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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한 두 아이, 무너진 엄마

살아있는 아이는 응급실로 무사히 귀환했다. 생체징후는 안정적이었고, 받아본 결과 상 머리와 몸통도 온전했다. 머리가 딱딱한 바닥으로 직격해 충격을 다 받아버린 오빠와는 다르게, 사지를 전부 내주고 목숨을 얻어낸 것이다. 그리고, 화단. 푹신한 흙이 아니었으면... 천만다행으로 충격은 손목 두 개를 꺾고 멈추어 버렸다. 과연 그 간극은 얼마나 멀었던 것일까. 그것과 허우적거리는 자세 때문에, 이 아이들이 절명의 경계를 넘나들었어야 했을까. 과연 이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남궁인
  • 입력 2016.04.28 14:08
  • 수정 2017.04.29 14:12

0.

옛날에 한 사냥꾼이 있었다.

그는 산속을 거닐던 어느 날, 겅중거리던 아기 사슴 한 마리를 활로 쏘아 맞혔다.

기쁨에 찬 사냥꾼의 눈앞에 갑자기 어미 사슴이 나타났다.

어미는 활에 맞지도 않았지만, 꿰뚫어져 피범벅인 새끼의 사체 옆에서 몸을 고통스럽게 경련하고 사지를 비틀다가 결국 자기 새끼와 등을 맞대고 죽었다.

사냥꾼이 그 연유가 궁금해 어미의 배를 갈라 보았다. 그러자 어미의 창자가 전부 끊어져 있었다. 사체를 들자 토막 난 창자가 바닥으로 후드득 쏟아졌다.

그 광경을 본 사냥꾼은 활을 꺾어버리곤 다시는 사냥을 하지 않았다.

1.

아무도 슬프지 않을 것 같은 쨍쨍한 낮이었다. 한 행인이 길을 걷고 있었다. 그의 걸음걸이에는 한낮이 주는 활기가 가득했다. 무심코 걷던 그에게 갑자기, 허공에서 둔탁하지만 짧고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그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눈앞 빌라 5층 높이의 창이 하나 터져나가고, 허우적거리는 사람의 형상 두 개가 쏟아졌다.

그는 이 광경을 믿을 수가 없어 끝까지 그 형상을 지켜보았다. 두 형상은 지지할 곳이 없어 팔다리를 허공에 휘저으며, 그의 눈동자 속에서 천천히 낙하했다. 그리고 곧 허우적대는 그 모습 그대로, 동시에 지면에 불시착했다. '뻐걱.' 끔찍한 소리였다. 세상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런 소리였다.

2.

응급실 자동문은 언제나 다름없는 속도로 느릿하게 열렸다. 그 넓어지는 틈 사이로 나에게 급히 달려오는 카트가 보였다. 축 늘어진 형상이었다. 한 구급대원은 그 위에 올라타 있는 힘껏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고, 다른 구급대원은 엠부를 짜며 제 발로 뛰어오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뛰어나갔다. 누워있는 것은 아직 아이의 모습이었다. 한 눈에도 피범벅이었다.

"이거 무슨 환자입니까?"

"10살, 5층 추락, 심정지입니다. 두부 외상이 심한 것 같습니다."

"왜, 왜 떨어졌대요? 왜."

"숨바꼭질하다가 방충망이 터져 떨어졌답니다."

"아..."

