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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하지 못할 부탁을 하는 법

며칠 뒤 C의 타임라인에는 H와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만난 것이다! 연락하기를 고민하는 것부터 실제 만나기까지 불과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제 C의 심리를 추론해보자. 처음에 C는 H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곧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H가 워낙 거물이라 평범한 학생의 인터뷰 요청을 들어줄 것 같지 않았다. 이때 C가 선택한 방법은 '쉬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 김민태
  • 입력 2016.05.13 10:05
  • 수정 2017.05.14 14:12
ⓒGettyimage/이매진스

2015 년 가을 어느 날, 낯선 이로부터 페이스북 친구 신청이 들어왔다.

지금부터 그를 J라고 하자. '그 다음 날' J로부터 메일에 가까운 장문의 메시지를 받았다. 그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다소 각색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문화 관련 일을 하는 J입니다.

책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문제의식을 갖고 종이책을 살리기 위한 운동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하 낮은 독서율에 대한 근거들 열거)

저는 이 운동이 마치 장난처럼 즐겁게 느껴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이때 나는 느꼈다. 아, 나한테만 보낸 메시지가 아니구나. 답을 꼭 안 해도 되겠구나.)

운동에 참여하는 방법입니다. 아무 책이나 집어 들어 본인의 SNS에 책 정보를 쓴다. 운동이름으로 태그 (#)한다. 함께 할 3 명을 태그한다. 책을 찍어 인증샷을 함께 게시한다.

J는 부탁사항을 열거한 후 "메시지가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라며 공손히(?) 마무리했다.

나는 답장을 하지 않는 걸로 간단하게 내 의사를 전달했다. 그의 표현대로 '마치 장난'처럼 느껴졌다. 내가 부탁을 들어줄 '이유'는 없었다. J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페이스북의 프로필을 봐도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정보가 없다. 그런데 타임라인에는 다양한 친구들의 인사말로 가득하다. '친구로 불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J가 먼저 친구 신청을 보냈고, 그중에 친절한 사람들이 쓴 글로 추정된다. 그리고 J는 분명 나에게 했던 방식으로 메시지를 복사해서 보냈을 것이다. 더불어 몇몇은 나처럼 짜증이 났을 것이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나와 한때 프로그램으로 인연이 있는 S는 최근에 회사를 차려 독립했다.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나서 알게 된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업무와 관련 있는 나의 회사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했다.

나는 흔쾌히 응했고 회사 소개서와 제안서를 달라고 요구했다. 그랬더니 총 세 개의 메일이 들어 왔다. 첫 번째 메일에는 그가 출연했던 몇 편의 방송 동영상들(보자마자 다운 받기 싫어졌다), 두 번째는 프로젝트 관련 언론에 소개된 기사 링크들(클릭하기 전까지는 제목도 알 수 없다), 마지막으로 고작 열 줄짜리 제안서(첨부 파일도 아니다)와 여기에 한 개의 메일이 더해졌다(제안자에 대한 소개가 없어 내가 이력서를 요구했다).

'내가 알아서 해석하고 적당한 사람을 소개해달라는 의미일까?' 솔직히 불쾌했지만 '이참에 그의 캐릭터를 알게 됐다' 하고 넘어갔다. 어쨌든 부탁을 들어주는 것까지는 최소한의 도리라 생각하고 실제 담당자와 연결을 성사시켰다.

'이쯤에서 손을 떼야겠다'고 생각한 찰나, 또 다른 메시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S는 소셜을 통해 자기의 일과 관련된 뉴스를 계속 푸시했다. 물론 나는 볼 때마다 눈살을 찌푸렸고, 그에 대한 이미지 역시 구겨졌다.

여기까지 읽은 여러분의 마음도 나와 다르지 않을 거라 믿는다. J와 S는 정말 '부탁'을 한 걸까? 내 감정을 말하자면 곱게 표현해 '짜증'이요, 솔직히 말해 '폭력'처럼 느껴졌다. 단언컨대 이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볼 때 부탁이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는 "사람들은 상대가 의도한 것보다 이메일의 내용을 공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뭔가를 부탁하려면 상대방이 가장 기분이 나쁜 상황이라는 가정 하에 내용을 쓰라고 조언한다. 훨씬 더 예의를 갖추라는 말이다.

두 번째, 부탁할 때는 상대방의 이익을 생각해야 한다. 다보스 포럼에서 '미래의 글로벌 리더'로 선정된 컨설턴트인 키이스 페라지는 직업상 수년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언제부터인가 '왜 어떤 사람에게는 사람이 몰릴까?'라는 화두에 꽂혔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책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혼자 밥 먹지 마라》이다.

