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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에는 여론이 없었다 : 여론조사가 엉터리였던 4가지 이유

  • 허완
  • 입력 2016.04.15 13:36
  • 수정 2016.04.15 13:51
ⓒGettyimagebank/이매진스

여론조사에는 여론이 없었다. 여론조사가 아니라 ‘여론조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20대 총선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여론조사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먼저 선거 이전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아래는 총선 사흘 전 기사다.

사흘 앞으로 다가온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157∼175석, 더불어민주당은 83∼100석, 국민의당은 28∼32석을 얻을 것으로 여론조사 전문기관들이 10일 예상했다.

(중략)

조사 기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새누리당은 이번 총선에서 160석 이상을 얻어 무난하게 원내 과반을 확보, 20대 국회에서도 여대야소(與大野小) 구도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고, 국민의당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축해 3당 체제가 형성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많게는 11석까지도 가능할 것으로 추정되는 무소속 당선자들의 복당 또는 정치 결사체 형성 여부도 정국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연합뉴스 4월10일)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정확히 정반대였다. ‘여대야소’가 아니라, ‘여소야대’다.

그동안 여론조사는 정말 많은 것들을 결정해왔다. 여론조사 때문에 억울하게(?) 공천에서 탈락한 예비후보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도 여론조사가 막대한 힘을 발휘한다. 오차범위 이내인데도 2위 후보가 그대로 탈락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대통령 후보를 선출할 때도 여론조사가 주요 도구 중 하나로 쓰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7년 당시 이명박 후보와의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선거인단 투표에서 이기고도 여론조사 때문에 패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정몽준 후보와 여론조사 단 하나로 후보 단일화를 이뤘다.

이렇게 중요하게 활용되는 여론조사는 왜 이렇게 엉터리인 걸까?

1. 집전화 걸어봐야 안 받는다

우선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 것 중 하나는 집전화 위주의 조사방식이다. 요즘은 집전화가 없는 집이 적지 않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20~30대 1인가구나 젊은 부부들은 집전화를 놓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 여론조사가 이뤄지는 낮시간대에는 집전화로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매우 제한적이다. 특정 연령대, 특정 계층의 여론이 실제보다 과다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내 유선전화는 가입률이 50%에 불과하다. 따라서 낮에 집에 있는 어르신들의 응답이 과다하게 반영되기 마련이다. 이른바 ‘여당 과대 표집’ 현상이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의 예상성적이 부풀려진 이유다. 반면 휴대전화는 가입자가 이미 100%를 넘어 연령별로 고른 응답이 가능하다. 오차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한국일보 4월15일)

‘안심번호’를 활용한 여론조사가 대안으로 꼽히지만, 현행법상 이런 방식의 조사는 정당에서만 활용할 수 있다.

여당 편향을 바로잡을 또 다른 대안은 안심번호였다. 유선이 아니라 무선 전화를 통한 여론조사를 하면서도 개인정보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가상의 번호를 만들어 경선이나 여론조사에 활용하는 것이 안심번호 여론조사다. 응답률도 높아지고, 연령층별로 응답률 차이가 적기에 가중치를 이용한 통계보정 작업의 필요성도 적다는 것이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선거법상 안심번호를 통한 여론조사는 정당에만 허용되고, 따라서 이를 공표할 수도 없다. (미디어오늘 4월14일)

2. 만명한테 걸어야 1000명도 안 받는다

응답률이 낮은 것도 부정확한 여론조사를 낳는 요소 중 하나다. 녹음된 멘트로 진행되는 ARS(자동응답)가 조사원이 직접 묻는 면접방식보다 응답률이 낮다는 게 정설이다. 임의걸기(RDD) 방식으로 진행되는 집전화 여론조사도 응답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응답률이 낮은 여론조사는 그만큼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성향, 계층, 연령 등에 따른 다양한 여론을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응답자의 여론이 과도하게 반영될 위험도 있다.

낮은 응답률도 문제다.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가 2014년 실시된 지방선거 관련 여론조사 자료 총 816건을 분석한 결과 응답률이 10%가 안되는 경우가 50%가 넘는다. 응답률이 3% 미만인 것도 76건이나 됐다. (경향신문 4월14일)

예컨대 지난 4월 4~5일 한 매체가 발표한 서울 강서구 총선 여론조사의 경우 표본 500명에 응답률은 5.8%에 불과했다. 500명을 채우려면 이 업체는 2만5000번 이상 전화를 걸어야 했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20~30대를 채우지 못하면 보통 가중치를 곱해 전체 20대의 여론이라고 발표한다. (중앙일보 4월15일)

여론조사 응답률은 자동응답전화의 경우 약 5%, 전화면접조사도 15% 정도에 불과합니다.

결국 응답에 적극적인 성향의 사람들로 조사가 이뤄져, 표본오차 외에 이른바 편향오차가 존재한다는 지적입니다. (JTBC뉴스 4월15일)

3. 선거 막판의 여론은 알 길이 없다

선거 이전에 발표됐던 여론조사가 실제 결과와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데는 여론조사 공표 금지 규정도 한 몫 한다. 선거 막판 요동치는 민심을 정작 유권자들은 알 길이 없다.

현재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 6일 전부터 실시된 여론조사는 공표가 금지된다. 이 기간동안 실시된 여론조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인용해서 보도하는 것도 금지된다.