아무리 비극이 숨 쉬듯 일상적인 공간에 있어도, 그중 조금 더 비극적인 일은 분명히 존재한다. 바로 이런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같이 카트를 잡아채 소생실로 달렸다. 온 의료진이 달려와 소생실에 집결해 있었다. 아이를 소생실 가운데에 눕혔다. 맥박과 호흡이 없었다. 나는 일단 심폐소생술을 유지하고, 확보된 기도로 산소를 투여하며 옷을 전부 잘라달라고 소리 질렀다. 의료진은 일사불란했다. 그리고, 나는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피범벅이었지만, 아직 초등학생의 몸과 얼굴이 확연했다. 팔다리가 전부 부서진 듯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나는 장갑을 낀 손으로 거즈를 한 움큼 집어 생존에 가장 중요한 부분인 얼굴과 머리부터 박박 문질러 닦았다. 오른편이 주저앉은 아이의 얼굴이 드러났다. 얼굴은 지면과 맞닿은 모양 그대로 평평하게 구겨져 있었다. 내려앉아 어긋난 면은 두개골까지 죽 이어져 있었다. 피에 흠뻑 젖은 거즈를 집어던지고, 새 거즈를 집어 아이의 머리통을 닦았다. 오른쪽 귀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머리 한 켠이 우그러져 따로 떨어져 노는 느낌이 들었다. 매끄러워야 할 두개골에서 계단 같은 층이 느껴져 소름이 돋았다.

이윽고 핏덩이를 얼추 걷어내자, 그 틈 사이로 아이의 찢어진 경막과 부스러진 뇌가 보였다. '심정지 환자의 뇌를 직접 볼 수 있으면, 그 환자에겐 이미 어떠한 노력도 불필요하다.' 의학적인 사실이 머릿속에 지나갔다. 이 사실을 믿지 못해 많은 노력을 해 보았지만, 결국 살아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문장은 그야말로 사실이었던 것이다.

"전 의료진 심폐소생술 중지. 사망입니다."

내가 뇌를 목격한 순간 아이는 죽었다. 즉사로 기록될 것이었다.

3.

나는 순식간에 지나간 끔찍한 잔상이 가시지 않아, 잠시 응급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얼빠진 표정의 구급대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수습을 위해 물었다.

"근데, 보호자 연락은 되었나요?"

"선생님. 실은, 한 명이 더 올 겁니다. 같이 숨어있다가 추락한 여동생입니다."

"뭐요? 두 명이라고요?"

"네. 현장 도착하니 이 아이가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졌는데, 상태가 안 좋아서 먼저 데리고 왔습니다. 끝내 죽었군요... 다른 아이는 화단에 떨어졌는데, 저흰 급하게 오느라 상태는 잘 모르겠습니다. 보호자는 뒤에 아이와 같이 올 겁니다."

"이런 아이가 한 명 더... 알겠습니다."

나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이건 조금 더 심한 비극이란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한 명 더 죽을 수는 없었다. 손아귀의 근육이 움찔거렸다.

"빨리 소생실을 비워주세요. 곧이어 중환이 또 도착할겁니다."

4.

벌써 비극의 전조가 응급실에 풍기고 있었다. 온 의료진은 다른 일을 하고 있었지만, 저마다 굳게 닫힌 응급실 자동문을 흘깃거렸다. 지독한 예감은 인간을 물들이고 곧 온몸을 굳게 만든다. 그리고, 그 기척은 감정을 지닌 인간이라면 명민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곧 어느 때와 다름없이 느릿거리며 자동문이 열렸으나, 그것이 새로운 비극임을 모두가 알아챘다. 그리고 모두 그 방향으로 한 번에 뛰었다.

주황색 옷을 입은 구급대원 셋이 카트를 밀며 들어왔다. 목에 보호대를 차고, 사지에 붕대를 칭칭 감은 여자아이가 실려 있었다. 아이는 옴짝달싹 못한 채로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의 여인. 두 아이를 낳고 기른 어머니일 것이었다. 정신과 혼을 방금 막 팔아버린 것 같은 그 형상. 그녀가 들어오는 모습은 이미 넋을 잃은 허깨비 같았다. 그녀는 다급히 시선을 돌리다가, 본능적으로 내가 이 응급실의 책임자임을 알아채고 나에게 걸어왔다. 발길이 다급했으나, 허공을 걷는 것 같았다.

"선생님. 우리 승호... 승호 어떻게 됐나요?"

"즉사했습니다."

"아아! 선생님. 제발."

