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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진실'은 대통령의 의무다

'합리적 의심'들을 집요하게 추적한 『세월호, 그날의 기록』엔 침몰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와 해경 본청 상황실 사이에 오간 핫라인 녹취록이 나온다. VIP(대통령) 보고에, 영상 확보에 무섭도록 집착하는 청와대와 그 집착에 춤을 추는 해경 상황실 모습에서 우리의 목숨 값을 유추할 수밖에 없다. 그 모습들에서 오직 VIP만이 의혹을 해소할 권능을 가졌음을 직감할 수밖에 없다. "진상규명에 유족 여러분의 여한이 없도록 하는 것, 거기서부터 깊은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하지 않겠느냐"던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 권석천
  • 입력 2016.04.20 07:25
  • 수정 2017.04.21 14:12

지난 토요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엔 비가 세차게 내렸다. 발이, 종아리가, 어깨가 젖기 시작했다. 폭우에도 분향소로 향하는 500, 600m의 줄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한 사람씩 304명 영정 앞에 흰 국화를 놓은 뒤 고개를 숙였다. 오른편 '기억하라 0416' 전시관에선 사진 하나가 추모객의 걸음을 멈춰 세웠다. '팽목항 시신확인소'. 긴 탁자에 담요를 덮고 그 위에 비닐을 둘러 만든 두 개의 빈 침상이었다.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이 펴낸 『세월호, 그날의 기록』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대목은 2014년 4월 16일 구조할 시간이 충분했다는 지적이었다. 세월호가 좌현으로 약 30도 기울던 오전 8시50분 선장 이준석이 퇴선 명령을 했다면 8시55분쯤 476명 전원이 탈출할 수 있었다. 세월호 선원들이 해경 123정에 오르던 9시45분 퇴선 명령이 내려졌더라도 거의 대부분을 살릴 수 있었다(가천대 박형주 교수 보고서).

구조할 세력도 있었다. 9시20분 유조선 둘라에이스호에 이어 어업지도선과 어선들이 잇따라 도착했다. 9시40분 전남707호, 9시45분 드래곤에이스11호, 9시50분 에이스호, 진도호.... 당시 해역 수온은 12.6도. 구명조끼 입고 바다에 떠있기만 해도 6시간까지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 선원들은, 123정 해경들은 퇴선 명령을 하지 않았다. "선내에 대기하라"는 방송은 열두 차례나 이어졌다. 아이들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은 건 '개념이 없어서'도, '생각하는 습관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그날 밤 광화문광장에 앉은 수천 명은 얇은 비닐 우의만으로 폭우를 버텼다. 광장에 나오지 않은 이들의 가슴에도 비가 내렸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세월호를 잊고 싶어 하는 이유는 떠올릴수록 마음이 아프고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잊고 싶다고 잊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음은 내 차례, 우리 차례인지 모른다.

지금 우린 알지 못하는 게 너무 많다. 해경 123정 정장 김경일은 왜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뛰어내리라'고 퇴선 방송을 했다"고 거짓 기자회견을 했나. 단순히 개인 책임을 면하려는 것이었나. 아니면, 해경 지휘부에서 초기대응 실패를 은폐하려 한 것인가. 세월호에서 올라온 노트북 하드디스크의 '국정원 지적 사항' 파일은 또 무엇인가.

'합리적 의심'들을 집요하게 추적한 『세월호, 그날의 기록』엔 침몰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와 해경 본청 상황실 사이에 오간 핫라인 녹취록이 나온다. VIP(대통령) 보고에, 영상 확보에 무섭도록 집착하는 청와대와 그 집착에 춤을 추는 해경 상황실 모습에서 우리의 목숨 값을 유추할 수밖에 없다. 그 모습들에서 오직 VIP만이 의혹을 해소할 권능을 가졌음을 직감할 수밖에 없다.

"진상규명에 유족 여러분의 여한이 없도록 하는 것, 거기서부터 깊은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하지 않겠느냐"던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선원들과 해경이 아이들을 바다에 방치했다면 그 가족들을 사회 갈등 속에 표류하게 방치한 건 대통령이었다. 단원고 희생자 최윤민양의 언니는 동생에게 편지를 띄웠다(목포 MBC 뉴스). "언니는 요즘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 지치고 힘들어...그래도 너한테 말할 수 있는 건...너를 무섭게 한, 아프게 한 어른들처럼 살지 않으려고 하루하루 노력하며 살고 있어. 사랑한다. 내 동생."

4·13 총선은 "자기 정치를 하지 말라"는 대통령에게 시민들의 자기 정치란 무엇인지 보여줬다. 어제 박 대통령은 "선거 민심을 겸허히 받들고 새 국회와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했다. 지금 필요한 건 추상적인 겸허함이 아니다. 구체적인 반성과 사과, 쇄신이다. 대통령은 세월호특별법 개정에 협력하겠다는 의지부터 보여야 한다. 그래야 특별조사위 활동이 정상화되고, 세월호를 둘러싼 편가르기가 끝나고, 투명하고 온전한 인양이 가능하다.

아이들은 가라앉는 선실 안에서 "나는 꿈이 있는데! 나는!"이라고 소리쳤다. 그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그날의 진실을 밝히는 건 대통령이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다음날은 2014년 4월 17일 실종자 가족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방문,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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