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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안방의 세월호'인 이유

어엿하게 이 제품이 팔리기까지 관여된 모든 정부 부처의 관계자와, 인간의 안위와 존엄을 담보로 잡고 매출을 올리던 기업체들. 이 사고는 우리가 겪었던 많은 참사를 다시 떠오르게 한다. 가까이는 관과 기업이 인간의 목숨을 걸고 위험한 판을 벌이다가 결국 바다에 침몰한 세월호가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안방의 세월호'라고 부르는 것도 부족함이 없다. 이 끔찍한 일련의 사태에서 제 3자가 과학으로 원인을 밝혀낼 때까지, 그 안에 관계한 사람 중 합리적인 의문을 품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참사에서 전문가의 의견을 묻는 과정이 깡그리 무시되고 있는 점이, 참으로 소름끼치는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

  • 남궁인
  • 입력 2016.05.04 07:28
  • 수정 2017.05.05 14:12
ⓒ한겨레

1.

'괴질'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으면 이렇게 나온다. 증상이 보통 앓는 병과 다르기 때문에 괴상하다 일컫는 27가지 병. 동의보감에 '괴질'은 맨날 고기가 먹고 싶다든지, 물건이 전부 거꾸로 보인다든지, 몸에서 물소리가 난다는 등의 이상한 증상으로 나열된다. 중세와 근대에서 이 단어는 약간은 철학적이면서 몽롱한 표현으로 사용되어 왔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괴질'은 현대 의학을 배운 의사 사이에서도 종종 쓰인다. 물론 맨날 고기가 먹고 싶은 환자를 부르는 말은 아니다.

'괴질'은 지금까지 알려진 현대 의학으로 환자의 질병을 아무리 설명하려 해도 불가능할 때 의사들이 사용하는 자조 섞인 표현이다. '괴질이구만... 괴질.' 허나 환자가 원인을 모르지만 말끔하게 나았다면 의사들이 자조하거나 한탄할 필요도 없다. 고로 의사가 환자 앞에서 '괴질'이라는 단어로 넋두리하는 일은, 환자가 죽었거나 도저히 치료되지 않을 때 사용된다.

이 단어를 의사들이 사용하는 것은 현대 의학으로 도달할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지만, 어차피 몇 십억이나 되는 인간의 객체가 아픈 일을 100% 논리적으로 규명할 수 없다. 인간의 일에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으니까. '괴질'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오히려, 의사들이 현대 의학으로 환자의 질병을 설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분석하고, 또 노력하고 있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10년 전에 이와 같은 '괴질'을 마주한 한 의사가 있었다. 그는 소아청소년과 의사였고, 당시 의학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십여 명의 소아 간질성 폐질환 환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환자들은 괴질답게 급격히 나빠져 죽었다. 간질성 폐질환은 원인 불명으로는 잘 생기지 않고, 경과도 급격히 나빠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하지만 실제로 존재하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 눈앞에 있으면 그것을 믿어야 하는 것이 의사의 일이다. 허나 그는 이 환자의 생명을 꺼뜨리는 '괴질'을 두고 심각하게 고민했고, 과학적으로 접근하려 했다.

다음 해 봄철에도 '괴질'이 몰려들자 그는 본격적으로 지난한 싸움을 시작한다. 의학은 과학이지만 인간을 다루는 인문학의 관점에도 서 있다. 인문학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과학은 그 예외까지도 물고 늘어져 밝혀내는 것이 목표인 학문이다. 하지만 호흡기학에서 과학적인 원인 규명의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원인이 있을 때 그 결과를 밝혀내는 것은 쉽지만, 결과를 놓고 그 무한한 가능성을 풀어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몇 곱절의 커다란 노력이 필요하다. 이 지난함은 처음부터 비교불가능한 것이다.

인간은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호흡한다. 그 대기 중에는 우리가 유해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섞여 있다. 시체 소각장, 쓰레기 매립장, 방사능 처리소, 비료 공장, 황사, 미세먼지, 꽃가루부터 가정에서 쓰는 향초, 방향제, 모기약, 향수, 애견용품에, 호흡기가 아닌 물이나 복용하는 약, 음식, 세균과 바이러스 등등 모든 것이 원인일 수 있었다. 그리고 전국 의사 동료들을 통해 비슷한 종류의 '괴질'을 모은 몇 백 명은, 실은 인구 대비 적은 숫자다. 전국에 고르게 분포했지만, 그래서 있을 수도, 아니면 없을 수도 있는 원인.

이를 밝히기 위해 그는 지극히 과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해 험난한 싸움을 시작한다. 환자에게 지금까지 밝혀진 검사 방법을 총동원하는 것과 더불어, 전부 답하기에 두 시간도 넘게 소요되는 설문지까지 동원됐다. 그는 그렇게 전국의 비슷한 양상의 '괴질' 환자를 모아 논문과 데이터를 쌓았다. 그리고 같은 공간에 있던 사람들이 병에 더 쉽게 걸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과학적으로 유의하게 설명 가능한 원인을 찾았고, 그 기전을 실험으로 밝혀낸다. 그것이 바로 가습기 살균제다.

