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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와 짝퉁 시장주의 | 정실자본주의의 경제학

법조계와 언론계에서 빨갱이보다 더 무서운 낙인은 반기업적이라는 평판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반기업적이라고 알려진 판사는 퇴임 후 대형 로펌에 취업할 수 없습니다. 반기업적이 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사회 지도층에 만연하다고 합니다. 저는 학계도 이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지 의심합니다.

  • 김재수
  • 입력 2016.04.28 10:10
  • 수정 2017.04.29 14:12
ⓒGettyimage/이매진스

1600년에 설립된 동인도 회사는 엘리자베스 1세로 부터 동인도 지역의 무역 독점권을 획득했습니다. 독점권은 15년 동안 주어졌지만, 영국 의회는 1694년에 이르러서야 다른 경쟁 업체에게도 무역권을 허가합니다. 그러나 실질적 경쟁이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동인도 회사는 이미 오랜 기간 동안 시장을 독점하고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형식적이라 할 수 있던 경쟁 업체마저도 금방 사라졌습니다. 동인도 회사의 주주들은 경쟁 업체의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인수합병을 통해 다시 독점적 위치를 지켜냈습니다. 이와 동시에 동인도 회사는 영국 재무부에 자금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서 3년의 독점권을 다시 얻어냈습니다. 이후로 끝없는 로비와 뇌물을 통해서 3년의 독점권을 반복적으로 갱신해냈고, 결국 1833년까지 독점적 무역권을 지켜냈습니다. 최초 15년 동안 주어진 독점권이 233년으로 늘어난 것입니다.

원조 시장주의

"배타적 특권이 없을 때, 거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배타적 특권이 있을 때조차도, 자주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국부론>의 일부입니다.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기업에 대해 회의적이었습니다. 동인도 회사가 독점을 유지하는 방식을 보면서, 기업이 얼마나 쉽게 부패할 수 있는지를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기업은 정치적 힘을 키워 배타적 특권을 가지려는 본성을 지니고 있고, 결국 경쟁을 저해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놀라야 하는 대목입니다. 애덤 스미스는 사익 추구를 자본주의의 원동력이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사익의 추구가 공익을 낳는다"는 명제는 <국부론>의 핵심 주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776년 책이 출간된 후, 지난 240년 동안 세상의 거의 모든 경제학도들은 이 명제를 소중하게 배웠습니다. 경제학 수업을 들은 이들은 애덤 스미스, 이기심, 이윤추구, 자유시장, 보이지 않는 손, 작은 정부, 효율성, 경제 성장 등의 단어를 조합해서 다양한 문장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가 기업을 부정적으로 보았다는 것에 놀라는 이유는 그를 자주 인용하는 이들이 시장과 기업을 동의어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에게 있어서 시장과 기업은 반대말에 가깝습니다. 기업은 어떻게 해서든 경쟁을 회피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애덤 스미스가 가르친 원조 자유시장주의는 기업의 과도한 지배력이 시장경쟁을 훼손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것을 시장경제의 필요조건으로 간주합니다.

짝퉁 시장주의

원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시장과 기업을 동의어로 사용하는 짝퉁 시장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자유경제원은 스스로를 "시장경제에 대한 오해, 불신, 미신과 맞서는 기관"으로 소개합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친기업 정책은 친시장 정책이고, 친서민 정책은 반시장 정책입니다. 자유경제원이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들 중 일부를 살펴 봅니다.

"배임죄, 기업의 경쟁력 떨어뜨리는 가혹한 규제", "기업인 사면, 과잉처벌의 덫에 걸린 기업인들 현장으로 돌아갈 새로운 기회", "독점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자", "기업하기 좋은 2016, 규제만능 공화국에서 벗어나야", "나홀로 증세, 법인세 인상은 경제 전체의 소득 감소 유발", "기업 격차는 자연스러운 현상 ... 대기업 수 많다는 것은 경제상황 좋다는 의미", "각종 법률에 숨어있는 기업규모별 규제 해소해야", "기업관련 세법 개정안 긴급 간담회 : 투자세액공제제도 개정안, 경제성장 훼손시켜", "자유기업원, 친서민정책 비판 세미나 개최"

짝퉁들의 특징이 진짜와 가짜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듯, 자유경제원은 친시장과 친기업, 이윤과 경쟁, 자유와 특권을 혼용하면서, 자유시장과 정실자본주의의 차이를 모호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최대의 적, 정실자본주의

