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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입맛 1) 종로구

코끝이 찡한 암모니아 향이 강해야 제대로 삭힌 홍어라는 건 좀 잘못된 얘기다. 정말 제대로 삭힌 홍어에서는 오히려 은은한 암모니아 향이 난다. 가장 큰 차이는 육질이다. 식용 암모니아를 사용해 삭힌 홍어 살은 육질이 무르고, 먹기도 전에 향이 먼저 올라온다. 순라길의 홍어는 다르다. 별다른 첨가물 없이 열흘 이상 삭힌 홍어에서는 오히려 생선살 향이 먼저 나고, 입에 넣고 나서야 암모니아 향이 쓱 올라온다.

  • 강보라
  • 입력 2016.05.11 11:03
  • 수정 2017.05.12 14:12

애들은 죽었다 깨나도 모르는 맛, 새침한 아가씨들은 모르는 '어른 입맛'을 찾아 발품을 팔았다. 어쩌다 보니 가게 위치가 죄다 강북이다.

글 강보라, 사진 이종훈

평가옥 | 어복쟁반

진고개, 평래옥, 평양면옥, 남포면옥 등 서울에는 훌륭한 어복쟁반집이 참 많지만 평가옥만큼 모든 걸 다 갖춘 어복쟁반도 드물다. 일단 우설과 유퉁, 차돌 양지와 사태 등 질 좋은 소고기가 들어가야 하고, 평안도 만두가 먹는 사람 숫자만큼 올라가 있어야 하며, 그 위에 쑥갓과 육전이 얹혀있어야 진짜배기다. 평가옥은 모든 조건을 갖췄다. 국물이 살짝 짠 편인데 식사로는 과할지 몰라도 술안주로는 딱 좋다. 어복쟁반은 반주용으로 시키기에는 무척 위험한 음식이다. 중간에 메밀 면 사리를 넣으면 곧바로 온면으로 변신, 반주로 시작한 술자리가 어느새 본격적으로 흘러가곤 한다. 적어도 네 명이 모여 어복쟁반 하나, 녹두빈대떡 하나를 시켜 먹다가 냉면 사리 두 개를 넣어 온면을 먹고 마지막으로 평양냉면을 한 그릇 시켜 국물만 살짝 들이키는 것을 추천한다.

ADD 종로구 새문안로5가길 7 대성빌딩 1층 TEL 02-732-1566

대성집 | 도가니 수육

청와대 뒷산에서 내려온 나이 지긋한 등산객들이 불콰한 얼굴로 젓가락을 놀리고 있다. 해방 전에 문을 열었다고 하니 '60년 원조'라는 간판보다 더 오래 영업한 셈이다. 테이블에 오른 안주는 죄다 도가니탕 아니면 도가니 수육인데 대개는 둘 다 먹는 분위기다. 끈끈하고 달착지근한 도가니탕으로 배를 채우고 도가니 수육과 소주로 2차에 돌입하는 것이 수순. 수육을 시킬 땐 반드시 "고기도 섞어서"라고 말해야한다. 따로 귀띔하지 않으면 도가니만 수북한 접시를 받게 된다. 물론 단골은 예외다. 대성집 단골은 대부분 10년차 이상. 들어오자마자 홀 안쪽 방으로 성큼성큼 들어서는 이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살코기와 도가니가 골고루 섞인 접시를 받는다. 도가니는 소의 무릎 관절을 이루는 물렁뼈와 발목의 연골 주변을 감싸고 있는 힘줄 부위를 따로 떼어낸 것을 말한다. 아교질의 쫄깃한 식감이 꼭 젤리 같은데 간장에 찍어 오물거리면 금세 부드럽게 풀어진다. 치아가 부실한 노인들도 부담 없는 안주다. 흔히 '서대문 대성집'이라고 하지만 행정구역상으로는 종로구다. 초행자는 찾기 어려운 위치이므로 잘 알아보고 갈 것.

ADD 종로구 사직로 5 TEL 02-735-4259

순라길 | 홍어회

코끝이 찡한 암모니아 향이 강해야 제대로 삭힌 홍어라는 건 좀 잘못된 얘기다. 정말 제대로 삭힌 홍어에서는 오히려 은은한 암모니아 향이 난다. 가장 큰 차이는 육질이다. 식용 암모니아를 사용해 삭힌 홍어 살은 육질이 무르고, 먹기도 전에 향이 먼저 올라온다. 순라길의 홍어는 다르다. 별다른 첨가물 없이 열흘 이상 삭힌 홍어에서는 오히려 생선살 향이 먼저 나고, 입에 넣고 나서야 암모니아 향이 쓱 올라온다. 미식가들이 따로 주문할 정도로 유명한 이집 김치에 돼지고기 한 점과 흑산도 홍어를 싸서 한 점 두 점 입에 넣다보면 막걸리 병에 구멍이 뚫린 듯 술이 달아난다. 셔벗처럼 살짝 얼려 나오는 홍어 간의 위력적인 맛은 '초딩 입맛'인 친구랑 함께 가야 혼자 양껏 음미할 수 있다. 순라길의 홍어는 칠레 산과 흑산도 산이 있는데 삭힌 솜씨는 둘 다 훌륭하지만, 간을 먹으려면 흑산도 산을 주문해야 한다.

ADD 종로구 서순라길 141 TEL 02-3672-5513

영춘옥 | 따귀

술 좀 마시는 종로 어르신들이 방앗간처럼 드나드는 70년 전통 노포. 이른 새벽에는 해장하러, 점심에는 식사하러, 저녁에는 또 술 한잔하러 오는 손님들로 24시간 발 디딜 틈이 없는 곳이다. 주 메뉴는 꼬리곰탕이지만 이미 술 한 잔 걸치고 온 이들은 '따귀'부터 시키고 본다. 예전에는 메뉴에 없어 주머니 가벼운 주당들이 은밀히 주문하던 소 뼈다귀 찜이 어느덧 정식 메뉴가 된 것. 바싹 골아보여도 먹다보면 연골이며 근막이며 살집이 제법이다. 새콤한 깍두기를 서걱서걱 썰어 곁들이면 소주가 물처럼 들어간다. 가격은 2만7천원으로 좀 센 편이지만 서너 명이 안주로 먹기에 부족함 없는 양이다. 재료가 다 떨어질 때가 많으므로 꼭 먹고 싶다면 미리 전화해볼 것.

ADD 종로구 돈화문로5가길 13 TEL 02-765-4237

<어른의 입맛>2) 중구·동대문구

<어른의 입맛> 3) 마포구·서대문구

* 이 글은 남성 라이프스타일 월간지 <루엘> 4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루엘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luelmagazine)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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