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바마(B. Obama) 대통령이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서 한 유머 연설이 2,600명의 참석자들의 배꼽을 빼놓았던가 봅니다.
오바마는 여야 인사를 가리지 않고 신랄한 풍자를 퍼부어 참석자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공화당 지도부가 트럼프(D. Trump)의 외교경험 부족을 걱정한다는 말에 대해 "그는 숱한 세계 지도자들을 만났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비꼬았다지요.
미스 스웨덴. 미스 아르헨티나 등등의 세계 지도자들 말이지요.
1990년대부터 미스 유니버스 조직위원회를 인수해 매년 미인대회를 주최한 경력을 비꼰 것이랍니다.
힐러리(hilary Clinton)가 언젠가 자신에게 "새벽 3시에도 전화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물은 것도 풍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제 난 나이가 들어 새벽에 화장실에 가야 하기 때문에 그 시간에 일어나 있다."라고 대꾸해 폭소를 자아냈다고 합니다.
또 다른 민주당 후보인 샌더스(M. Sanders)에게는 그의 사회주의 성향을 가리켜 "동무(comrade)"라는 호칭을 썼다네요.
멋진 풍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그 유머 연설 기사를 보면서 나는 내내 우리 대통령 생각을 머리에서 지울 수 없었습니다.
늘 화난 얼굴로 등장해 야당과 국회에 비난을 퍼붓던 그 모습 말입니다.
때로는 책상을 쿵쿵 쳐가며 남의 탓을 하는 모습과 유머를 위해 자기비하를 서슴지 않는 오바마의 모습이 좋은 대조를 이루지 않습니까?
물론 오바마가 연설한 자리는 원래 대통령이 유머를 하는 자리이긴 하지만, 우리 대통령은 어쩐지 그런 자리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어색해 보일 것 같습니다.
늘 화난 모습만 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유머를 한다고 웃음보가 터질 것 같지 않으니까요.
물론 지금 우리 경제가 처한 사정이 어려운데 대통령이란 사람이 아무 일도 없는 듯 유머만 늘어놓는다는 것도 말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상황이 급박하다 해도 유머 센스는 잃지 않는 것이 '지도자의 멋' 아닐까요?
오히려 상황이 어려울수록 지도자가 유머센스를 발휘해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주는 게 더 절실히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시점에서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게 하나 있습니다.
유명한 루즈벨트(F. D. Roosevelt) 대통령의 노변정담(Fireside Chats) 시리즈입니다.
국민과의 직접적 소통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느낀 루즈벨트는 1933년부터 1944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30번에 걸친 라디오 연설을 통해 국민에게 다가갔습니다.
마치 벽난로 옆에서 속삭이듯 설득하는 톤으로 연설을 했다는 뜻에서 노변정담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루즈벨트는 이 노변정담을 통해 대공황의 와중에서 그가 미국 사회의 근본적 개혁을 위해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뉴딜(New Deal)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구했습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의 전개에 대해 솔직하게 설명하고 국민의 고통 분담을 호소했습니다.
이와 같은 루즈벨트 대통령의 솔직담백한 연설은 대공황과 세계대전의 절망과 혼돈에 휩싸여 있던 미국 국민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조금만 더 인내하면 능히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국민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을지는 구태여 설명이 필요 없을 겁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따뜻한 리더십'이 아닐까요?
오바마의 유머와 루즈벨트의 따뜻한 리더십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국민은 위로를 더욱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유머이든 아니면 곧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든간에요.
내가 요즈음 단 한 번이라도 보고 싶은 것은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말하는 대통령의 진솔한 모습입니다.
ps. 우리나라에서도 노변한담 형태의 대통령 라디오 연설이 행해진 바 있다고 합니다.
2008년 10월 KBS1 라디오를 통해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라는 연설이 시작된 적이 있다네요.
그때 대통령이 누구였고 그것이 국민의 마음에 얼마나 큰 위안을 가져다 줬는지에 대해서는 구태여 언급을 하지 않겠습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