그가 언급한 사례들은 왜 많은 부탁이 실패로 끝나는지를 잘 보여준다. 예를 들어 그에게는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수시로 메일이 날아든다. 그중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메일이 있는데, '당신이 네트워크에 능하고, 나도 그러하니 한번 보자'는 식의 밑도 끝도 없는 요구다. 이런 메일을 보면 '내가 그 사람의 요구에 왜 응해야 하지?'라는 불편한 감정이 먼저 생긴다고 한다. 페라지의 입장에서 이익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만났을 때 서로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은커녕,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열의도 전혀 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인간관계는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 생기는 결실이다"라고 말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진정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 기본이 상대방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는 능력, 바로 '공감'이다. '나라면 감정이 어떨까?', '나 같아도 그렇게 행동했을까' 하고 유추할 수 있는 능력이 '공감'이다.

성공한 사람 100 인에 대한 조사를 토대로 《평범했던 그 친구는 어떻게 성공했을까》를 쓴 슈웨이크는 한 가지 강력한 조언을 한다. 그는 "남에게 도움을 청할 때는 상대가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만들면 된다"고 말한다. 무턱대고 덥석 부탁하기 전에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라도 만나고 조언을 구하고 자신을 내보이라는 것이다.

... 줄 것이 없다면 마음을 움직여라

나 역시 비슷한 사례가 있다. 한 대학생이 페이스북으로 친구 신청을 하고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내왔다. "언론인을 꿈꾸는데 페친으로 교류하고 싶어 친구 신청해봅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좋은 하루되세요. 가끔 묻고 답하면서 페친으로 교류하고 싶어서요." 짧은 문장에 두서는 없지만 이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는 간단히 대답했고 얼마 후 다시 메시지가 왔다. "많이 추워졌네요. 옷 잘 챙겨 입으세요. 피디 준비해보고 싶은데 예전에 준비하실 때 어떻게 하셨어요?" 이렇게 보낸 마음은 안다. 하지만 난 여전히 그 대학생을 잘 모른다. 그런 가운데 한두 마디로 끝낼 수 없는 답변을 요구한 거다. 어찌 하라는 걸까? 오라고 해서 차라도 한잔 해야 하나? 그러기엔 난 결코 한가하지 않다. 아무 대답도 들려주지 않았다.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기 바라면서.

지금부터는 어떻게 하면 부탁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 참고가 될 만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C는 의료 관련 일을 하면서 밤에는 의학대학원 수업을 듣고 있었다. 어느 날 그의 타임라인에서 다음과 같은 포스팅을 봤다.

내가 다음 달에 발표할 내용은 '황우석 사건으로 본 의료 윤리'이다. 한때 우리나라를 폭풍의 도가니로 몰았던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의 진위 여부, 의료윤리를 접목시켜 공부하는 중. 이번 발표를 위해 H 프로듀서를 인터뷰하고 싶지만 쉽지 않은 여정임을 감안하여 그의 저서를 구매하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난 한줄 댓글을 달았다. "인터뷰하자고 하면 할 텐데." 그러자 C의 댓글이 달렸다. "그래줄까요? 미리 공부 좀 많이 하고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봐야겠어요.^^" 난 다시 두 번째 댓글을 달았다. "당연. 존재 이유니까."

내가 이렇게 댓글을 단 것은, 부탁을 하면 될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H 프로듀서는 한때 한국 사회를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영향력이 큰 취재 프로그램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각종 소송에 시달리며 한직에 밀려나 있던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과거를 알리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데 과연 그가 거부할까?

이틀 후, C는 새로운 포스팅을 올렸다.

얼마 전 페친을 맺은 H 프로듀서님의 저서를 읽고 있습니다. 당시 숨 가빴던 상황, 현실적인 고뇌, 진실과 국익의 갈림길에 서 계셨던 모습들이 생생하게 재연됩니다.

이 글을 보고 그들이 서로 페이스북 친구를 맺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댓글을 확인한 순간,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H 프로듀서가 다음과 같이 댓글을 단 것이다.

소설 같은 이야기지요. 궁금한 부분이 있다면 아는 대로 답변 드리겠습니다. 의료윤리라면 사건의 주인공이며 제보자인 R 교수에게 문의해도 많은 도움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C의 타임라인에는 H와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만난 것이다! 연락하기를 고민하는 것부터 실제 만나기까지 불과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제 C의 심리를 추론해보자. 처음에 C는 H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곧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H가 워낙 거물이라 평범한 학생의 인터뷰 요청을 들어줄 것 같지 않았다. 이때 C가 선택한 방법은 '쉬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C의 타임라인을 다시 살펴봤다.

