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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효주의 롱보드 동영상을 보고

얼마 전 고효주라는 인스타그램 사용자가 인터넷에서 국제적인 스타가 되었다. 원래부터 국내 롱보드 마니아들에게는 잘 알려진 사람이었는데, 최근에 인스타그램에 올린 1분짜리 동영상이 그 익숙한 세계의 담을 넘어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건 그 결과물은 매혹적이다. 지난 몇 달 동안 내가 극장에서 돈을 주고 본 영화들 중 고효주씨가 무료로 올린 이 1분짜리 영상만큼의 가치에도 도달하지 못한 작품은 수두룩하다.

  • 듀나
  • 입력 2016.04.27 12:11
  • 수정 2017.04.28 14:12

얼마 전 고효주라는 인스타그램 사용자가 인터넷에서 국제적인 스타가 되었다. 원래부터 국내 롱보드 마니아들에게는 잘 알려진 사람이었는데, 최근에 인스타그램에 올린 1분짜리 동영상이 그 익숙한 세계의 담을 넘어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영상 내용은 인스타그램의 다른 영상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롱보드를 타는 모습을 담은 것이었다. 어떻게 이것이 다른 무엇보다 히트를 친 것일까. 더 잘 찍고 더 잘 편집하고 더 어려운 기교를 보여준 것이었을까.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 인위적인 노력이 의식적인 결과를 맺었다기보다는 익숙한 반복 작업 속에서 어느 날 모든 것이 딱 하고 맞아떨어졌을 것이다. 선정된 음악이 유달리 좋았고 촬영된 영상과 동작이 그 안에서 유달리 잘 어울렸으며 자신의 매력이 유달리 잘 살아났던 순간. 아마 날씨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건 그 결과물은 매혹적이다. 지난 몇 달 동안 내가 극장에서 돈을 주고 본 영화들 중 고효주씨가 무료로 올린 이 1분짜리 영상만큼의 가치에도 도달하지 못한 작품은 수두룩하다.

무엇이 가치 있는 작품을 만들까. 그리고 무엇이 살아남을까. 예술하는 사람들 중 여기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다음주 차트 1위를 노리는 아이돌 팀에서부터 '위대한 미국 소설'을 목표로 삼은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온갖 사람들이 자신의 작업 중 여기에 대해 생각한다. 슬픈 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생각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은 영화를 하는 사람들에겐 특히 이상한 시대이다. 예전에는 위대함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감독이 되면 언젠가 오슨 웰스, 앨프리드 히치콕, 버스터 키턴의 위대함에 도달할 수도 있다는 기대. 하지만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예언했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캠코더로 영화를 찍어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이 시대엔 그 기대가 뒤틀려버린다. 지금 인터넷엔 위대한 거장들이 남긴 어마어마한 성취에 맞먹는 클립들이 수두룩하다. 전에는 할리우드만이 가능했던 기술을 지금은 모두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인스타그램 동영상으로 돌아가보자.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이와 비슷한 결과를 내려면 엄청난 노력과 기술이 들어갔을 것이다. 카메라는 무거웠고 롱보드 위에서 가볍게 춤추는 사람을 따라가며 찍기엔 모든 게 둔하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 당시 기술로 이를 재현한다고 해도 지금의 결과물에는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묵직한 준비 과정은 동영상에 찍힌 가벼운 일상성을 담아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마트폰과 드론으로 웬만한 건 모두 할 수 있는 지금, 우린 과거의 업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들의 개척정신을 예찬하고 그 원시적인 시대에 그 업적에 도달한 걸 기특하게 보아야 할까. 아니면 그 안에서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찾아야 할까. 아직까지 '위대한' 이름들이 남긴 수많은 작품은 다행히도 후자를 간직하고 있지만 그것이 시대의 신기루인지 고유의 가치인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평범해지고 많아진 이 시대의 작품들 중 어떤 것들이 살아남을 것인지 예언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면 우린 아이돌 팬들처럼 영속성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찰나에 기대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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