korea (한국 퀴어와 그 친구들)'의 이름을 내건 부스를 차리고자 결심한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부스활동은 무엇이 있는지 한번 같이 살펴볼까요?

'LGBTQIA and Allies in Korea (한국 퀴어와 그 친구들)' 부스에서 무료로 배포될, 혹은 판매될 아이템들 가운데 일부

상단 이미지에서 첫번째 그림은 미국에서 온 일러스트레이터 @thedrinkybear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thedrinkybear는 자신의 작품들이 그려진 스티커와 배지 등을 판매할 예정입니다. 두번째에 위치한 부채는 부스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무료로 나누어줄 여름날의 필수품 부채입니다. 앞면에는 제(Heezy Yang) 일러스트레이션이, 뒷면에는 우리 모임의 로고가 새겨져 있습니다. 세번째는 남미 여행 중 전통 공예에 영감을 받아 실을 이용한 매듭과 베틀 작업을 주로 하는 아티스트 현의 액세러리들입니다. 현은 핸드메이드 액세서리들뿐만 아니라 직접 염색한 형형색색의 티셔츠 또한 판매할 예정입니다. 네번째는 무더울 것으로 예상되는 퀴어문화축제날 여러분의 더위를 식혀줄 스윗하고 프레시한 칵테일입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작품 판매 및 프리허그, 휴식공간 제공 등의 활동이 기획 중에 있습니다. 이날 부스에서 수익을 올리는 모든 참여자들은 수익금의 일부를 'LGBTQIA and Allies in Korea (한국 퀴어와 그 친구들)'의 활동기금으로 기부하기로 했답니다. 그리고, 이제 한 가지가 더 남았는데요, 이것이 바로 제가 이 포스트를 작성하게 된 궁극적인 이유에 해당합니다.

***@thedrinkybear의 다른 작품들은 www.instagram.com/thedrinkybea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eezy Yang의 다른 작품들은 www.heezyyang.com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외국인 성소수자들이 직접 한글로 쓴 한국생활 경험담을 모아놓은 리플렛의 샘플 페이지

네, 바로 이 포스트의 제목이기도 한 '외국인 성소수자 + 대한민국 = 그들이 한글로 쓴 이야기'는 바로 우리가 부스에서 여러분들께 나누어드릴 리플렛의 타이틀 입니다. 제가 부스를 차리기로 했던 주된 이유가 외국인들이 한국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행하는 역할과 그들의 수고를 재조명하는 것이었는데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직은 외국인들이 낯설 수 있는 분들께 친근하게 다가갈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외국인들 또한 똑같이 인간들이며, 한국 문화를 존중하고 그것을 배우려 하는 외국인들 또한 많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제가 외국인 성소수자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것도 한글로 말이죠. 이 리플렛을 위해 이야기를 써 줄 외국인 성소수자들을 찾는 것은 제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그리고 한글과 한국 문화를 열심히 공부한 외국인 성소수자들이 우리나라에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설 발판을 마련할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이 외국인들의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들의 견해를 들어볼 기회 또한 가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 문단의 점진적인 설명을 통해 마침내 제 글이 여기까지 왔는데요, 그럼 이제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고 외국인 성소수자들이 정성껏 손수 써준 이야기들을 읽어보도록 합시다!

***모바일을 통해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의 편의를 위해, 손글씨의 스캔본 아래에는 그 내용을 컴퓨터로 타이핑한 것을 덧붙이도록 하겠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손글씨 스캔본을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글 쓴 분들이 작성한 글의 원본을 최대한 보존하고 자연스럽게 내버려두기 위해 이해가 불가능한 수준이 아닌 오류는 굳이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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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1 '개인적인 질문'

영어선생님으로서 수업에 늦게 도착 하면 안된다. 그래서 지각할 것 같을 때 택시를 꼭 잡아야한다. 택시기사는 제가 외국인인지 알게 되자 얼굴에 걱정 표정이 나타나는데 저는 한국말로 목적지 얘기하면 긴장이 다 풀리는 것 같다. 게다가 택시 출발 하면서 질문들이 몇가지 시작 한다:

미국인 이세요?

어느나라에서 오십니까?

몇살 이세요?

직업이 무어십니까?

교사 이십니까?

제가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택시기사는 궁금할 게 많은가 본다. 그래도 제가 외국인이라서 어떤 질문이 좀 개인적으로 느낀다...

월급이 얼마인가요?

결혼 하셨어요?

왜 안 했어요?

저는 몇년전에 캐나다에서 떠나고 한국에 계속 사니까 그런 개인적인 문의에 익숙해졌다. 주로 애매한 대답 하곤 한다. 그렇지만 가끔 질문들이 더 개인적으로 거슬리게 된다.

여자친구 있어요?

한국여자가 어때요? 좋아하세요?