이런 법이 제정된 건 ‘여론조사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자’는 취지에서다. 앞서는 후보에게 표가 쏠리는 효과(밴드왜건)나 밀리는 후보에게 지지표가 결집되는 효과(언더독)를 방지하자는 것. 부정확한 여론조사가 민의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도 깔려 있다.

그러나 정작 현실은 다르다.

정당들은 이동통신사에서 안심번호를 구입해 당내 경선에 활용하고, 여론조사 공표 금지 이후에도 내부적으로 계속 여론조사를 실시해 선거 전략을 세우고 있다. 유권자들은 정당들이 발표하는 판세 분석이 정확한 것인지, 선거 전략인지 알 수가 없다.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흑색선전이 유통돼 표심이 왜곡될 수도 있는 일이다. (동아일보 사설, 4월11일)

여러 보도를 종합하면, 주요 선진국들 중 한국처럼 선거 직전 일주일 넘게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제한이 전혀 없거나, 있더라도 하루 이틀 수준이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의 3분의 1 가량을 ‘깜깜이’로 보내야 하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는 중앙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렇게 적었다.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하는 현행 제도 아래서 누가 이익을 보는지 따져보자. 내가 보기에 후보 지지율과 관련한 흑색선전을 동원해 표심을 유린하는 정치인이 가장 좋다. 자료적 근거도 없이 신문과 방송에 등장해서 제 맘대로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정치평론꾼들이 두 번째로 좋다. 여론조사 공표금지 동안 여론조사를 수행해 개표방송에서 결과를 터뜨리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세 번째로 좋다. 도대체 선거 정국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겠지만 기어이 투표하겠다고 나선 유권자가 그 다음이겠다. 반면 최악은 이 같은 이유로 투표를 포기한 유권자일 것이다. (중앙일보 칼럼 4월12일)

4. 여론조사 결과 싸게 하나 맞춰 드립니다?

선거 때마다 여론조사가 워낙 많이 활용되다보니 ‘대목’을 노리고 자격 미달의 여론조사 업체들이 난립하는 것도 문제다.

심지어 먼저 후보자에게 접근해 대놓고 여론조사 조작을 제안하는 곳도 있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지난 3월 방송에서 이 문제를 추적, 보도했다.

선거철이 되면 여론조사 업체들이 후보자들에게 먼저 연락이 옵니다.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게 여론조사 등을 돕겠다며 수백만 원 이상 돈을 요구합니다.

취재진이 이런 불공정 여론조사 업체, 소위 '깡통 여론조사 업체' 사무실을 찾아가봤습니다.

여론조사에서 최대 30%까지 지지율을 올려 주겠다고 말합니다. (JTBC뉴스 3월17일)

이 때문에 ‘여론조사 업체 인증제도’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시장점유율 ‘빅3’ 중 한 곳인 미디어리서치의 김정훈 대표이사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사회사 인증제는 굉장히 중요하고 본다. 선거 때 ARS 기계 하나 갖다 놓고 사업자 등록을 한 뒤 영업하는 ‘듣보잡’ 회사가 너무 많다. 국제표준화기구(ISO)20252라는 게 있다. 리서치 조사를 심의해 인증해 주는 제도다. 무려 580개의 체크리스트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우리도 조사 품질에 이런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이건 규제가 아니다. 조사회사들을 방문해 보면 정말 부끄러울 정도다.” (동아일보 4월11일)

그러나... 여론조사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사실 한국에서 여론조사는 남용되고, 오용된다. 정확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여론조사가 민주주의를 대체하다시피 하는 건 더 큰 문제다.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해왔던 것처럼, 우선 여론조사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정당의 기능을 약화시킨다.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당원들의 뜻을 모아 주요 사안을 결정해야 할 정당들이 이 권한을 여론조사에 넘겨버리는 것.

대개의 경우 이건 '민심을 반영한다'는 말로 포장되지만, 그만큼 정당의 의사결정 구조가 허약하다는 사실은 잘 언급되지 않는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은 여론조사가 정당의 의사결정 기능을 대체하는 '후진스러운' 한국적 현실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왜 한국의 정당이나 정치인들은 여론조사에 그렇게도 목을 매는가? 대통령 후보든 시장, 도지사 후보든 어떻게 여론조사로 뽑는가. 여론조사로 후보를 결정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여론조사는 여론을 알기 위한 조사일 뿐이다. 선택을 위한 참고자료일 뿐이다. 결정 방법이 아니다. (동아일보 칼럼, 3월20일)

또 한국에서 여론조사는 주요 정책에 대한 민주적 토론을 돕는 근거로 쓰이는 게 아니라, 토론을 종결시키는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 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특정 사안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이 필요한데, 찬반이 논의의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논의의 종결이 된다. 찬성이 20% 높으니까 너희는 아무 말 하지마가 된다. 반대가 많으면 그거 하지마가 된다. 찬반 어느 곳이 높다 하더라도 논의할 수 있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등 논의할 수 있는 기본소재가 되어야 하는데 한국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필요하다, 필요하지 않다, 공감한다, 공감하지 않는다의 양 극단을 선택지로 제공하고 사회의 중간지대, 회색지를 소멸시키는 역할도 여론기관이 하고 있다. (폴리뉴스 1월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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