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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기사, 시대와 호흡하다 | 배트맨을 만든 현실의 사건들

1988년 11월, 《배트맨》 427호에서 로빈은 조커가 일으킨 대폭발에 휘말렸고, 이슈 맨 뒤에는 이런 광고가 실렸다. "복수를 원하는 조커로 인해 로빈은 죽음을 맞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전화 투표로 그 죽음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제한 시간은 36시간.

  • 이규원
  • 입력 2016.05.09 14:08
  • 수정 2017.05.10 14:12

[배트맨 데이 기념 특별 연재 32] 어둠의 기사, 시대와 호흡하다

─ 배트맨을 만든 현실의 사건들

이 글을 읽고 있을 지금(5월 9일)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가 12일 만에 7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 중이다. 원래 시빌 워라는 작품은 911 사건 이후 미국에 불어닥친 애국법, 국가 기관의 감청, 개인 정보 유출 문제 등을 슈퍼 히어로 만화라는 틀을 통해서 다양한 각도로 풀어본 만화라고 볼 수 있는데, 수많은 타이틀을 통해 보수에서 진보까지 다양한 정치색을 가진 작가의 목소리를 다루었던 당시의 이벤트와 달리 영화는 대립 구도를 단순화하면서 화려한 액션을 전면에 내세운 듯하다. 현실 세계와 시간과 사건이 얽혀나가며 여러 캐릭터가 만들어 가는 세계 속에서 각기 다른 정치관과 철학을 지닌 작가진의 생각이 펼쳐지는 모습. 이런 '시의성'과 '다양성'은 슈퍼 히어로 만화를 보는 또 하나의 매력 중 하나다.

2015년 6월 '배트맨에게 투표하세요' 연재글에서 "흥행 성적으로 말하자!"라고 언급했던 「배트맨 대 슈퍼맨」과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가 어느덧 모두 개봉하고 총32회로 배트맨 데이 기념 연재가 끝을 맞게 된 오늘, 마지막 주제로는 『다크 나이트 리턴즈』, 『패밀리의 죽음』 등 역대 배트맨 명작의 탄생에 영향을 주었던 현실의 사건을 소개해 볼까 한다.

배트맨 TV 쇼와 플레이보이의 전설

이야기의 시작은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1966년, 그 유명한 아담 웨스트 주연의 배트맨 텔레비전 시리즈가 탄생하기 바로 1년 전이다. 일설에 따르면 ABC 방송국의 예일 우도프가 플레이보이 극장에서 열린 옛날 배트맨 시리얼 영화 상영회에 참석을 했는데, 거기서 얼핏 과장되고 바보처럼 보이는 옛날 영화를 보며 즐거워하는 관객들을 보고는 '이거 먹히겠다.' 싶은 마음으로 새로이 만든 프로그램이 바로 배트맨 TV쇼였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이야기도 있다. 여기서는 우도프가 찾아갔던 곳이 플레이보이 극장이 아니라 《플레이보이》의 발행인이자 파티광이기도 한 휴 헤프너 주최의 파티장이었다. 당시 헤프너는 만화에 푹 빠져서 슈퍼 히어로 주제의 파티를 종종 열곤 했는데, 때마침 주제가 배트맨이었고, 배트맨과 로빈 복장을 한 배우가 나와서 만화 속의 요란한 의성어들을 가지고 우스꽝스럽게 놀더라는 것이다. 손님들이 그걸 보고 너무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는 이렇게 TV 쇼를 만들면 틀림없이 성공하겠다 싶어 추진한 것이 배트맨 TV쇼였다는 것.

어디까지나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야기지만, 1960년대 유쾌하고 우습던 배트맨 TV쇼가 당시 어둡고 진지한 분위기로 돌아가려고 애쓰던 만화계의 분위기와 완전히 반대 노선을 취했던 것이 그저 제작자의 무지나 욕심에서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뉴욕 지하철 자경단 사건'

첫 번째 이야기. 주인공의 이름은 버니 게츠(버나드 게츠, Bernhard Goetz)라는 이름의 한 남자다. 이 사람은 원래는 뉴욕에서 전자 장비를 만드는 회사를 운영하던 사람인데, 1960년대~1980년대 사이에 폭력 범죄율이 세 배로 오른 뉴욕의 치안에 관심을 갖고 계속 민원을 제기했다. 그런데 1981년 버니는 뉴욕 지하철에서 십대 소년 세 명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는 사건을 겪는다. 당시 그는 운 좋게도 무릎만 좀 다친 채 도망치는 데 성공했는데, 범인 중 두 명은 달아났고 붙잡힌 한 명의 소년은 경찰서에서 겨우 1시간 붙잡혀 있다가 풀려났다.

이 일로 게츠는 분노하여 이후부터는 총을 가지고 다니기로 마음을 먹는다. 사건은 그로부터 몇 년 후인 1984년 12월 22일에 터졌다. 지하철에 탑승한 버니에게 이번에는 네 명의 십대 소년이 접근하며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그는 거절했지만 소년들은 더욱 거세게 윽박질렀고, 텅 빈 지하철에서 집단 폭행을 당할까 두려웠던 버니는 가지고 있던 권총을 꺼내어 소년들을 차례로 쏘아버렸다. 심지어는 엎드린 소년에게도 가차 없이 총을 쏴서 평생 불구로 살도록 만들었다고 하는데, 총성에 놀란 승객들이 비상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기차를 세웠고, 버니는 서둘러 기차에서 내린 후에 뉴햄프셔로 도망쳐 8일간 잠적했다가 경찰에 자수했다.

