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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오늘'의 그늘

종종 출현하는 '과거의 오늘' 기능을 비활성화하려고 '설정' 기능을 찾아 들어갔다. '설정'에는 '과거의 오늘'에서 특정한 날짜를 제외하거나, 특정한 사람을 제외할 수 있도록 필터 기능이 있었다. 하지만 타임라인에서 나와 다른 사람의 과거 포스팅을 만나지 않도록 해주는 '과거의 오늘' 비활성화 기능은 아예 없었다.

  • 구본권
  • 입력 2016.05.09 12:11
  • 수정 2017.05.10 14:12
ⓒDarren Abate/Invision/AP

페이스북을 사용하다 보면 다양한 과거의 글과 사진을 만나게 된다. 1년 전 또는 2~3년 전 오늘 날짜에 발생한 일이나 올린 글·사진이라며 공유하는 이들이 많다. 내용을 보면 대개 자랑할 만한 일이거나 기념할 만한 일이다. 당사자는 물론 거의 대부분이 잊고 있던 일인데 페이스북이 귀신같이 찾아내 널리 알려주고 있다.

아무 날이나 글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댓글과 관심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서비스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소셜미디어에서 일상을 지나치게 자세하게 공개하는 문화도 과잉이라고 여기는데, 다른 사람은 물론 자신도 잊고 있던 과거의 일까지 재방송하는 게 내키지 않았다.

종종 출현하는 '과거의 오늘' 기능을 비활성화하려고 '설정' 기능을 찾아 들어갔다. '설정'에는 '과거의 오늘'에서 특정한 날짜를 제외하거나, 특정한 사람을 제외할 수 있도록 필터 기능이 있었다. 하지만 타임라인에서 나와 다른 사람의 과거 포스팅을 만나지 않도록 해주는 '과거의 오늘' 비활성화 기능은 아예 없었다.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이상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의 '추억팔이'를 만날 수밖에 없도록 설계된 것이었다. 페이스북은 "과거의 오늘은 바로 여러분의 추억입니다. 어떤 추억을 보게 될지 직접 관리하세요. 필터링 기능을 사용하여 간직하고 싶은 추억만 떠올려보세요"라고 설명할 따름이었다.

잊고 있던 즐거운 추억을 소셜미디어가 떠올리게 하는 기능도 하지만, 가뜩이나 기계에 의존하고 있는 기억을 더 인터넷에 의존하게 만드는 것의 그늘이 있다. 사람의 기억은 기계 기억과 다르다. 보스턴대학의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켄싱어는 "기억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경험할 때 일어나는 두뇌작용과 같다"고 말한다. 기억은 단순한 정보의 저장과 인출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경험이자 구성적 행위라는 것이다. 사람의 기억은 적극적인 사고작용인 탓에 매번 다르다. 우리가 페이스북이 알려주는 전자기억에 더 의존하게 된다는 것은 우리의 사고방식이 더 기계에 종속될 우려를 낳는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1984>에서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에서 과거 기록을 통해 사람들의 의식을 조작하는 진리부를 묘사했다. 진리부의 슬로건은 "과거를 지배하는 자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 과거를 지배한다"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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