정실자본주의란 기업의 성공이 정부 및 정치권력과의 관계에 달려있는 경제 체제를 의미합니다.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속성은 로비와 뇌물을 통해 국가의 법, 규제, 세금 정책 등을 경영상 유리하게 만들고 경쟁을 줄이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시장지배력이 큰 기업일수록 이렇게 할 인센티브와 능력을 더 많이 지니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은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기업의 대표입니다. 혁신적인 기술을 통해 관련 산업에서 최고의 시장점유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시장지배력을 유지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지속적인 혁신을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의 힘에 기대는 것입니다. 기업은 둘의 최적 조합을 찾아낼 것입니다. 시장지배력이 높을수록 힘겨운 혁신을 줄이고, 정부에게 의지하려고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두 기업은 가장 많은 정치 자금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시장주의자들은 정실자본주의를 자본주의의 최대의 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원조와 짝퉁 사이에는 미묘하지만 선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짝퉁 시장주의자들은 정실자본주의의 모든 책임을 정부에게만 전가합니다. 이들은 정부를 시장의 반대말처럼 사용합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정부가 우리 문제의 해답이 아니라, 정부 그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소개한 자유경제원은 정부규제와 정부독점을 모든 악의 근원으로 생각합니다. 전기, 가스, 수도, 지역 전화 서비스, 지역 버스 서비스와 같은 독점적 정부 프랜차이즈, 면허 독점, 허가, 관세, 물량규제, 가격규제, 정부가 기업을 소유하거나 보조금을 주는 행위 등, 모두에 반대합니다. 어떤 산업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심지어 공정거래법조차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원조 시장주의자인 애덤 스미스는 영국 왕실이 아닌 동인도 회사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짝퉁이라면 영국 왕실을 탓할 텐데, 원조는 왜 동인도 회사를 비판하는 것입니까. 짝퉁은 병의 증상만 탓하는 것이고, 원조는 병의 원인을 고치려는 것일까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논쟁으로 빠지기보다, 정부가 특혜를 주거나 기득권을 보호해 주는 메커니즘을 살펴봅시다.

금융위기를 생각한다

1998년 미국의 대형 금융기업인 씨티그룹은 대형 보험회사인 트래블러스의 인수합병을 시도합니다. 사실 이것은 당시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을 분리하고 있는 글래스-스티걸 법안을 위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트래블러스의 대표는 이미 연방은행 및 재무부와 충분히 상의한 일이라고 말하며 인수합병을 밀어붙였습니다.

당시 재무장관은 로버트 루빈입니다. 그는 평소 금융권을 보호하기 위해 언제나 구제금융을 지지하던 사람입니다. 1999년 글래스-스티걸 법안을 폐지에 나섰고, 동료 민주당 의원들을 설득하여 관련 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키는데 성공합니다. 바로 다음 날, 그는 재무장관에서 사임하는데, 곧바로 많은 은행에서 고액 연봉을 제시받습니다. 결국 천오백만 달러라는 천문학적 연봉을 제시한 씨디그룹의 기업 자문관으로 입사합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글래스-스티걸 법안의 폐지가 금융위기를 가능하게 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법안 폐지는 규제완화를 통하여 단기적 효율성을 제고할지 모르지만, 금융산업의 거대한 정치적 영향력이 금융위기의 배경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뒤에는 로버트 루빈으로 상징되는 정치적 거래가 존재했습니다. 특혜를 제공하고 고액 연봉의 재취업 기회를 얻는 것이 정실자본주의의 뿌리입니다.

삼성을 생각한다

"삼성 주요 계열사 사장과 구조본 팀장들 중에는 자신들이 실제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고 믿는 이들이 많았다. ... 아주 시시콜콜한 정부 방침까지 구조본 팀장회의에 올라오곤 했다."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말한다>의 일부입니다. 김용철 변호사는 이 책을 통해 삼성의 비자금과 각종 비리를 폭로했습니다. 그는 삼성이 온갖 로비와 여론 조작을 통해 사실상 정부를 운영했다고 주장합니다. 정부기관, 검찰, 법원에서 일하던 이들이 삼성의 법무팀으로 이직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이가 한미 FTA를 이끌었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입니다. 그는 2009년 3월 삼성전자 법무팀 사장으로 이직합니다.

김용철 변호사는 이런 이야기도 전하고 있습니다. 법조계와 언론계에서 빨갱이보다 더 무서운 낙인은 반기업적이라는 평판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반기업적이라고 알려진 판사는 퇴임 후 대형 로펌에 취업할 수 없습니다. 반기업적이 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사회 지도층에 만연하다고 합니다. 저는 학계도 이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지 의심합니다.

흥해라, 원조 자유시장주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자유경제원에 매년 거액의 돈을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자유경제원은 실상 기업의 정치적 영향력과 사회 지배력의 확장을 위해 봉사하면서 정실자본주의의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독재자의 최고 전략은 이웃 나라의 독재자를 비난하는 것이듯, 정실자본주의에 기생하는 짝퉁 시장주의는 정부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합니다.

시장주의자를 자처하는 시카고 경영대의 루이지 칭갈레스 교수는 글래스-스티걸 법안의 폐지가 자유시장의 원칙에 맞고 옳은 결정이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그의 저서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오랫동안 그들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나는 전문가이고, 무엇이 최선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내가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래스-스티걸 법안이 가장 효율적인 형태의 규제는 아니었지만, 60년 동안 잘 작동했다. 사람들은 금융산업의 정치적 힘이 과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통제하기를 원했다. 비록 그들이 세련된 경제적 논리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핵심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선의 대안에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최선의 규제를 얻으려고 하다가, 우리는 실현 가능한 규제조차 얻지 못한다."

시장과 정부의 대결이라는 프레임은 짝퉁 시장주의입니다. 진정한 시장주의는 기업의 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의 힘을 믿는 것입니다. 기업이 정치적 힘을 가지려고 하는지 항상 의심하고, 이를 통제하는 것입니다.

흥해라, 이런 자유시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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