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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혁명에서 대전환으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인 대선에서는 현재의 다자구도로 승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쉬운 해결책으로 야권통합론이나 연대론이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유권자들이 만들어준 다당 구도를 정치공학적 논리에 따라 변경시키는 것은 민의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지금까지보다 통합과 연대에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 이남주
  • 입력 2016.04.21 07:26
  • 수정 2017.04.22 14:12
ⓒ연합뉴스

선거결과에 대한 해석이 간단치 않다. 박근혜정부에 대한 심판이었다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여야 사이에도 명암이 뚜렷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부정적 결과 속에 기회가 주어져 있고, 긍정적 결과 속에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제2당으로 몰락하는 수모를 겪었는데 정당투표 득표율에서는 제2당과 3당을 7~8% 이상 앞선 1위를 차지했다. 이 구도로 대선이 치러지면 승리할 가능성이 여전히 가장 높다. 더불어민주당은 의석수에서는 제1당으로 올라섰으나 정당득표율은 3등으로 밀려났다.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도 줄어들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국민의당은 정당투표에서 2위를 기록해 대권 경쟁을 위한 기반을 구축했으나 지역적 확장성에서는 한계를 보였다. 정의당은 7.2%라는 만만치 않은 정당득표율을 기록했지만 통합진보당으로 나섰던 지난 총선에 비해 의석수와 득표율이 모두 줄어들었다. 결국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어느 누구를 미래세력으로 선택하지 않고, 모두에게 경고와 함께 선택받을 수 있는 기회를 동시에 준 셈이다.

총선 이후, 청와대는 변할 것인가

박근혜정부가 자신에게 남은 기회를 어떻게 살려갈지가 당장 중요한 관심사이다. 이들의 결정이 국민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통령제에서는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에서의 참패가 정부의 최종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민의를 잘 파악해 초당적 위치에서 국민적 의제에 초점을 맞추어 정국을 운영하면 정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레이건 대통령은 1986년 중간선거에서 자신이 속한 공화당이 참패했으나 1988년에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며 퇴임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2014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역사적 패배를 맞보았으나 그 이후 지지율은 오히려 상승하는 추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박근혜정부에 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민과의 소통능력이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보수적 성향을 가졌지만 '그레이트 커뮤니케이터'(Great Communicator)라는 별명을 가졌던 레이건과의 비교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총선 다음날 청와대의 두줄 논평, 그다음 월요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총선에 관한 대통령의 250자 언급 등 총선결과에 대한 반응부터 소통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이같은 불통의 정치가 앞으로 우리 정치를 더 엉망으로 만들고, 이미 심화되고 있는 경제·외교적 위기를 심각한 지경으로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야권이 풀어야 할 숙제

국민들은 선거 전보다 마음을 더 단단히 먹어야 할 상황인데, 이는 우리 사회의 대전환에 대한 갈구를 더 증가시킬 것이다. 그렇지만 그 갈구가 충족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게 되면 국민들은 더 큰 절망의 나락에 빠질 수 있다. 결국 이번 유권자혁명을 대전환으로 이어가는 것이 야권에 주어진 핵심과제이다.

이번 총선은 야권분열이라는 구도하에서 이 과제를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라는 꽤 난감한 숙제를 야권에 주었다. 그 과제 수행에 매우 중요한 전환점인 대선에서는 현재의 다자구도로 승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쉬운 해결책으로 야권통합론이나 연대론이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유권자들이 만들어준 다당 구도를 정치공학적 논리에 따라 변경시키는 것은 민의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지금까지보다 통합과 연대에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와 함께 야권 지지층이 야권분열 구도하에서 대선을 치르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번에 야권 지지층은 박근혜정부에 대한 심판과 야권 내 변화에 대한 요구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선택을 했다. 8년째 계속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역주행을 민주, 민생, 남북화해라는 방향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갈망이 다른 무엇에 앞서는 요구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바닥에 깔린 이 요구를 무시한 채 단순히 3자 구도가 국민의 요구라고 단정하는 것은 민의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아니다. 즉 대선까지의 과정, 나아가 그 이후 우리 사회의 대전환 작업까지를 고려하면 수구보수의 철옹성을 넘을 수 있는 폭넓은 연대가 필요하지만, 일단은 누가 그 작업을 주도할 수 있을지를 둘러싸고 경쟁을 해보라는 것이 이번 선거에서 표출된 야권 지지층의 뜻이다. 야권이 이번 선거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찰과 실력이 판가름할 것

문제의 핵심은 각 정당이 계파나 정파적 이익을 뛰어넘는 행태와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가에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호남 유권자들에게 회초리질을 당한 것은 이들이 수권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특정 세력의 패권주의가 계속 작동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이 지나치다는 반박도 있지만, 2012년 총선부터 이어진 일련의 실패에 대해 그 선거를 주도했던 주체들의 진솔한 평가와 반성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국민의당은 반사이익을 얻으며 제3당의 위치를 확보했으나, 이들이 우리 사회의 대전환을 실현시킬 수 있는 인적 자원과 비전을 갖추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남아 있다. 선거를 거치며 내부에서도 기득권이 형성되고 있는데 이들의 영향력이 커지게 되면 확장성이 한계에 부딪히게 될 뿐 아니라 현재 지지기반도 무너질 수 있다. 남을 탓할 것이 아니라 누가 먼저 자신의 문제를 극복하고 수권세력으로의 모습을 갖추는가에 따라 통합과 연대의 주도권이 변화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냉정한 판단과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정치에너지를 토대로 연대와 연합정치의 진화를 촉진해야 한다.

경쟁과 연대를 조화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박근혜정부 심판과 야권혁신에 대한 요구를 결합시키는 숙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제 정치지도자와 정당이 어려운, 그렇지만 상당부분은 스스로 자초한 어려운 숙제를 마무리할 시기에 들어섰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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