예감했어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두 다리가 즉시 풀려 내 발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 피 묻은 바짓단을 붙잡고 늘어졌다. 무릎과 딱딱한 응급실 바닥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비정상적으로 울려, 같은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무릎 아래가 연약한 부위라는 사실을 잊은 것 같아, 꿇는다는 표현보다는 짓이긴다는 표현이 맞았다. 하긴 그 순간 그녀에게, 자기 무릎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것이었다.

"그러지 말고, 한 번만... 우리 승호를 살려 주세요. 제발."

"불가능합니다. 머리가 터져, 현장에서 즉사했습니다."

"으으... 으흐흑. 제발. 선생님."

그녀는 이제 내 신발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드라마에서 보던 구태의연한 장면을 떠올렸다. 왜 극한에 달한 감정의 표현은 연기와 같아지는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완벽히 몸이 이끌려 벌이는 그 행위. 그래서 연기란 전부 저주받을 것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감히 무엇을 흉내 내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실재하는 감정을 우롱하는 자들, 진정한 비극은 감히 그딴 식으로 연기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나는 무엇이든 저주스러웠다.

5.

어머니는 곧 간신히 붙들고 있던 내 바짓단마저 놓고 실신했다. 나는 어머니를 부탁하고 아이가 실린 카트를 끌어 소생실로 옮겼다. 아이는 자신의 오빠가 방금 죽은 그 자리에 똑같이 누웠다. 같이 온 구급대원이 말했다.'팔은 그나마 온전한데, 다리가 끔찍합니다. 조심히 끌러 주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저주를 끝내기 위한 마음에 눈동자가 뒤틀리는 것 같았다.

"산소. 혈압. 와서 한 명씩 팔에 붕대 풀러. 중심정맥관 두 개와 소아용 스플린트. 기도 확보도 준비. 옷 자르고 수액 펌프와 수혈. 빨리. 빨리..."

아이는 자극에 반응이 있고 호흡이 있었다. 머리 쪽의 외상은 특별히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가장 끔찍하다는 다리 쪽에 붙어 발목을 허공에 잡고 미친 듯이 붕대를 반대로 끌러 갔다. 피부의 느낌이 아닌 뭉개진 근육더미가 삽시간에 붕대 바깥으로 쏟아졌고, 곧 병아리같이 연약한 여덟 살 여자아이의 나신이 드러났다. 몸통은 온전해 보였으나, 팔목 두 개가 바깥쪽으로 휘어져 있었고, 허벅지 두 개가 전부 터져 근육과 인대와 뼛조각이 사방으로 나뒹굴고 있었다. 추락과 동시에 등 뒤로 허벅지가 접혔던 것 같았다. 그건 큰 벽이 와서 그 부위를 짓이겨버린 것처럼 보였다. 다리를 들자, 관절이 허벅지에 새로 생긴 것같이 그 살더미가 제멋대로 움직였다. 나는 일단 다리를 바닥에 놓고,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피부의 경계를 모아 다시 붕대로 감쌌다.

아이는 울거나 보채지 않고, 눈을 허공으로 끔뻑거리고 있었다. 응급실에서 아프다고 소리 지르거나 우는 아이는, 대부분 턱이나 눈 위가 조금 찢어진 아이다. 그 아이들은 죽지 않을 것을 알고, 다만 불편하기 때문에 운다.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살과 뼈가 튀어나간 아이는 소리 지르지도 않고, 일말의 고통도 호소하지 않는다.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아이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공포는 몸을 항거할 수 없게 얼려, 어떠한 통증에도 반응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여덟 살 아이가 자신의 두 다리가 터져버릴 것이라고 상상해본 적이 있었을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자신의 시뻘건 근육, 힘줄, 혈관, 그리고 병원의 하얀 천장, 불길한 옷을 입고 분주히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의료진. 이런 걸 아이가 갑자기 믿을 수 있을까.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 이런 비극은, 되려 일어나지 않은 일에 가까워 보인다.

