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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는 숙제가 아니다 | 당신들의 답정너

유권자를 향한 갑질 중 최고봉은 20대에 대한 갑질이다. 정치에 무관심한 20대라는 전제하에 20대를 무조건 가르치려든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20대 개새끼론'이 대표적이다. 투표장으로 향하지 않는 20대 표심은 헤아리지 않은 채, 무조건 질타만 한다. 총선이 끝나자 언론의 태도는 돌변했다. 2030 세대의 투표율이 오르며 반전에 성공하자 언론은 일제히 '20대 잘했다'는 칭찬에 나섰다.

  • 서복경
  • 입력 2016.04.28 11:47
  • 수정 2017.04.29 14:12

[팟캐스트] 투표는 숙제가 아니다 ─ 당신들의 답정너

대반전의 짜릿함을 보여준 20대 총선. 언론에서는 연일 '국민의 심판' '국민의 선택은 옳았다'며 유권자의 표심을 칭찬하기 바쁘다. 그런데 칭찬이 무턱대고 달갑지만은 않다. 선택을 평가받는 입장에 선 유권자는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선거 전에는 여론조사, 정치인, 언론이 총출동해 '갑질'을 일삼고, 선거가 끝나고도 유권자를 가르치려 든다.

여론조사, 정치인, 언론 선거전 갑질 총출동

여론조사는 이번 20대 총선을 뒤흔들었다. 매일 각종 여론조사가 언론을 도배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공정심의위원회'에 등록된 선거만 1200건이 넘는다. 문제는 선거전을 주도하는 여론조사가 정확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데 있다. 서울 종로의 경우 대부분의 여론조사가 새누리당 오세훈 후보의 낙승을 예측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후보의 승리였다. 같은 날 실시된 여론조사의 결과가 정반대로 나타나 유권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지역구도 여럿이었다.

문제는 여론조사기관과 이를 보도하는 언론사의 오만한 태도다. 여론조사 기관은 신뢰할 수 없는 여론조사를 매일 뿌려대고, 언론은 '몇 대 몇' 식의 경마식 보도를 일삼는다. 이 과정에서 한 후보의 당선을 단정지어버리기까지 한다. 응답률이 2%에 불과한 여론조사를 내놓고도 참고만 하라는 겸손한 태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사실 기법이나 법적 제양 등으로 인해 정확한 여론조사는 어렵다"면서 "보도를 할 때 참고만 하라는 전제를 해주고, 유권자 역시 '여론조사는 틀릴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인의 갑질도 만만치 않았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전주를 찾아 "전라도 여러분은 배알도 없느냐"는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유권자에 갑으로 군림하는 정치인의 단면을 보여준 셈이다. 서 교수는 "유권자들은 심리적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며 "유권자의 권리 행사지, 숙제가 아니다. 편안하게 투표하러 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대 유권자를 향한 갑질

유권자를 향한 갑질 중 최고봉은 20대에 대한 갑질이다. 정치에 무관심한 20대라는 전제하에 20대를 무조건 가르치려든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20대 개새끼론'이 대표적이다. 투표장으로 향하지 않는 20대 표심은 헤아리지 않은 채, 무조건 질타만 한다.

20대를 향한 투표독려 역시 이런 생각이 전제돼 있다. 이번에 논란이 된 선관위의 투표 홍보 광고는 20대를 무시하는 내용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생 최승민(25) 씨는 "설현 광고를 보면 '이 무식한 놈아 선거에는 왜 관심 안 갖고 투표 안 하냐' 같은 계몽주의가 느껴져 불편하다"고 말했다. 아이돌 스타 동원 자체에도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설현이 나오니까 투표하러 가야겠다는 논리는 정말 말도 안 된다"면서 "20대를 아주 무식하게 보는 게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설현이 출현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투표 참여 홍보 영상의 한 장면

