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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5년간의 눈물

ⓒ연합뉴스

다섯살 나원이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작은 손으로 가느다란 목을 감싸 쥔다. 2012년 기관절개술을 통해 목에 구멍을 뚫어, 구멍을 막지 않고서는 바람이 새 목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나원이는 정부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 폐질환의 상관성에서 ‘거의 확실함’ 판정을 받은 피해자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사망한 이들 말고도 나원이처럼 평생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이들이 정부에 접수된 수치만 1000명을 웃돈다.

2012년 11월, 감기인 줄만 알았던 나원이에게 호흡곤란이 찾아왔다. 엄마 김미향(34)씨의 머릿속에 7개월 전 나원이의 쌍둥이 동생 다원이의 고통이 떠올랐다. 다원이는 같은 해 4월, 언니보다 앞서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병원에 가 ‘기흉’ 진단을 받았다. 부랴부랴 데려간 병원에서 나원이는 ‘폐 섬유화’(폐가 굳는 현상) 진단을 받았다.

나원이는 입원하자마자 두 달 가까이 중환자실에서 지내야 했다. 엄마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아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곧 나원이의 이모가 살균제를 사용해 두 아이 모두 폐질환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임산부와 아이들이 살균제 때문에 사망했다는 뉴스가 내 얘기가 될 줄은 몰랐다”고 힘없이 말했다.

18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관계자들이 롯데마트의 사과 및 보상발표 기자회견이 끝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다행히 나원이의 상태는 조금씩 호전됐다. 그러나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를 오래 사용한 탓에 기도에 문제가 생겨 호흡보형물(캐뉼라)을 목에 삽입하지 않고서는 생활이 불가능해 기관을 절개했다. 지금도 한 시간에 한 번은 김씨가 나원이의 목에서 가래를 제거해줘야 한다. 다음달에는 기도를 확보하기 위해 갈비뼈 연골을 목에 이식하는 수술도 예정돼 있다. 김씨는 “(바람이 새는) 목을 막고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고래고래 소리치는 나원이를 볼 때면 가슴이 찢어진다”고 말했다.

윤정애(45)씨는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그는 살균제로 인해 폐암을 앓는 피해자다. 2011년에 왼쪽 폐 아래쪽의 절반을 잘라냈다. 숨이 가빠, 간신히 내뱉는 목소리는 위태로웠다. 그는 자신이 살균제 피해자임을 깨닫는 데 10년이 걸렸다. 2001년 12월 임신 5개월째, 이전 3개월간 가습기를 썼는데 숨이 가빴다. 임신한 탓에 약은 먹지 못하고 호흡기 치료만 간신히 받았다. 이후 긴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다. 2011년에 임산부들이 이유 없이 죽었다는 뉴스를 보고서야 살균제가 생각났다. 윤씨는 정부 조사에서 살균제 관련 여부 ‘가능성 높음’ 판정을 받았다. 둘째 아들 민수(15)도 천식 치료를 받고 있다.

수년간 눈물 마를 날 없던 피해자들은 18일 롯데마트의 사과를 믿지 못하는 눈치다. 아들 성준(14)이 만성폐질환으로 병원 치료를 계속 받고 있는 권미애(40)씨는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옥시 관계자에게 성준이 배와 목에 난 구멍을 다 보여줬는데 쳐다보지 않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검찰 수사에 들어가니 면피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미향씨는 “사과 발표를 보면서 하염없이 울었다. 나원이가 한창 아팠을 때 생각이 나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아무런 말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 조사 결과 살균제 피해가 확인된 사람은 모두 217명(사망 92명)이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피해신고자까지 포함하면 1215명(사망 185명)으로 늘어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과 환경운동연합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이날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검찰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신고센터’를 설치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살균제 관련 논문을 근거로 잠재적 피해자가 29만~227만명으로 추산한다. 또 이들은 정부 조사에서 피해를 준 것으로 확인된 14개 제품의 24개 제조·판매사를 전부 소환하라고 주장했다. 임흥규 환경보건시민센터 팀장은 “4개사 제품 외에도 사망 등 소비자 피해를 유발한 제품이 많다. 진상 규명을 위해 모든 피해 유발 가습기 살균제에 대해 검찰이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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