친구 수락 감사드립니다. 우연치 않게 의료윤리를 공부하면서 그 당시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다시 리뷰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피디님의 책도 구입하였답니다.^^

친구 신청을 하고 바로 H가 쓴 책을 구입한 후 감사의 글을 썼다. 모름지기 H는 기분이 좋아졌을 테고, C를 남과 다르게 봤을 것이다.

이번엔 나의 마음을 움직인 L의 이야기다. L 역시 나에게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했고, 메신저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내왔다. 최대한 각색하지 않고 옮긴다.

안녕하세요 피디님.

저는 현재 KAIST 공대에 재학 중이며, EBS 피디의 길을 가고 싶은 L입니다. 학교에서 우연히 J 교수님의 '천직 발견 캠프'를 수강하면서 피디님에 대해 듣게 되었고, 이렇게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사실, KAIST에서는 저처럼 피디 등 언론인을 꿈꾸는 학생이 극소수이기 때문에, 정말 힘들고 지치고 응원도 받지 못합니다. 저는 자꾸만 요즘 그 꿈을 놓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연락드립니다. EBS <다큐프라임>과 <지식채널 e>를 보면서 가슴속에 뭉클한 무언가가 느껴졌고, 저도 사람들의 생각과 감성을 터치할 수 있는 피디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정말 괜찮으시다면, 제가 서울까지 찾아뵈어도 좋으니 꼭 한번 현업에서 일하고 계신 피디님과 함께 이야기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사실, 현재 과학기술정책 대학원에 진학을 앞두고 있는 저는 KAIST의 몇 명 학생들과 모여서 저희만의 콘텐츠를 통해 SNS 등을 공략할 수 있는 영상을 기획해볼까 하는 프로젝트를 구상 중입니다. 저희 모두가 EBS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정말 존경하는 학생들이라서 EBS 피디 분을 한 번이라도 만나 진지하게 조언을 구해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이러저러한 이야기가 너무 길어진 것이 아닌지 모르겠지만,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다가 피디님의 이야기를 듣고 너무 반갑고 설레어서 이렇게 메시지 드립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만나 뵈어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편하실 때 답장주신다면 정말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이 메시지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전에 사는 L은 내가 있는 서울로 찾아왔고 두 시간에 걸쳐 대화를 나누었다. 그 후 장문의 감사 메일을 보내왔으며, 몇 달 뒤에는 친구들과 '공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내가 피드백을 주기도 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본인이 스스로 대화를 나눌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줄 것이 없다면 진정 어린 태도만으로도 족하다.

키이스 페라지가 성공한 사람들을 관찰한 바에 의하면 성공한 사람들의 주위에는 어김없이 사람들이 모인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흔히 상상하듯 타고난 배경이나 학연, 지연으로 이루어진 관계라기보다는 자신의 일과 인생에 대한 열정과 노력의 산물일 때가 많다. 그가 밝힌 관계의 비밀은 '진정성'이다.

... 거절당할 줄 아는 용기

부탁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누구나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부탁을 들어줄 확률보다 거절할 확률이 높다. 게다가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그 확률은 훨씬 더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상처는 피해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날 때부터 용감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와 관련해 미국의 유명 잡지 <패스트 컴퍼니>를 만든 앨런 웨버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준다. 그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편집장도 역임하면서 세계 유명 지도자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았는데, 그들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그중 눈에 띄는 대목이 '거절을 당했을 때', 성공한 '그들'이 취하는 태도다.

그들 역시 성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거절의 경험이 있었는데, 그 순간 가장 많이 한 답변이 "고맙습니다"였다. 자신에게 '노'라는 답을 준 상대방도 시간을 내준만큼 그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하는 습관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이렇게 되면 부탁한 사람과 거절한 사람의 관계는 끝나지 않는다. 이 방법은 자신이 기대에 어긋나는 소식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더불어 서로 같은 업계에 있다면 언젠가는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수도 있다. 그때 거절한 그 사람은 부탁한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더 오래 기억한다고 한다. 그래서 앨런 웨버는 '거절을 잘 받아 들이면 축복이 된다'고 역설한다.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나는 고작 한번 해봤을 뿐이다 | 운명을 바꾸는 '한번 하기'의 힘>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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