"괜찮니? 많이 아프니?"

"......"

"말을 해줘야 선생님이 괜찮은지 안단다. 괜찮니?"

"선생님... 죽으면 많이 아픈가요?"

"왜, 넌 안 죽을 거야. 넌 괜찮을 거라고."

"우리 오빤 많이 아팠을까요?"

"느네 오빠... 안 아팠을 거야. 죽음은..."

"내가 이렇게 아픈데요?"

"......"

"난 분명 죽어요. 우리 오빠도 죽었잖아요. 근데, 이것보다는 더 아프겠죠?"

나는 어른이라 더 이상 대답할 말이 없었다. 문득 방금 실신한 어머니가 떠올랐다. 일단 감상은 나에게서 멀어져야 했다. 의료진은 분주하게 모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굵은 관을 들어 아이의 쇄골 아래에 꼽았다. 아이는 무엇을 기다리는지, 바늘을 받고도 여전히 눈만 껌뻑거렸다. 혈압은 안정적이었고, 사지를 제외한 부위는 다시 살펴도 크게 상한 것 같지 않았다.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록 평생 다리를 절거나,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지라도.

6.

살아있는 아이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검사실로 떠났다. 응급실에는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소생실 뒤편에는 죽은 아이가 머리에 붕대를 감고 누워 있었다. 그 사이 실신에서 깨어난 어머니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본능적으로, 죽은 아이를 향해 걸었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았을 그녀는, 이제 완벽히 유령 같아 보였다. 그녀는 자신 아들의 사체 곁에 다다라, 뭉개진 두개골 위의 붕대를 집었다. 그리고 머리를 처박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육체가 흐물거려서 거추장스러운 것 같았다.

"승호야. 엄마가 다 잘못했어. 엄마가, 우리 승호를 죽인 거야. 그 방충망. 방충망... 아... 엄마는 죽어도 좋아. 아, 엄마랑 집에 가자... 엄마가 우리 집 창문을 다 발라 버릴 거야. 창문 따위는 하나도 안 남기고 다 막아버릴 거야. 빛이 엄마한테 왜 필요하겠어. 자식들이 바닥에 처박혀 죽는데... 빛 같은 건 안 보고 살게 엄마가... 평생."

그녀는 일종의 비현실적인 협상을 하고 있었다.

"아, 엄마가 대신 바닥에 처박혀야 하는 건데. 엄마는 어디든 부서져도 괜찮아... 시간을 돌려 엄마가 죽을게. 엄마 그딴 거 백 번도 뛰어내릴 수 있어. 지금이라도 뛸게. 승호야... 창문... 방충망... 엄마 평생 빛 안 드는 곳에서 살 테니까. 엄마랑 집에 가자. 엄마한테 뭘 해도 괜찮아. 내가 당장 이 창문을 다... 아냐... 엄마랑 집에 가자. 아..."

창자가 끊어지는 소리가 응급실에 울려 퍼졌다. 모든 사람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 귀를 후려파는 날카로운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건 듣는 사람의 창자를 전부 절절하게 도려내는 느낌이었다. 어머니의 창자가 실제로 조각났어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나는 내 뱃가죽 안쪽에서 아릿함을 느껴, 잠시 쓰다듬어 보아야 했다. 손끝에서 자식을 잃은 고통이 묻어났다.

7.

살아있는 아이는 응급실로 무사히 귀환했다. 생체징후는 안정적이었고, 받아본 결과 상 머리와 몸통도 온전했다. 머리가 딱딱한 바닥으로 직격해 충격을 다 받아버린 오빠와는 다르게, 사지를 전부 내주고 목숨을 얻어낸 것이다. 그리고, 화단. 푹신한 흙이 아니었으면 거기서 충분히 두개골까지 더 부술 수 있었지만, 천만다행으로 충격은 손목 두 개를 꺾고 멈추어 버렸다. 과연 그 간극은 얼마나 멀었던 것일까. 그것과 허우적거리는 자세 때문에, 이 아이들이 절명의 경계를 넘나들었어야 했을까. 과연 이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나는 아이의 엑스레이를 열었다. 보기에도 얇은 허벅다리가 제멋대로 터져 사방으로 튀어나가 있었다. '이것이 목숨값이로군. 행운이라고 해야 하나. 이 비참한 사진이. '나는 자세히 보지 않고 필름을 닫고 소리쳤다. "정형외과 호출해. 응급수술이다."