총선이 끝나자 언론의 태도는 돌변했다. 2030 세대의 투표율이 오르며 반전에 성공하자 언론은 일제히 '20대 잘했다'는 칭찬에 나섰다. 이 과정에선 심지어 왜곡 보도까지 등장했다. 15일 <한겨레> 1면 톱이었던 '2030의 선거반란' 기사에는 '20대 총선에서 19대 총선보다 20대 투표율이 약 13%포인트 올랐다'란 내용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는 19대 선거와 20대 선거의 출구조사 결과인 36.2%와 49.4%를 비교한 값이었다. 지난 총선에서 실제 20대 투표율은 41.5%로 집계됐다. 동일선상의 조사 수치를 비교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굳이 가상의 출구조사 수치를 비교할 필요가 이었을까. 13% 상승이라는 극적인 반등을 보여주기 위해 출구조사 자료를 사용한 게 아닌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최 씨는 "정확한 20대 투표율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숫자를 인용한 건 문제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취업준비생 백윤미(25) 씨도 "이날 기사에는 출구조사 투표율을 실제투표율이라고 명시하기까지 했는데 이는 명백한 오보"라고 꼬집었다.

서 교수는 "만약 지난 선거보다 20대 투표율이 낮아졌다면 '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또 세대갈등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기사가 나왔다"고 언론의 태도를 지적했다. 그는 "'왜'가 중요한 건데 이걸 단순화해서 지역에서 세대로 투표 쟁점이 바뀌었다는 식으로 단편적 진단을 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우리 해석이 무조건 옳아

언론의 갑질은 표심을 분석하는 데에서도 드러난다. 각자 정한 프레임 아래에서 해석을 덧붙인다. 지역주의 타파와 호남의 '녹색돌풍' 역시 그런 언론의 태도를 드러낸다. 이번 총선이 지역주의 타파에 일종의 신호탄이 된 건 맞다. 새누리당의 텃밭이던 대구에선 더민주의 김부겸 후보가 당선됐고, 전남에선 보수진영 최초로 재선 의원이 나왔다. 하지만 언론의 의미부여는 지나치다. 대구 수성갑 유권자인 백 씨는 "유권자 입장에선 김부겸이 당선된 게 굉장히 자연스럽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역에 잘하는 후보가 당선되는 자연스러운 결과에 과도하게 지역주의란 프레임을 들이민다는 것이다. 서 교수 역시 "선거 결과 자체를 지역주의로만 해석하는 건 너무 쉬운 해석"이라면서 "이런 해석은 자제하고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권자의 표심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언론의 프레임은 호남을 두고도 일어난다. 광주 의석을 모두 차지한 국민의당을 두고 호남에서 '녹색 돌풍'이 일어났다는 보도들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호남 유권자의 선택에 대한 세밀한 분석은 부재했다.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큰 지지를 얻은 건 사실이지만 여기엔 '소선거구제 다수대표제'에도 크게 작용했다. 결과적으론 호남에서 국민의당이 압도적으로 많은 의석을 차지했지만, 지역구마다 사정은 달랐다. 국민의당 후보가 압도적인 경우도 있었지만, 신승을 거둔 경우도 많았다. 국민의당 대 더민주가 100 대 0의 싸움을 벌인 게 아닌데 언론은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식으로 보도하며 국민의당 '녹색돌풍'을 부채질했다. 서 교수는 "국민의당이 의석을 많이 가져간 건 사실이지만 싹쓸이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건 유권자의 선택을 왜곡하는 것"이라면서 "호남 유권자의 선택지를 넓혀줬단 해석이 더 맞다"고 말했다.

선거는 4천만 민심이 만들어낸 예술

총선의 결과는 4천만 민심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오만한 갑질로 유권자의 표심을 해석하기보다 좀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유권자의 이런 표심이 '왜' 나타났는지 집중해야 한단 것이다. 서 교수는 "심판했다, 분노했다는 식의 단순한 해석이 아닌 유권자가 뭘 원했고, 왜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좀 더 섬세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 많은 이야기는 방송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방송 링크: www.podbbang.com/ch/9418)

글 | 정치발전소 팟캐스트 제작팀 한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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