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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향'의 비극과 '악의 평범성'

인간을 도구로 삼는 사회는 당연히 강자에게만 유리한데도, 국민의 다수는 먹고살기 위해 순응하고 동화된다.

  • 김윤상
  • 입력 2016.05.12 12:06
  • 수정 2017.05.13 14:12
ⓒ와우픽쳐스

일제 종군 위안부 피해 소녀를 다룬 영화 <귀향>이 대박을 터트렸다고 한다. 조정래 감독은 4월 24일에 올린 글에서 관객 "358만 명의 기적"이라고 표현하였다. 국내의 상업적 상영이 끝난 지금쯤은 관객 수가 더 많이 집계되어 있을 것이고 국내외 비상업적 상영의 관객을 합하면 더 많을 것이다. 감독을 비롯해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귀향>은 조정래 감독의 집념과 영화인의 재능기부 그리고 시민 7만5천명의 성금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뜻이 좋다고 해서 성공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라는 상식에 비추어보면 <귀향>은 운이 좋은 영화다.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와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가 국민의 마음을 언짢게 한 덕에 돈 안들이고 엄청난 광고 효과를 누렸다. <귀향>이 두 박 씨에게 감사를 드려야 할까?

<귀향> 비극은 인간을 도구로 여기는 데서 생겨

역사 앞에 오만한 일본, 특히 아베 정권은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귀향>에서 다룬 식민 지배, 전쟁, 위안소, 조선인 협력자 등은 인간을 도구로 여겼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국가와 집단을 앞세워 타인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이런 일은 세계 곳곳에서 수없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군이 월남전에 참전했을 때도 있었고 우리 주위의 갑을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도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인간의 본성 탓이고, 다른 하나는 상황 탓이다. 인간도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자기 보존 본능이 있다. 그런 본능이 없는 생물은 이미 멸종되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는 타인과 형평을 맞추려는 면이 있고 심지어 이타적인 면까지 있다는 것은 우리의 상식이다. 뿐만 아니라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치부해버리면 개선의 희망이 없어진다. 그렇다면 다른 하나 즉 '상황'을 바꾸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도 <귀향>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한나 아렌트는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후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아이히만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이라는 뜻이다. 유태인을 특히 증오한 적도 없으며, 단지 강자의 편에 서고 집단에 소속될 때 안전하다고 느끼는 보통사람이라고 아렌트는 말한다. 그런 아이히만이 유태인 홀로코스트라는 엄청난 범죄의 집행자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인간을 도구로 삼는 사회는 당연히 강자에게만 유리한데도, 국민의 다수는 먹고살기 위해 순응하고 동화된다. 그러면서 '조국을 위해' 또는 '회사를 위해'라는 명분을 만들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강자는 기존 질서를 합리화하기 위한 명분과 이론을 끊임없이 제공하여 약자를 세뇌한다. 그래서 집단적 행동은 개인의 본성보다 냉혹해질 수 있고, 아이히만이 그랬듯이 집단 속에서는 나 자신도 <귀향>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누구나 남 눈치 안 보고 살 수 있어야

그렇다면 약자가 먹고살기 어려운 '상황'이 문제다. 누구나 비굴하게 눈치를 보지 않고도 살 수 있어야 한다. 강자와 집단에 동화되지 않고 '독립'하여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물질적 독립이 필요하다. 사회 전체의 생산이 국민 모두의 수요를 충족시킬 만큼은 되어야 하고 또 국민 누구에게나 기초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국민의 총수요 충족이라는 기준은 달성한 상태이므로, 문제는 분배이고 복지이다.

한편, 시장경제와 복지는 공존할 수 없으며 열심히 일한 개미가 베짱이를 먹여 살리는 복지는 정의롭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특권 없는 진정한 시장경제에서는 재분배 없이도 누구나 자기 돈으로 자기 삶을 보장할 수 있다. 또 정치를 통해 이런 '상황'을 조성하려면 국회의원 선거 방식을 비례대표제로 바꾸어야 한다. 1등만 당선되는 소선구제에서는 약자의 의사가 국정에 반영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글의 분량 관계로, 재분배 없는 복지와 비례대표제에 대해서는 필자의 다른 글로 대신한다.

[경북대신문 2016/3/21자 게재. http://knun.net/news/article.html?no=17980]

* 이 글은 대구지역 인터넷 매체인 <평화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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