한국여자랑 만난적이 많아요?

우리 대화에 그시점 정도 제 목적지에 몹시 도착 하고싶다. 어색하고 불편한 택시 타는 걸 겪어야 합니까? 그런 물음 어떻게 피할 수 있습니까? 택시 탈 때 한국말을 모른 척 해야합니까? 과거에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 했다. 아직도 그 답답한 느낌 기억난다. 솔직한 답장 못 하니까 수치심도 느꼈다. 그래서 얼마전에 이제부터는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개인적인 질문에 직면할때 꼭 대답 해야겠다. 택시기사에게 그 어색한 느낌 줘도 상관없다. 큰소리로 간단한 문장 얘기해서 모든 남은 질문들 답변한다:

아저씨, 죄송하지만 저는 남성을 선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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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2

안녕하세요? 저는 제니라고 해요. 캐나다에서 왔어요. 3년반 전에 한국에 왔어요. 저는 한국 LGBT(성소수자들)가 대단하다고 생각 해요. 올해 4번째 (참석하는) 서울 퀴어문화 축제가 될 거예요. 해마다 이 축제는 급격히 증가한 것을 봤어요. 작년에 한국 성소수자 사회 심지어 이 축제가 있기 위해 싸워야 했어요. 이번 싸움에 보고 참가하는 것을 자랑스러워 했어요. 저는 사람들이 24시간씩 일주일 이상 동안 경찰서 밖에 앉아 기억해요. 저는 몇 시간이라도 한국인과 외국인 성소수자들과 같이 앉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이 자랑스러워요. 저는 자랑스럽게 축제 개막식에서 성소수자 사회와 함께 서 있었어요. 시위대는 우리는 포위하고 우리는 그만 우리에게 외쳤다고 하지만 우리는 강하게 서 있었어요. 그런대 축제의 날 수많은 성소수자와 지지자 와서 함게 축하 했어요. 시위대는 주변을 둘러쌌지만 우리는 재미를 가지고 있고 그들이 우리를 그만두게 하지 않아요. 저는 그 날 잊지 못 할 수 있어요.

한국 성소수자 생활 아주 어려운 것을 알아요. 제 한국 성소수자 친구들이 부모님에게 거짓말해야 해요. 생활을 감취야 해요. 너무나 많이 비밀을 지켜야 해요. 다른 사람인 척하는 것이 진짜 힘든 것을 알아요. 어렇게 살면 생활이 정말 어려운 거예요. 이 사람들이 나보다 더 강해요.

그런데 제 어떤 한국 친구들은 커밍아웃을 했어요. 이 친구들이 정말 용감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커밍 아웃이 위험한 것 같아요. 가족이 반대할 수 있고 친구들이 거부할 수 있어요. 집에서 쯫아낼 수 있고 작장에서 해고될 수 있어요. (현재 커밍아웃을 한) 그 사람들이 한국 사회를 바꾸는 것을 도와요. 미래의 한국 성소수자들이 이 사람들에게 감사할 거예요.

이 사람들이 나에게 희망을 줘요. 그리고 그 것은 이미 돕고 있어요. 해마다 바뀌는 것은 봤어요. 작년 퀴어문화 축제에서 이성애자 가족 지지자들을 봤어요. 부모님과 아이들이 갔어요. 변화가 생겨요. 저는 그 것의 일부가 너무 자랑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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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3

안녕하십니까~ 저는 미국에서 온 청년 션이라고 합니다. 한국에 온 지 한 2년반 지났습니다. 원래는 영어 교사로 채용됐지만 1년전에 한국말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생겨서 직업을 그만두고 어학당에 입학했습니다. 저는 한국 오기 전에 이 국가가 매우 보수적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게이 사람으로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직장에서 이 사실은 알게 된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해고 될 가능성이 있을까?' 그런 고민이 자주 나온 겁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같이 일했던 직장동료에게 '커밍 아웃' 하고 마는 경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 16살 때 커밍아웃한 저는 한국 생활에 익숙해지기 힘들었습니다. 새 외국사람를 만나자마자 개방적으로 말하는 제가 새 한국사람을 만날 때 어떻게 행동하면 될까 하는생각이 많았습니다. 당연히, 제가 처음 왔을 때는 한국말 전혀 못해서 직장 동료를 빼고 한국 찬구들이 별로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어차피 저희가 같이 일함으로서 동료와 정이 생겼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이야기를 솔직히 못하기 때문에 어색한 상황을 많이 났습니다. 예를 들어서 저한테 매날 물어보던 그 질문 '션, 여친 생겼어? 아니라고? 왜 아직.. 잘 생겼는데...'. 미국이었다면 제가 '저는 게이예요'라고 대답해 버렸을 텐데 여기서는 반응이 뭘건지 몰라서 되게 조심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답답해지는 저는 드디어 동료들에게 고백해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저희가 셋이서 저녁을 식사하러 갔던 그 날에 저는 너무나 무섭게 여겼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저는 입도 바짝바짝 마르고 가슴도 두근두근거리는 채로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제가 '저.. 할 말이 있는데요'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제가 '우리는 서로 만난 지 꽤 됐는데도 저에 대한 누나가 모르는 것이 아직도 있어요. 저는 누나들이 저를 다르게 생각하지 않을 걸 희망하지만 제가 게이예요.'