결국 한 과학자의 노력을 기반으로 한 2011년 대규모 역학조사로 진상이 알려지고, '괴질'의 원인은 가습기 살균제로 확정되었으며, 해당 제품은 모조리 판매중지 및 폐기처분 되었다. 이 악마 같은 제품이 시장에서 없어진 이후 '괴질'은 우리나라에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괴질'을 단순 '괴질'로 치부했다면 해낼 수 없던 일이었다. 과학적인 접근과 개인, 그리고 학계의 열정이 이룩한 일었다.

2.

그렇다면 우리는 원인에서 결과를 찾는 쉬운 방법을 두고, 그가 왜 결과로 원인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지난한 과정을 겪어내야 했는지 되짚어야 한다. 게다가 참상의 원인은 생활에서 필수불가결하게 발생하는 것도 아닌, 정부에서 허가하고 '인체에 무해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대기업과 대형마트에서 절찬리에 판매되던 '살균제'였다. 이 비참한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해 본다.

처음엔 '가습기 살균제'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던 1994년 유공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다. 그리고 2001년 문제의 성분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과 PGH(염화올리고에톡시에틸구아니딘)을 넣은 제품이 탄생한다. PHMG와 PGH는 당시 널리 쓰이던 살균제로, 인체 피부에는 독성이 적은 편이라 여러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PHMG가 인간의 피부에 닿는 살균제로는 충분한 연구결과로 인체에게 사용할 수 있게 허가되어 있었지만, 가습기에 넣어 호흡기로 분무할 경우 인체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밝혀진 바가 없었다.

그 물질이 아무리 그전까지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었어도 흡수 방식이 다르면 연구가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과학적인 입장이다. 그리고 PHMG가 호흡기에 사용된다는 의뢰를 받은 과학자들도 한결같이 그렇게 답했다. '안전성을 확답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과학자가 아닌 개발자와 판매자, 그리고 허가해준 정부 부처의 관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PHMG란 물질이 지금까지 써오고 있었던 것이라면, 가습기 살균제에 쓰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안전할 것이다.' 이런 간단한 과정을 거쳐, 끔찍하게도, 우리나라는 가습기 살균제가 허가받고 사용되는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가습기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고, 더불어 건강에 관한 관심과 호흡기 질환에 대한 사회적인 위협이 고조된다. 그러자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기업들에선 이미 허가받은 이 제품의 홍보에 열을 올린다. '가습기는 조금만 청소하지 않아도 습도가 높아 세균이 쉽게 번식합니다. 가습기의 수증기는 직접 들이 마셔야 하므로, 이 제품을 넣지 않으면 여러분은 세균을 들이 마시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하여 아이에게도 안심'

지금 보면 기가 찬 문구를 기업체에서는 엄연히 사용하고 있었지만, 이 홍보는 사람들에게 호흡기 질환의 불안감과 사용시의 안정감을 주었다. 이 과정으로 세계에 유례없는 시장이 개척되고, 옥시레킷벤키저에 이어 애경, 홈플러스, 롯데마트, 이마트 등이 이 시장에 뛰어든다. 2011년 판매금지가 될 때까지 신종플루 등의 호재를 업고 연간 60만 개가 팔려나갔다. 다른 나라에서는 한 개도 팔리지 않는 동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결과는 잘 알려진 바와 같다. 100여 명이 죽었고, 300여 명이 평생 후유증이 남았으며, 피해 상황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돌이켜보면 서로가 서로를 과신했다. 판매자는 어엿하게 허가해준 정부 부처를 믿었고, 정부 부처는 눈앞에 보이지 않는 위험을 판단할 수 있는 자정 능력이 없었다. 그리고 사용자로 추정되는 전국의 800만 명은 이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800만 명 중 의외로 적은 100여 명의 사망자와 300여 명의 생존자 숫자도 이 원인을 밝혀내는 데에 어려움을 겪게 했다. 아마도 밝혀지지 않거나 묻힌 사망자가 분명히 존재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하여간 이 과정 중 '원인으로서 결과'를 찾으려는 과학적인 노력은 전무했다. 한 과학자가 '결과에서 원인'을 도출하는 지난한 혈투를 벌이기 전까지.

그리하여 이 책임은 매우 다각도로 분석되어야 한다. 안전불감증에 시달리는 한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벌어진 국지적인 일. 어엿하게 이 제품이 팔리기까지 관여된 모든 정부 부처의 관계자와, 인간의 안위와 존엄을 담보로 잡고 매출을 올리던 기업체들. 이 사고는 우리가 겪었던 많은 참사를 다시 떠오르게 한다. 가까이는 관과 기업이 인간의 목숨을 걸고 위험한 판을 벌이다가 결국 바다에 침몰한 세월호가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안방의 세월호'라고 부르는 것도 부족함이 없다.

