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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핑턴이라 불러줘서 고마워

허핑턴이 생긴 지 2년이 조금 넘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그 짧은 시간에 벌써 별명이 생겼다. 최근 몇몇 독자들은 우리를 '섹핑턴'이라 부른다. 솔직히 조금 우쭐한 기분까지 들 정도다. 매체에 별명이 생겼는데 접두사가 '섹'이라니. 얼마나 관능적인 별명인가. 물론 '섹핑턴'보다는 '섹시 턴'이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홍보팀 담당자라는 아저씨들이 아직도 '허밍턴'이라고 부르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황송하기까지 하다. 다만, 풀어야 할 오해가 있다. 허핑턴은 섹스 기사만 쓴다는 오해다.

  • 박세회
  • 입력 2016.05.03 11:41
  • 수정 2017.05.04 14:12
ⓒGettyimagesbank

허핑턴이 생긴 지 2년이 조금 넘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그 짧은 시간에 벌써 별명이 생겼다. 최근 몇몇 독자들은 우리를 '섹핑턴'이라 부른다. 솔직히 조금 우쭐한 기분까지 들 정도다. 매체에 별명이 생겼는데 접두사가 '섹'이라니. 얼마나 관능적인 별명인가. 물론 '섹핑턴'보다는 '섹시 턴'이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홍보팀 담당자라는 아저씨들이 아직도 '허밍턴'이라고 부르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황송하기까지 하다. 다만, 풀어야 할 오해가 있다.

허핑턴은 섹스 기사만 쓴다는 오해다. 나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온종일 섹스 기사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사람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거로 글을 써서 살 수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게 있겠는가? 그런데 섹스 기사를 다루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일단 우리의 편집 방향에 맞는 좋은 섹스 기사를 찾기가 힘들다. 대부분의 국내 섹스 기사들은 개인적인 성적 판타지를 드러내는 익명의 르포르타주 형식(다르게 말하면 '야설')을 취하고 있고, 아무런 정보를 전달하지도 못하는 포르노에 가까울 뿐이며(예를 들면, '명문 사립대 스터디룸서 성행위' 같은 기사), 국내외를 막론하고 상당수가 남성의 시선에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섹스 기사는 대략 이렇다.

그리고 전 세계 에디션이 함께 발행했던 '클리토리스 시리즈'는 정말이지 눈물이 흐를 만큼 자랑스러운 기사였다.

[허핑턴포스트 클리토리스 프로젝트]

*제목을 클릭하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1. 진작 알려졌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모르는 클리토리스 이야기

2. 사라진 클리토리스, 사라진 역사

3. 클리토리스와 해부학

4. 당신이 성교육에서 배우지 않은 것들

5. 왜 우리는 아직도 여성의 몸을 모르는가

6. 당신이 찾던 클라이맥스

영어 원문기사는 여기를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왜? 이 기사를 보고 결혼 3년 차 남성인 나도 내가 얼마나 성에 무지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이드라인에 따르자면 아무리 찾아도 하루 3~4개를 넘기기 힘들다. 우리가 큐레이팅 하는 하루의 기사가 총 80개 정도라는 걸 생각하면 4~5% 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 인생에서 섹스가 4~5%밖에 차지하지 않는다니, 아직 한참 모자란 노력이다. 나름 열심히 하고 있지만, 매일 아침 어떤 기사를 만들지를 결정하는 회의에서 누군가가 '오늘 밤 당신이 섹스를 해야 하는 10가지 이유'같은 미국의 기사를 번역하자고 제안하면 모두가 이런 반응이다. '그거 예전에 한 거 아냐?'

에이, 거짓말.

물론 받아보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만하다. 우리에게 섹핑턴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그저 몇 가지를 오해했을 뿐이다. 그중 하나는 우리가 발행하는 모든 기사가 당신에게 도달할 거라는 로맨틱한 생각이다. 우리는 그대에게 하루에 80개나 편지를 쓰지만, 그 편지를 전달하는 메신저인 페이스북은 모든 걸 전달해줄 생각이 없다. 페이스북은 일단 우리가 보낸 편지를 몇 명에 뿌려 보고 반응이 좋으면(링크를 클릭하거나,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그 편지를 전달한다.

왜? 전부 전달해주면 독자들이 페이스북 자체를 지겨워하기 때문이다. 만약 다 전달해준다고 생각하면 4개의 매체만 구독해도 하루에 320여 개의 '기사' 포스팅이 당신의 피드를 가득 채울 것이다. 개중에는 겹치는 기사도 있을 것이고 스크롤 하기도 귀찮은 쓰레기도 있을 것이다. 페이스북은 당신이 그런 기사들 사이에서 '진짜' 친구들이 올린 음식 사진을 찾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하여튼, 우리가 보낸 편지를 당신이 고이 받으려면 당신보다 먼저 편지를 받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렀든지, 읽었든지, 댓글을 달아야 한다. 물론 우연히 당신이 최초의 피드를 받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매우 드물다. 결국, 우리 페이지를 좋아하는 50만 명의 독자들 모두에 전달되는 기사는 도달률을 기준으로 하루에 7~8개 정도다.

그런데 왜 당신에겐 우리가 보낸 섹스 기사만 도착하는가?

그건 SNS가 가진 유기적인 편집의 결과로 나는 이걸 '친구 큐레이션'이라 부른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당신의 피드에 등장하는 기사 중 상당수는 당신이 팔로워한 사람이나 당신의 친구가 리트윗했거나 '좋아요'를 눌렀거나 댓글을 달았거나 '그냥 읽어만 본 기사'들이다. 재밌는 건 섹스 기사의 경우에는 압도적으로 '그냥 읽어만 본 기사'가 많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기사에 광고 버프를 전혀 쓰지 않기 때문에 기사에 달린 '좋아요'의 수와 기사를 받아본 사람의 수는 비교적 정비례하는 편이다. 보통 1,000명이 '좋아요'를 누르면 약 10만 명에 도달하는데 섹스 기사는 조금 다르다. '좋아요'는 200개밖에 없는데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도달한 기사가 상당히 많다. 이건 통계적인 사실이다.

일례로 밴드 생활 동안 음악 친구를 많이 사귄 내 개인 페이스북 계정에선 내 섹스 기사도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내 피드는 거의 음악과 문화 기사로 덮여 있다. 우리 내부망으로 집계하면 1만 명도 안 읽은 (그만큼 록음악은 인기가 없다) '액슬 로즈, AC/DC 보컬로 투어 합류 확정' 기사는 당일 내 피드에 수차례 올라왔지만, 내 옆자리에 있는 에디터가 쓴 인기 기사 '레즈비언들이 직접 레즈비언 섹스에 대한 질문 12가지에 솔직하게 답했다'는 홈페이지에서 처음 봤다.

그래서 어쩌라고? '섹핑턴'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아니다. 우린 어렵게 얻은 매력적인 별명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우리는 오히려 당신에게 어렵게 도달한 섹스 기사를 왜 그리도 수많은 사람이 읽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섹스 기사뿐만이 아니다. SNS의 유기적인 편집 알고리듬을 생각하면, 그게 뭐가 되었든 당신에게 어렵게 도착한 기사는 당신 주변의 사람들이 그 사안에 대해 나름대로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관심이 있다는 방증의 결과물이다. 고로 당신에게 자꾸 섹스 기사가 도착한다면 우리에게 '섹핑턴 이 자식이!'라고 화를 내는 것도 좋지만, '내 주변의 사람들은 왜 자꾸 섹스 기사를 클릭할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설마 아직도 섹스 기사가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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