고개를 돌리자 슬픔으로 절여진 유령이 하나 서 있었다.

"우리 딸도 죽었다고 말씀하실 건가요?"

"아닙니다. 살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직접 봤어요. 우리 딸의 다리가 부서져 바닥에 흩어져 있는걸요. 아니, 처음부터 똑똑히 다 봤어요. 방충망이 터져나가고 집 안의 인기척이 사라지는 순간이랑, 곧이어 자식들 머리통이 부서지는 그 끔찍한 소리. 밖으로 뛰어나갔더니, 우리 아이들이 밟힌 벌레처럼 바닥에 딱 붙어 널브러져 있었어요. 그리고 우리 딸, 운동장도 간신히 내딛던 우리 딸의 연약한 다리가 뻘건 근육을 드러내고 뒤로 접혀서 오들오들 경련하는데... 그거 제가 다 봤어요. 이 두 눈으로. 그럼에도 우리 딸이 멀쩡히 살아날 거라고 말씀하실 건가요?"

"수술을 해봐야 압니다. 잘 되면 걸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라는 건가요?"

다행, 써서는 안 될 말이었다. 그렇다면 불행, 역시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될 말이었다.

"......"

내가 우물쭈물하자 그녀는 검사를 마치고 돌아온 딸에게로 가서 주저앉아 슬픔을 짓이겨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나에게 듣고 싶은 말이라곤 한 마디도 없었던 것이다.

8.

나는 추락하는 아이 둘을 떠올리며 응급실에서 밤을 지새웠다. 머릿속이 허공에서 쏟아지는 이미지로 가득했다. 나는 밤새 응급실에서 뛰어다니고, 아이는 밤새 뼈와 근육을 모으는 수술을 받았다.

날이 밝아 내가 환한 세상으로 나가야 했을 때, 아이는 중환자실에서 의식불명이었다. 이대로 눈을 뜨지 않을 수도, 혹은 눈을 떠 여덟 살부터 시작되는 앉은뱅이나 절름발이의 인생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그녀의 운명은 감은 눈처럼 불투명했다.

나는 응급실에서 빠져나와 무거운 다리와 검은 반점이 아른거리는 시야로 퇴근길 지하철에 올랐다. 곧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어제 뉴스를 검색했다. 앵커는 제법 비통한 표정으로 기사를 읽었다.

'서울 구로구에서 어제 오후 2시 30분경, 5층 빌라에서 방충망이 뜯어져 남매인 10세 김 모 군과 8세 김 모 양이 추락했습니다. 오빠는 현장에서 즉사했고, 동생은 크게 다쳤습니다. 경찰은 이들이 장난을 치다...'

화면은 두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뜯어진 방충망을 클로즈업하다가 곧 아이들처럼 바닥으로 쏟아졌다. 모자이크 된 바닥에 아이들이 떨어져 만든 핏자국이 아련히 보였다. 그 사이, 화단과 아스팔트의 경계는 일 미터도 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것이 내 흐릿한 시야에 한 뼘으로 보였다. 죽음과 앉은뱅이의 그 경계, 화단과 아스팔트의 경계, 머리통과 두 다리의 경계, 아니 뜯어져 나가는 방충망의 경계, 그리고 숨바꼭질과... 또 허우적거리는 아이들, 그 저미는 불행을 목격하던 어머니.

나는 운명과 불행을 생각하다 복받쳐 그제야 비로소 울기 시작했다. 눈시울이 흐려져 운명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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