'뭐라고? 그건 사실이야?'

제가 '네, 사실이죠.'

갑자기, 누나들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너, 우리 친구야. 우리가 나이를 먹을수록 세계엔 정말 다른 많은 사람이 있는 걸 배우게 돼. 너를 향한 우리의 마음은 변하지 않아. 그럼, 남친 있어?' (한국분들이 너무 사랑하는 그 질문!!!!)

저희가 계속 한참 이야기했는데 서로 말하며 저는 몹시 밝은 미소를 짓게 됐습니다. 그 순간에 제 한국사람이 모두 보수적이라는 인상이 깨졌습니다. 그 후, 한국 친구들이 더 생겼는데 저는 그 친구들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제 동료 누나들 덕분에 자신감이 새삼스럽게 생겼습니다. 제 생각에는 한국 문화란 빨리 변화하는 것이라서 시간이 지나갈수록 한국 게이들도 미국처럼 편하게 살 수 있겠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리지 말고 용감하게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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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4 '진전의 희망'

이제 한국에 온지 14개월 쯤 됐네요. 오기 전에 2년 동안 한국에 오고 싶었어요. 그 때는 나의 상황이랑 환경 지쳤고 미국 생활에 좀 소원해졌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어랑 다른 언어 배우는것에 관심이 쏠려 있었어요.

희망이나 꿈이란 보통 예상도 생기죠? 당연히 내 생각에 이상화한 한국 생활이랑 현실은 다를 줄 알았어요. 그래서 그 차이 경험했을 때 놀랐지 않았어요. 처음에 한국에서 몇개월 동안 모험심이 강했어요. 새 친구 만나기 즐겼고 주말마다 여행가거나 친구랑 술 많이 먹었어요.

시간이 지나가면서 점점 나의 내성적인 성격이 또 현저해졌어요. 한국 생활은 해외생활이 아닌 것처럼 익숙해졌어요. 그 때 미국의 장점 몇 가지를 인식했어요. 전에 미국을 자랑스러워 하지 않았는데 나의 의견이 좀 달라졌어요. 작년 여름에 미국 정부가 동성애 결혼도 허용해졌고 내가 미국의 많은 것을 그 동안 당연한 일로 여긴 것을 깨달았어요. 미국에 살았을 때 짧은 기간이지만 공공 장소에서도 남자 친구의 손을 잡을 자신 있었고 새 친구나 동료랑 내 남자 친구 대해서 얘기했었어요. 청소년기 때 시골에서 보수적인 가족이랑 사는것 처럼 이제 또 한국에 살면서 본연의 모양을 숨겨야 하는 필요를 다시 느껴요.

그렇지만 진전을 보이고 나는 기대하고 있어요. 시간이 갈 수록 자유가 강해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소수자들의 마음을 알게 될 수가 있을 것 같아요.

-내성적인 미국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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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5

LGBT(성소수자)사람은 타코를 사랑해요. 누구나 타코를 사랑해요. 모든 사람들은 모두를 사랑해요.

-나는 타코걸 바이섹슈얼 여

이야기 6

안녕하십니까? 저는 유럽에서 온 30대 남성 청개구리 입니다. 한국에 온지 4년 됐고 한국인 남편도 있습니다. 작년에 우리 태어난 연못에서 법적으로 결혼했습니다. 애초부터 한국에 있는 남편의 부모님과 관계 꽤 어렵고 상처도 많이 입었는데 계속 이야기를 나눴고 만났더니 좀 좋아졋습니다. 문화 차이뿐만아니라 우리 관계도 인정할 수 없는 사실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계속 남편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남편의 부모님이 죽을 때 까지 우리 연애관계 절대 인정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지금은 한국사회를 변화 할 수 있는 믿음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가족이나 주변에 있는 사람 통에서 서로 하나씩 하나씩 국민 정서 바꿀 수 잇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행복하게 잘 살기 바래요. 우리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개굴 개굴.