또, 이 과정에서 과학을 위시한 전문가의 의견이 무시된 것에도 공통점이 있다. 이세돌과 바둑을 둬서 이기는 것이 비단 과학이 아니다. 인간에게 적용되는 과학은 일어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의 수까지 계산해 안전을 추구하는 인간적이고 치밀한 학문이다. 이 끔찍한 일련의 사태에서 제 3자가 과학으로 원인을 밝혀낼 때까지, 그 안에 관계한 사람 중 합리적인 의문을 품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참사에서 전문가의 의견을 묻는 과정이 깡그리 무시되고 있는 점이, 참으로 소름끼치는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 이는 관과 기업의 안일함을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며, 책임에 있어 정부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 대표가 5월 2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옥시 공식 기자회견장에서 성명서를 발표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3.

나는 이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고, 오리발을 내미는 자들의 심경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처음부터 정부는 자신들의 제품을 허가했고, 그들은 자기들의 제품으로 백여 명을 학살하고 몇 백 명의 비참한 생존자를 만들어 낼는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대기업들이 이 사태를 예견했으면 이런 악마 같은 존재를 만들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네들의 입장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고의였건 아니건, 더욱 죽고자 하는 고의가 없었던 것은 피해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말 하등의 잘못도 없이 인간에게 이롭다는 이 제품을 믿고 사용했다. 그리고 피해자들에게 찾아온 간질성 폐 질환, 인간의 폐가 말단부터 섬유조직화되어 굳어가는 질병. 이 질병의 끔찍함은 직접 겪은 사람과, 옆에서 지켜본 사람만이 간신히 공감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 질병은 인간이 산소를 얻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으로 숨을 내쉬더라도, 생존에 필요한 산소를 충분히 얻을 수 없는 고통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먼지 날리는 공기 속에 있을 때나 황사 속에 있을 때 잠시 겪는 답답함과는 차원이 다른, 숨을 죄어드는 느낌이다. 누군가 자기 위에 올라타 가슴통을 압박하거나, 사람을 단단한 벽 앞에 세워놓고 인간만한 합판으로 짓누르는 느낌. 잠시만 겪어도 정신이 아찔해지고 당연하게 해왔던 호흡이 감사해지는 고통이다. 이것이 치료되지 않고 평생 그 육체에 남는다. 사망자들은 이 고통으로 목을 죄다가, 기계로도 생존에 필요한 산소를 얻지 못했을 때야 비로소 죽었다. 그리고 생존자는 여생을 통틀어 잘 때나, 밥을 먹을 때에도 누군가가 짓누르는 듯한 이 호흡으로 연명해야 한다. 심지어 피해자는 실내에 주로 있었던 여성이나 소아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이 살아가야 할 시간은 너무 많이 남았다. 이 험준한 고통을 누가 이해하고, 또 누가 책임질 것인가. 분명한 것은, 이 피해자들은 명백히 무고하고, 선량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 책임소재의 공방에선 역시 지난한 과정이 예견되어 있다. 평생 호흡을 해온 이 '괴질'환자들에게 단 하나, 가습기 살균제를 흡입함으로 이 끔찍한 질병이 발생했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태가 수습돼온 5년의 과정도 심히 절망적이다. 이 제품을 허가를 해준 정부에서 2012년 가습기 살균제를 안전하다고 허위로 표시했다는 이유로 제조사인 옥시레킷벤키저와 홈플러스 등 4곳에 과징금 5200만 원을 부과한 것이 현재까지 처벌의 전부다. 피해 규모와 남은 사람의 고통을 생각해 보건대, 일반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금액이고, 또 5년간의 세월이다. 처음부터 이 제품을 이 용도로 사용할 것을 허가한 게 정부라는 것이 이 과정에서 그나마 납득이 가는 점이라고나 할까.

그리하여 현재 관련 제품에 벌어지고 있는 전국적인 불매 운동은 일견 고무적이다. 이것은 누군가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는 인간 세상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간을 윤택하게 만든다는 명목 아래 사익을 추구했고, 그 과정에서 실제 인간에게 벌어질 수 있는 해에 관해서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원죄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을 학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익을 쫓는 기업을 벌할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방법은 다분히 복잡한 보상이나 소송보다는, 이익을 말라버리게 하는 것이다.

인간을 상대로 이문을 얻으려는 자가 인간에 대해 고단하고 심도 있는 고민을 거치지 않는다면, 어떤 패망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지, 그 살인적인 수증기에 무방비였던 다수의 인간들이 실제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불매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용의가 있고, 또 한편으로는 이 행위에 대해 뭉클함을 느낀다. 이 사건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너무 많지만, 꼭 하나, 인간의 존엄이 어떠한 행위보다도 앞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사실만은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충분히 이 목을 옥죄는 고통에 인간으로서 공감하고 또 이입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실력으로 발현되는 행위는, 현실적인 안전장치와 허가 제도를 뜯어고치기에 앞서, 우리가 인간의 존엄을 숭고하게 여기고 있음을 보일 수 있는 행위라고, 나는 과학자의 한 사람이기에 앞서, 선량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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