그런데 사건은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당시 매일같이 지하철 강도에 시달리던 뉴욕 시민이 모두 버니의 편을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보냈고, 보석금을 마련하기 위한 모금 이벤트를 벌였음은 물론, 어느 순간 그는 네 명의 소년에게 총을 쏴 중상을 입힌 범죄자가 아니라 강도를 물리친 뉴욕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당시 뉴욕 신문이 일명 '지하철 자경단'이라는 이름까지 붙이며 그를 추켜세우는 황당한 일들이 벌어졌다. 이런 일을 영웅시할 정도로 당시 뉴욕 시민이 그만큼 범죄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슈퍼 히어로 만화의 독자층을 넓힐 방법으로 현실적인 이야기를 찾던 DC 편집부와 프랭크 밀러는 이 사건에 주목하였다. 범죄가 들끓는 도시 고담. 과연 누가 그곳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인가. 그 이야기라면 기존의 어린 독자가 아닌, 현실의 범죄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저마다 할 말이 많은 성인 독자층을 붙들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다크 나이트 리턴즈』다. 요란하게 떠들어대는 언론을 희화화하는 묘사 역시 당시 버니 사건을 다루던 모습을 풍자한 것이기도 하다.

"'죽음을 바란' 범인", "난 쏠 수밖에 없었다.", "지하철에서 4명을 쏘다."

버니 게츠 사건 당시 언론의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다크 나이트 리턴즈』의 장면을 비교해 보자.

(사진 제공: 세미콜론)

에디 머피와 바닷가재 래리, 로빈을 죽이다.

미국 슈퍼 히어로 만화는 원래가 미디어의 변화와 팬들의 반응에 굉장히 민감한 면을 보인다. 요즘처럼 댓글 문화라는 게 없던 1960~1970년대에 이미 팬들이 보내 오는 편지에 꼬박꼬박 답장하면서 열혈 팬들을 정성껏 대접하고 행사를 열어 팬을 초대하곤 해왔으니 말이다.

이번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3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 1982년 4월 10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시즌7, 제16화의 한 장면으로 이어진다. 쇼 호스트로 출연한 배우 에디 머피는 래리라는 이름의 살아있는 바닷가재를 집어 들고 시청자들을 향해 두 개의 전화번호를 던진다. 한 전화번호는 래리를 산 채로 삶는 장면을 보고픈 시청자들을 위해, 다른 전화번호는 래리를 살려주길 원하는 시청자들을 위해서 준비한 것이었다. 라이브 쇼에 걸려온 전화는 자그마치 약 50만 통. 살려달라는 전화 23만9천96통과 삶아달라는 전화 22만7천4백52통. 불과 1만2천통 차이로 래리는 목숨을 건졌고, 이 사건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시청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의 원조 격으로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시청자들과의 소통이 가져오는 충격적인 결과는 또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있었다. 에디 머피와 래리의 사건이 있고 5년 뒤인 1987년. 텔레비전 설교가인 오랄 로버츠가 일요일 텔레비전 설교에서 시청자에게 자신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일이 있었다. 자신이 신의 음성을 들었으며, 그가 이르기를 지상에 오랄 로버츠 의료원을 세우고 자신의 치유의 손길이 임할 수 있게 하라고 지시하였는데, 1년 안에 이루지 못하면 신이 그의 목숨을 거두어 가겠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지금 보면 웃기는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단숨에 5백만 달러를 모금할 수 있었다.

요즘은 흔하디흔한 ARS와 시청자 참여지만 당시로서는 대단히 충격이었는데, 어쨌든 이 사건은 만화 작가와 편집자에게도 팬과 편지로 소통했던 기존 방식을 뛰어넘어 새로운 미디어를 실험해 보려는 도전 정신에 불타오르도록 했다.

1988년. DC 코믹스 발행인이었던 제넷 칸, 편집자 데니스 오닐, 작가 짐 스탈린은 에디 머피의 사례를 본따 독자를 미디어에 직접 참여시키는 도전을 해보기로 하였다. 다만 그 대상은 바닷가재 래리 대신 배트맨의 사이드킥인 로빈 제이슨 토드의 운명이었다. 마침내 1988년 11월, 《배트맨》 427호에서 로빈은 조커가 일으킨 대폭발에 휘말렸고, 이슈 맨 뒤에는 이런 광고가 실렸다. "복수를 원하는 조커로 인해 로빈은 죽음을 맞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전화 투표로 그 죽음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제한 시간은 36시간. 두 개의 서로 다른 결말이 준비되었던 《배트맨》 428호는 전화 투표 집계 결과 제이슨 토드를 죽이는 쪽으로 결정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패밀리의 죽음』이다. (그들이 준비했지만 쓰지 못했던, 로빈이 살아남는 결말의 그림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로빈의 운명은 이제 독자들의 손에!

인터렉티브 미디어의 시초격이라 할 수 있는 『패밀리의 죽음』 이슈4 마지막 장면.

(사진 제공: 세미콜론)

*이 연재는 세미콜론과 공동으로 기획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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