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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노동자 경영참여를 두려워하는가

서울시의 근로자이사제 추진은 그러한 공적 이익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작은 한 걸음에 불과하다. 그저 상당수 국가에서 이미 시행되는 제도를 일부 공기업에 시험적으로 도입해보겠다는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이 제도가 경제체계 전체를 뒤흔들 거라며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 왜 그럴까? 이익은 사유화되어야 하고, 결정은 권위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낡고 비적응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해, 현대적 경영참여제도에서 19세기 사회주의혁명의 허깨비를 보고 몸서리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이주환
  • 입력 2016.05.03 11:03
  • 수정 2017.05.04 14:12
ⓒ연합뉴스

지난 4월 27일 서울시가 노동종합정책인 <노동존중특별시 서울2016>을 발표했다. 그 내용 중 "근로자이사제도"를 두고 설왕설래다. 근로자이사제도는 노동자 경영참여제도의 일종으로, 종업원을 대표하는 인사가 기업이사회에 합법적 구성원으로 참여토록 보장하는 제도다. 서울시는 공론화와 노사합의 과정을 거쳐 2016년 10월 서울시 투자·출연기관에 이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에 대해 재계 및 보수언론 일각에서 반대가 거세다. 이를테면 근로자이사제도가 기업의 효율성 악화, 노동시장 경직화와 투자 위축, 구조조정의 무력화 등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실로 국가공동체의 미래를 걱정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 위기감과 두려움은 타당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아니다. 실상은 이렇다.

첫째, 노동자대표의 경영상 주요 결정과정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는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과 영국에서도 통용되는 '글로벌 스탠더드'다. 먼저, 노동자이사의 선임은 독일 등 유럽 일부 국가에서만 실시되는 제도가 아니다. 유럽연합(EU)에서 2001년 채택한 「유럽주식회사의 노동자 경영참여에 대한 지침(2001/86/EC)」에 따라, EU에 기반을 둔 일정 규모 이상의 다국적 주식회사 모두에서 작업장평의회 운영과 함께 의무적으로 실시되어야 하는 제도다. 다음으로, 영미에서도 경영상 주요 결정 과정에 노동자대표의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다. 다만 그 주요 통로가 이사회가 아니라 주주총회라는 점이 다르다. 즉, 주로 '소유권 공유'를 통해 경영에 참여한다. 영국과 미국에서 활성화된 우리사주신탁제도(ESOP)에 따르면, 인수·합병 승인, 임원 임명 등의 결정에 대해 종업원대표가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둘째, 노동자 경영참여제도는 기업 효율성과 구조조정의 방해물이 아니라 그 전제조건이다. 최근 발간된 국제노동기구(ILO) 보고서에 따르면, 오늘날 노동자 경영참여제도는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더 중요해졌다(Arrigo & Casale 2010). 시장경쟁력 확보를 위해 기업이 유연하고 적응적인 기술 및 조직 체계로 원활하게 전환하려면 노동자대표기구의 동의 확보가 필수적인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가 바로 노동자 경영참여제도라는 것이다. 또한 경영위기 상황에 놓인 기업이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고 구조조정 비용의 노동자 분담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공론화를 통한 사회적 정당성 확보가 중요한데, 이 역시 노동자 경영참여제도를 통해 가능하다. 이에 따라 동 ILO 보고서는 오늘날 노동자 경영참여제도는 수동적 평형상태인 산업평화를 달성하는 수단을 넘어섰으며, 불확실한 시장상황에 기업이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해주는 "공동자산(collective asset)"이 되었다고 진단했다.

셋째, 다양한 경영참여제도 활성화는 안정적이고 건강한 사회발전에 기여한다. 유럽에서 노동자 경영참여제도는 과거 사업장 이전, 정리해고 문제만을 다루던 데서, 1980년대 이후 다양한 주제들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 중에 특히 '산업안전'이 가장 중요한 영역으로 부상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 산업안전 영역에 있어 노동자들의 정보청취와 협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최상위인 산업재해 사망률을 보면, 이 법에 기반한 관행이 현장에 얼마나 자리잡았는가는 미지수다. 한편, 경영참여제도가 활성화되면 자칫 소홀해질 수 있는 유해물질의 감시·감독 역시 강화될 수 있다. 경영참여제도가 활성화되어 있고, 이를 통해 국가 및 시민사회의 감독과 전문가와의 소통이 사전에 이뤄졌다면, 2012년 5명의 사망자와 400명가량의 부상자를 발생시킨 구미 불산유출 사고는 아마도 일어나지 않았거나 피해가 훨씬 적었을 것이다.

이 외에도 노동자 경영참여 활성화가 가져올 수 있는 공적 이익은 다양하다. 서울시의 근로자이사제 추진은 그러한 공적 이익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작은 한 걸음에 불과하다. 그저 상당수 국가에서 이미 시행되는 제도를 일부 공기업에 시험적으로 도입해보겠다는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이 제도가 경제체계 전체를 뒤흔들 거라며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 왜 그럴까? 아마도 경영참여제도가 기반하고 있는 근본원리인 '참여'와 '공유'의 원칙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이익은 사유화되어야 하고, 결정은 권위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낡고 비적응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해, 현대적 경영참여제도에서 19세기 사회주의혁명의 허깨비를 보고 몸서리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 이 글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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