이야기 7 '여수 밤바다'

여수를 여행하는 동안 '진실된 나'를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맡길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축구 경기를 관람하기 하루 전날, 게스트 하우스에 같이 묵고 있는 남자들이, 어떤 여자가 제일 이쁜지를 나에게 물었다. 아무도 내 스타일이 아니라며 거짓말을 했다. 그 날밤, 우리는 공용 부엌에 마주 앉아 우리의 삶에 대해 거짓없이 얘기했는데, 나는 내 자신에 대해 솔직히 얘기 할 수가 없었다. 이전의 그 질문이 다시 나에게 돌아 왔고, 다시금 아무도 내 스타일이 아니라며 부인을 하는데, 무리중의 고집 센 한 여자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눈빛은 뭔가를 아는 눈빛이었다. 그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너 게이야?". 그곳의 모든 눈들이 나를 향했다. 떨렸다. 외국인들이 한국 친구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고서는 소외 당하는 사례들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가둬놨던 새장이, '나'의 본연의 진실에 의해 흔들렸다. 입이 바싹 말랐고, 고개를 조심히 끄덕이며 인정했다. 그 직후 나는 상당히 어색한 침묵이 깔릴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방 전체가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너, 정말 용감하다!". "나도 너처럼 용기가 있으면 좋겠어!"라는 소리와 함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한명 한명 나에게 오가며 나를 안아주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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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8 커피 마시면서...

한국에 오기 전에 뉴욕에 살았는데 숨김없이 살았고 게이 친구들도 많았다. 그래서 2010년에 여수에서 영어 강사하려고 했을 때 나의 게이 생활에 걱정됐다. 나는 게이 친구들을 사귈 수 있는가? 거의 7년 전에 모든 친구들과 가족에게 커밍아웃했는데, 이런 커밍아웃 과정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런 사실을 그냥 숨겨야 하는가?

그런데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어느날에 산책하고 어떤 커피숍에 들어갔다. 그 카페 주인은 인사하고 아주 친절해 보였다. 하지만 한국어를 잘 몰라서 주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커피를 그냥 주문하고 조용히 앉았다. 잠시 후에 카페에 나 밖에 없어서 주인은 나로 와서 휴대폰 앱을 통해서 영어로 번역한 메시지를 보여줬다.

"Where are you from?"

나는 미국사람이라고 대답했고 우리는 그 앱으로 30분 동안 얘기했다. 얘기하다가 우리 둘다 서로 '게이'라고 생각해서 나는 물어보고 주인은 확인했다. 바로 그때 주인의 친구도 들어와서 우리 서로 인사해서 그 친구도 게이라고 했다. 우리는 모두 같이 앉아서 한국 '게이' 생활에 대해 얘기했는데 나는 LGBTQIA(성소수자) 한국인의 경험과 어려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 날부터 우리는 거의 매주 카페에서 만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친구들을 만나서 정말 감사한다.

그 친구 두명은 많은 다른 LGBTQIA 한국인처럼 자기 가족에게 커밍아웃할 수 없고, 애인을 찾기 힘들다. 나도 대학교까지 커밍아웃을 못 했는데 그들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2011년에 서울로 왔는데 다른 LGBTQIA 한국인을 만나고 아주 오픈하게 살고 있는 '게이' 친구들 많아지고 가족과 친구에게 커밍아웃했던 사람도 증가할 것 같다. 나는 시골이나 도시에 사는 친구들은 모두 이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대된다.

-30대 미국인 남자

지금까지 8인의 외국인 성소수자분들이 한글로 직접 써 주신 이야기들을 읽으셨습니다. 저는 초안을 받은 뒤 글의 에디팅을 담당하고, 리플렛 제작과 이 포스트 작성을 하면서 여러 차례 이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가슴이 짠하기도 했다가 한국어로 쓰였지만 외국어 표현처럼 쓰인 부분을 읽을 때는 귀여움에 웃음짓기도 했습니다. 이 7개의 이야기를 모아둔 리플렛과 이 포스트 글이 제가 의도한 대로 외국인과 한국인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길 빌며, 그리고 이야기들을 읽어주신 분들께서 새로운 시선과 견해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셨길 빌며 글을 마칩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우리 모임이 비영리 모임이기 때문에 부스 참가비, 리플렛 제작비, 부채 및 음료 제작비, 부스 운영비, 각종 재료비 등을 전적으로 기부에 의해서 지불하고 있습니다. 4월 말부터 페이팔과 은행 계좌 등을 통한 원격 기부와 기금 마련 행사등을 통한 오프라인 기부행사를 진행해 기부금을 모으고 있는데요, 우리 부스가 더 많은 활동을 하고, 나아가 미래에는 부스 외 활동까지 활동영역을 넓혀나갈 수 있도록 기부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신 분들은 www.heezyyang.com/2016/05/17.html 에 들러 기부 방법에 대해 읽어시보고 궁금한 점은 언제라도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시청광장에서 6월 11일에 열릴 제 17회 퀴어문화축제 오프닝에 오실 계획이시라면, 우리 부스에 들러 리플렛과 부채를 무료로 받아가시고 우리와 함께 신나게 축제를 제대로 즐겨 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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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Heezy Yang의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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