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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꼴보수 명계남

극우꼴보수 노인을 연기한 배우가 명계남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현충원 가까운 육교 위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묘지를 파헤치는 퍼포먼스를 하다가 자기만큼 과격한 한 청년에게 얻어맞아 눈이 퍼렇게 멍든 채 택시 타고 돌아갈 때 잠깐 스치는 그 표정. 뭘 한 것 같긴 한데 했다고 자부하자니 민망하고, 여전히 어딘가 허전하고, 몸은 아픈데 시간은 그렇게 가고.... 배우야 자기 정치성향에 관계없이 어떤 역이든 연기하는 게 당연하고 명계남은 그렇게 했다. 그러나 세상은 달랐다.

  • 임범
  • 입력 2016.05.03 05:57
  • 수정 2017.05.04 14:12
ⓒ우리 손자 베스트

지난주 개막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우리 손자 베스트>(김수현 감독)가 처음 상영됐다. 백수 노인과 백수 청년, 둘이 주인공인데 둘 다 우익단체 소속이다. 노인은 '어버이 별동대'의 대장이고, 청년은 인터넷 모임 '너나베스트'에 사진과 글을 열심히 올린다. 정치 문제에 세대 문제까지 '핫'한 요소들이 엉킨 설정이다. 최근의 어버이연합 논란이 아니더라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전주 가서 봤다.

노인의 주무대는 탑골공원과 종로3가 뒷골목. '어버이 별동대' 대원들을 이끌고 가서 천안함 사태 관련 집회를 여는 시민단체 회원들을 폭행한다. 자기 행동의 정당함을 외치면서 당당하게 경찰서에 간다. 그런 한편에선 여자에게 손찌검하고, 일부러 차량 접촉사고를 유발해 돈을 뜯어 보수단체에 성금으로 낸다. 청년의 주무대는 노량진 고시촌. 청년은 인터넷에 '좌빨'을 비난하는 글 외에, '야한' 사진과 동영상도 올린다. 자신이 여동생의 팬티를 입고 찍은 사진을 올려놓고 조회수를 세고 앉았다.

정치적으로 어느 진영이냐를 떠나, 이들이 하고 다니는 짓거리는 보기에 불편하다. 약자에게 잔인하고, 남에게 모욕을 주고, 정정당당하지 못하고.... 그러면서 한편으로 또 그들은 쓸쓸히 늙어가는 외톨이 노인이고, 미래가 갑갑한 청년 백수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이들의 행동에 담긴 찌질함, 무지함, 적개심이 남의 것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연민이 갈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영화는 표나지 않게 '쓱' 빠져나온다. 사회에 대한 냉정한 비판과 동시대적 찌질함에 대한 연민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어려운 줄타기를 경쾌하게 해낸다.

말하려는 건 영화보다 영화가 갖는 태도다. 그들에게 모욕을 주지 않고, 그들을 예찬하지 않는다. 보통사람과 많이 달라 보이는 이들을 끌고 와서 관객에게 던져주는 건 묵직한 동시대감이다. 단순하게 말해 '역지사지'하게 한다. 영화 속에서 라디오 디제이가 말한다. "관심에 목말라하고 재미만을 추구하다가 결국 막장으로 가는 세대가 어느 특정 집단만을 가리키는 얘기일까요."

이 극우꼴보수 노인을 연기한 배우가 명계남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그는 이 영화 크레딧에서 이름을 '동방우'로 바꿨다.) 현충원 가까운 육교 위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묘지를 파헤치는 퍼포먼스를 하다가 자기만큼 과격한 한 청년에게 얻어맞아 눈이 퍼렇게 멍든 채 택시 타고 돌아갈 때 잠깐 스치는 그 표정. 뭘 한 것 같긴 한데 했다고 자부하자니 민망하고, 여전히 어딘가 허전하고, 몸은 아픈데 시간은 그렇게 가고.... 배우야 자기 정치성향에 관계없이 어떤 역이든 연기하는 게 당연하고 명계남은 그렇게 했다. 그러나 세상은 달랐다.

명계남은 2000년대 초까지 어지간한 한국 영화에 다 출연해 '한국 영화 검인배우'로 불렸다. 그러다가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장을 했고, 노무현 정권이 끝난 뒤 보수언론의 집중적인 공격과 감시에 시달렸다. 그 뒤부터 이 다작 배우가 방송은 물론이고 영화에서도 졸업작품, 초저예산 영화 몇 편을 빼고는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다. 배우 명계남 이전에 그의 정치성향을 문제 삼는, 이 사회의 어떤 태도들이 작용하지 않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소재든, 배우든 정치적으로 민감한 것들을 피해 다니는 그릇된 태도가 총선을 계기로 바뀌기를 바라는 기대감이 영화계에 퍼져 있는 듯하다. 이 영화는 총선 전에 기획됐고, 또 기존 영화자본의 투자 없이 전주영화제 기금과 성금으로 만들어졌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영화가 많을수록 관용과 이해의 문화가 커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될 듯하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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