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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이상한 동물들

'한강'이라는 무대가 있다. 이 무대에 이상한 배우들이 출연한다. 수달, 고라니, 상괭이다. 하지만 이상한 것이 정말 그들일까? 혹시 무대가 이상한 것은 아닐까? 아니다, 생각해보니 무대를 탓할 것도 아니다. 유일하게 이상한 것이 있다면, 배우와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이 아닐까? 자연과 환경을 논할 때 이상한 쪽은 언제나, '인간'이다.

글 | 상괭이 서포터즈 / 서울환경연합 활동가 엇지 (eotzi@kfem.or.kr)

1. 한강의 이상한 수달

지난 3월 말, 한강에서 이상한 소식이 전파를 탔다.

▲ 80년대 한강 생물군 개체조사 이래 해당 지역(서울 도심지)에서 수달이 발견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진 출처 : ⓒKBS 뉴스 캡처〉

한강 한복판에서 '수달'이 발견됐다는 뉴스였다. 수달이라면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 게다가 1급수의 지표종이 아니던가? 그런 수달이 왜 한강에 나타났을까? 한강의 수질이 그만큼 개선된 것일까?

그럴 리는 '결단코' 없다. 지금 서울 한복판의 한강은 수달이 살만한 수질이 결코 아니다. 특히 수달이 발견되었다는 곳의 수질은 특히나 열악한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수달이 발견되었다니, 뉴스거리가 될 정도로 이상한 일이긴 하다.

▲ 한강 수달 발견장소의 수질 상황. 수달 발견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질이 열악했다. 〈사진 ⓒ활동가 엇지〉

한강유역에서 수달은 상수원인 팔당댐 너머에 소수의 개체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곳에 서식하는 수달이 물길을 따라 도심 한복판, 중류로 진입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 수달 서식지로 알려진 상수원으로부터, 최근 발견된 한강 수달이 발견된 곳 사이에는 팔당댐(위)과 잠실보(아래)라는 장벽이 도사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댐과 수중보는 수달의 생존에 큰 위협이 되는 구조물로 알려져 있다. 〈사진 ⓒ활동가 엇지〉

그곳에서 서울 도심까지 물길엔 팔당댐이나 잠실보와 같은 거대한 콘크리트구조물이 물길을 가로막고 있다. 물론 수달은 육상 이동도 가능해서 이러한 구조물을 우회할 수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수달이 최적의 서식지를 두고서 일부러 열악한 환경으로 이주 및 정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수달의 활동반경을 훨씬 뛰어넘는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강의 수달'은 스스로 한강에 왔다기 보다는, 어떤 다른 요인에 의해 한강 중류로 유입된 것일까?

▲ 올해 한강에서 발견된 수달이 헤엄치는 모습 〈사진 출처 : ⓒKBS 뉴스 캡처〉

집중호우시 상류에서 물이 불어나면 수변에 사는 동물들이 물살에 휩쓸려 오다가 서식지와 먼 곳에서 정착, 아니 좌초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럴 때 뜬금없는 장소에서 뜬금없는 동물이 나타나는 일이 발생한다. 이번 수달도 그런 경우일까?

흥미로운 사실은 이번 '한강 수달'이 비교적 오랜 시간, 한곳에 정착하여 살아간 흔적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단지 헤엄치는 영상만이 아닌, 배설물이 발견되고, 먹이 활동을 한 흔적도 남아 있었다. 그리고 수달이 보금자리로 삼는 '암반 지형'을 대체할 수 있는 구조물 역시 수달 발견 장소 인근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열악하나마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었달까.

▲ 한강 수달 발견지 인근에 자리 잡은 먹이활동의 흔적들. 밀집된 장소에 물오리, 한강 잉어 등의 잔해가 즐비하다. 〈사진 ⓒ활동가 엇지〉

▲수달은 수변과 인접한 암반지대에 보금자리를 만든다. 수달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곳에 자연 암반 지대는 없었지만, 붕괴로 인해 출입이 통제된 지역에 콘크리트 구조물이 수달 서식에 적합한 형태로 조성되어 있다. 〈사진 ⓒ활동가 엇지〉

최근 발견된 한강 수달은 좌초된, 그리고 고립된 개체일까? 녀석은 한강의 실향민일까? 그 사실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저 상상할 뿐이다. 한강의 수달은 다시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또다시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저 '헤프닝'으로 남을 이야기가 되었다.

▲아시아 수달 〈사진 출처 : ⓒGarry Knight〉

2. 한강의 이상한 고라니

서울 도심 한강 변에서 생뚱맞은 야생동물이 발견되는 일은 흔치 않지만, 종종 있었던 일이기도 하다. 특히 호우가 집중되고 난 이후, 그런 일들이 많이 발생한다. 한강을 따라 떠내려온 개체들이 물이 불어나 범람한 한강 공원에 좌초하는 것이다.

