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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정서의 균형 찾기 | 빈센트 반 고흐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

이성이 정서를 통제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는 감정을 받아들이고 인정했다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치게 되면 다시 감정이 울컥 올라와버리곤 하지요. 억누르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극복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때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서 그 반대의 감정을 대립시킬 수 있습니다. 불안한 느낌이 들 때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떠올리면 안정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듯이 말입니다.

  • 김선현
  • 입력 2016.04.29 10:12
  • 수정 2017.04.30 14:12

빈센트 반 고흐 |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 | 1889년

반 고흐는 예술가들과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를 꿈꿨고, 프랑스 남부 아를에 위치한 '노란 집'이라는 곳에 자신의 동료들을 초대했습니다. 폴 고갱Paul Gauguin만이 그의 초대에 응답했고, 이곳에서 고흐와 고갱은 두 달 정도 함께 생활했지만 성격 차이로 인한 충돌이 잦았습니다. 결국 고흐는 1888년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날 자신의 왼쪽 귀를 면도칼로 잘랐습니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고갱은 고흐의 곁을 떠났습니다.

1889년 1월 7일 병원을 퇴원한 고흐는 귀에 붕대를 감은 자신의 모습을 자화상으로 남겼습니다. 파이프는 이 그림보다 1년 앞서 그려진 < 반 고흐의 의자 Van Gogh's chair >에서도 등장합니다. 자신을 내세우는 오브제로 파이프를 활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색채의 화가답게 눈이 아릿한 색감을 자랑합니다. 붉은색의 배경과 대비되는 초록색 코트, 파란색 털모자 뒤의 오렌지색 배경, 그리고 파이프에서 올라오는 노란색 연기가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 | 의자와 파이프 | 1888년

인간의 지식과 지적 능력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을 하다 보면 많은 목표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갈등이 생깁니다. 이때 우리의 이성을 인도해서 낯선 세계를 헤쳐나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서입니다. 정서는 여러 가지 수준의 정보를 처리하고 통합하는 복합적인 구성 과정에서 생겨납니다. 따라서 정서는 새로운 목표가 중요한지 아닌지를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평가해 질서를 잡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정서는 행동준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성이 정서를 통제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는 감정을 받아들이고 인정했다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치게 되면 다시 감정이 울컥 올라와버리곤 하지요. 억누르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극복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때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서 그 반대의 감정을 대립시킬 수 있습니다. 불안한 느낌이 들 때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떠올리면 안정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듯이 말입니다.

그렇지만 정서도 논리적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서의 보편성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미소를 지으면 이 사람은 행복한 상태라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미술작품이나 문학작품을 보면 작가 개인이 가진 정서의 특수성이 잘 드러나지만, 동시에 누구나 공감할 만한 공통적 정서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논리적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미술이라면 관찰, 스케치, 수채나 유채 등의 채색 혹은 조소나 판화, 그 밖의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해야 합니다. 문학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언어라는 논리적 도구로 구성합니다.

결국 감정과 정서적인 부분을 어떻게 언어와 이성이라는 논리적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그런 점에서 미술치료를 비롯한 예술적 표현 활동은 이성과 정서를 결합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성과 정서 중 어느 한쪽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보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름다움은 감정의 영역이지만 왜 아름다운지를 찾아내는 것은 이성의 영역이고, 철학은 논리적 이성의 영역이지만 인간에 대한 공감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다르게 설명하면 이성과 정서가 조화를 이룰 때 예술의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고, 철학의 개념도 완전히 소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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