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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없이 살 수는 없다 | 프리타 칼로 '부서진 기둥'

혹자는 쉽게 말하기도 합니다. 누구나 사는 게 쉽지는 않다고 , 마음이 굳세지 못해서 엄살을 부리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그러나 사람마다 겪었던 일이 다르고 대처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쉽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는 더위를 잘 타고 누구는 추위를 잘 타는 것처럼, 같은 사건을 경험하더라도 받게 되는 충격은 모두 다릅니다.

  • 김선현
  • 입력 2016.04.15 12:48
  • 수정 2017.04.16 14:12

프리다 칼로 | 부서진 기둥 21

The Broken Column, 1944

여섯 살 때 소아마비를 앓고 장애인이 된 소녀가 있습니다. 열여덟 살 때 타고 있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바람에 버스의 철제 막대기가 그녀의 등을 파고들어 관통했습니다. 요추와 골반뼈가 파손되고 오른쪽 다리뼈가 11개로 부서지는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너무나 끔찍한 이 이야기의 주인공도 바로 화가 프리다 칼로입니다. 프리다는 단순히 몸의 상처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는 여성 편력으로 유명한 인물이었지요. 몸에 박힌 못은 마음에 박힌 못이기도 합니다. 사막이 갈라진 배경은 프리다 칼로의 몸과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녀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닙니다. 그림의 힘을 통해 스스로 거부할 수 없었던 과거의 상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프리다 칼로, <프리다와 디에고 리베라>, 1931,

Frieda and Diego Rivera

우리는 흔히 "나 애완견 키우는 것에 트라우마 있어", "나 무서운 영화에 트라우마 있어" 와 같은 말을 농담처럼 던집니다. 트라우마는 과거에 겪은 충격적 사건으로 인한 정신적 상처를 의미하는 말로, 정신의학 분야에서 쓰이는 전문용어입니다. 이 말을 일반인들이 자주 쓴다는 것은 트라우마라는 개념이 대중화됐다는 의미이겠지요. 그만큼 정신적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서일까요?

누구나 정신적 상처 한두 개쯤은 품은 채 살아갑니다. 단지 그 상처의 크기나 깊이가 다른 것이지요. 누군가는 웃으며 넘길 수 있을 테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아프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혹은 떠올리기조차 싫어서 지워버리고 살아가는지도 모르지요.

문제는 이처럼 해결되지 못하고 마음속에 쌓인 감정이 부적절한 방식으로 표출되는 경우도 많다는 점입니다. 이럴 경우 병리적 증상들이 나타나고, 이 증상들이 반복되고 굳어지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일으켜 장애가 됩니다 . 저는 이것 역시 트라우마라고 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는 일종의 정신적 상처입니다. 즉 스트레스란 심리적으로 압력을 받는 상태인데, 나쁜 일로만 생기지는 않습니다. 입학이나 결혼, 승진 등 좋은 일로도 얼마든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 스트레스는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우리가 스트레스를 완전히 피하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스트레스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혹자는 쉽게 말하기도 합니다. 누구나 사는 게 쉽지는 않다고 , 마음이 굳세지 못해서 엄살을 부리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그러나 사람마다 겪었던 일이 다르고 대처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쉽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는 더위를 잘 타고 누구는 추위를 잘 타는 것처럼, 같은 사건을 경험하더라도 받게 되는 충격은 모두 다릅니다.

트라우마는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그 트라우마 때문에 삶 전체를 망가뜨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조건 아픈 기억을 잊어버리려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트라우마의 원인이 되는 사건을 받아들이고 상처를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수용하고 그 과정을 바탕으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단지 상처받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림으로 자신의 상처를 극복해낸 프리다 칼로처럼 말이죠.

프리다 칼로 | 엘뢰서 박사에게 바치는 자화상

Self Portrait Dedicated to Dr. Eloesser, 1940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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