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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클린턴 그리고 한반도

클린턴의 초강경 대북정책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압박 일변도 대북정책으로 북한 정권이 붕괴되고, 그에 따라 핵 문제도 자동으로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북한 핵 문제와 씨름해온 지난 25년의 역사는 그런 기대가 헛된 꿈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제재와 압박으로 금쪽같은 시간을 보내다 한국과 미국에 대한 북한의 핵 위협이 눈앞의 실체적 현실이 되는 '진실의 순간'과 맞닥뜨리게 될까 걱정이다. 트럼프가 지진이라면 클린턴은 태풍이다. 누가 돼도 우리에겐 큰 도전이다.

  • 배명복
  • 입력 2016.05.11 08:20
  • 수정 2017.05.12 14:12
ⓒAP

뉴욕타임스매거진에 눈길을 끄는 글이 실렸다. '힐러리 클린턴은 어떻게 매파(hawk)가 되었나'란 분석기사다. 뉴욕타임스의 백악관 출입기자인 마크 랜들러가 지난달 출간한 책을 직접 요약·정리한 장문의 기사다. 이 글에 따르면 클린턴은 뼛속까지 매파다. 그 탓에 오바마 1기 행정부의 국무장관이었던 클린턴은 비둘기파인 오바마 대통령과 자주 마찰을 빚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라크, 시리아에서 리비아까지 클린턴은 번번이 군인들 편을 들며 무력에 의한 해법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0년 천안함 폭침 때도 둘은 충돌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함을 동해로 보내 무력시위에 나서기로 했다. 서해로 보내면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로버트 윌러드 태평양함대 사령관의 의견은 달랐다. 북한을 편드는 중국에 대한 경고의 의미까지 담아 서해로 보내자고 주장했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 동조했다. 당연히 반대할 줄 알았던 국무장관 클린턴까지 국방부 편을 들면서 오바마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결국은 군 통수권자의 뜻대로 됐지만 이 일로 둘 사이에는 앙금이 쌓였다.

랜들러에 따르면 클린턴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군을 존경의 대상으로 삼았다. 해군 하급장교였던 클린턴의 선친 휴 로드햄은 철저한 공화당원에 골수 반공주의자였다. 클린턴의 어린 시절 꿈은 미 항공우주국(NASA) 조종사였다.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빌 클린턴과 결혼하던 1975년, 그는 해병대 장교가 될 생각을 하기도 했다. 뉴욕주 상원의원으로 그가 선택한 상임위는 군사위원회였다. 군에 대한 그의 애착은 국익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무력의 계산된 행사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신념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랜들러는 말한다.

지난주 워싱턴에서 웬디 셔먼 전 대북정책조정관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설을 들으며 뉴욕타임스매거진의 글을 떠올렸다. 클린턴 밑에서 정무차관을 지냈고, 이란 핵 협상을 성공으로 이끈 셔먼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해 깜짝 놀랄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중앙일보와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 그는 정권의 붕괴나 쿠데타를 걱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혹독한 대북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무력시위, 합동 군사훈련, 미사일 방어, 인권 문제 등 사용 가능한 모든 도구를 동원해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래도 북한이 핵을 고집하면 정권의 붕괴나 쿠데타는 시간 문제이기 때문에 미국은 한국·중국·일본·러시아 등과 머리를 맞대고 구체적 대비책에 대한 협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클린턴이 자신의 선거 캠프 외교안보 책임자로 처음 검토한 인물은 자기 밑에서 부장관을 지낸 제임스 스타인버그 시러큐스대 맥스웰 행정대학원장이었다. 하지만 그를 밀어내고 최종 발탁된 인물이 셔먼이다. 클린턴이 대통령이 될 경우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국무장관으로 유력하다는 소문이 있지만 그건 낭설일 뿐이고, 셔먼이 우선순위에서 단연 앞선다는 것이 캠프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의 얘기다. 평소와 다른 셔먼의 초강경 대북 연설에 대해 셔먼이 벌써 매파 '주군(主君)'의 스탠스에 맞춰 클릭 조정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클린턴이 차기 대통령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도널드 트럼프의 이변이 본선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것을 돈으로 따지는 트럼프의 '비즈니스 외교'나 '미국 우선주의 외교'가 현실화할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구축해 놓은 미국 중심의 국제 정치·경제 질서는 대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한·미 동맹의 근간이 흔들리면서 자체 핵무장론이 더욱 힘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은 맞지만 이성과 양식에 대한 믿음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아무리 위기라 해도 트럼프 같은 부적격자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봐야 한다.

그보다는 클린턴의 초강경 대북정책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압박 일변도 대북정책으로 북한 정권이 붕괴되고, 그에 따라 핵 문제도 자동으로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북한 핵 문제와 씨름해온 지난 25년의 역사는 그런 기대가 헛된 꿈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제재와 압박으로 금쪽같은 시간을 보내다 한국과 미국에 대한 북한의 핵 위협이 눈앞의 실체적 현실이 되는 '진실의 순간'과 맞닥뜨리게 될까 걱정이다.

트럼프가 지진이라면 클린턴은 태풍이다. 누가 돼도 우리에겐 큰 도전이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나서는 수밖에 없다. 대담하고 창의적이면서도 실용적인 '한국의 대안'을 갖고, 차기 미 행정부를 상대해야 한다. 우리에겐 과연 그런 대안이 있는가.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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