특히 '잠실 아파트 고라니' 사건은 과거 뉴스를 통해 수차례 보도된 바 있다. 잠실 한강공원에 모습을 드러낸 고라니가 잠실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기도 한 사건이었다.

▲잠실의 한 아파트 단지로 유입된 고라니의 모습 〈사진 출처 : ⓒKBS 뉴스 캡처〉

어디서 온 것일까? 유입 경로의 추측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하지만 시기상, 그리고 발견된 장소가 도심 외곽이 아니라, 도심 한가운데 갑작스레 나타났다는 점에서 고라니가 한강 수변을 거쳐서 유입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해 볼 수 있다.

재밌는 사실은 이 이야기가 여러 사람에게 낭만적으로 비쳤다는 것이다. 깊은 산 속으로 가도 보기가 쉽지 않은 야생동물 고라니를 도심 한복판에서 만나다니. 분명 어딘가에 살고 있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그들을 만나고 또 존재를 확인한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놀라움과 신비함을 느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자연과 동떨어져 살아가는 도심의 사람들에게 이런 경험은 하나의 이벤트처럼 여겨진다. 그뿐이다.

▲포획되어 야생동물구조센터로 옮겨진 고라니 〈사진 출처 : ⓒKBS 뉴스 캡처〉

3. 한강의 이상한 상괭이

뭐니뭐니해도 한강에서 발견된 '가장 이상한' 야생동물을 꼽자면 바로 '상괭이'가 아닐까? 한강에서 무려 '돌고래'가 발견되었으니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 2015년 4월 15일, 한강에서 발견된 상괭이 사체 소식을 전하는 뉴스 화면 〈사진 출처 : ⓒSBS 뉴스 캡처〉

한강에서 발견된 돌고래의 사체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이상함을 넘어선 기이함마저 느꼈다. 당시 대다수 사람은 한강과 돌고래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난 느낌이랄까?

▲작년 4월, 한강 양화 선착장 인근에서 발견된 상괭이의 사체의 모습 〈사진 출처 : ⓒSBS 뉴스 캡처〉

한강에서 돌고래가 발견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민물에서 돌고래 서식이 보고된 바가 없으므로 일부 전문가들은 상괭이의 한강 자연 유입 가능성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기록에 의하면, 한강 하구는 오랜 기간 상괭이의 서식지였다. 우리는 관념적으로 '바닷물 = 짠물', '강물=민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강과 바다의 이분법적 경계와 정의는 자연상태에서 큰 의미가 없다. 특히 서해와 같이 조수간만의 차가 큰 바다에서는 밀물 시 바닷물이 강줄기를 따라 역류하게 되고, 썰물 때 다시 바다로 빠져나간다. 한강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저 한강이 '강'이기 때문에 마냥 민물일 거라고만 생각하지만, 지금도 한강은 물 때에 따라 한강대교, 즉 노들섬 너머까지 바닷물로 가득 찼다 빠지기를 매일같이 반복 중이다.

▲한강의 낚시꾼들. 밀물 때를 노려 낚싯대를 드리운다. 한강에서 바닷물고기를 낚기 위해서다. 〈사진 ⓒ활동가 엇지〉

이 과정에서 단지 바닷물만이 한강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바다에서 살던 물고기들도 조류를 타고서 한강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한강의 낚시꾼들이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고, 그들이 낚싯대를 드리우는 시간도 바로 바닷물이 들어올 때다. 상괭이 역시 마찬가지다. 상괭이는 자신의 먹이가 되는 물고기를 따라 움직이며, 그래서 조류를 따라 움직인다. 강태공들과 상괭이의 목적은 같다. 과거 상괭이가 한강에서 일상적으로 목격되었던 이유다.

상괭이가 한강에서 발견된 것? 따져보면 이상할 일이 아닌 셈인데, 지금은 이상한 일이 된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4. 한강에서 이상한 것과 당연한 것이란

우리는 오늘날 한강에서 수달이 나타면 이상한 일이라 한다. 고라니가 나와도 이상한 일이라고 한다. 상괭이가 나와도 이상한 일이라고 한다. 한강에서는 있어서 안 될 일처럼 말이다. 그럼 오늘날 한강에 '이상한' 일이 아닌, '당연한' 것들은 무엇인가?

▲작년 여름 사상 처음으로 한강에 '조류 경보'가 발령 되었다. 특히 성산대교 인근은 조류 경보 수치의 6배에 달하는 녹조가 창궐했다. 〈사진 ⓒ활동가 엇지〉

한강에 녹조가 피어나는 일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되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여름철 한강 녹조는 지속해서 창궐했고 드디어 지난해엔 사상 첫 '조류 경보'가 발령되기도 했다.

▲한강에서 발견된 큰빗이끼벌레 〈사진 출처 : ⓒJTBC 뉴스 캡처〉

동시에 큰빗이끼벌레 역시 한강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 2014년 최초 발견 시의 놀라움도 잠시, 이젠 한강의 일부가 된 큰빗이끼벌레. 한강 수질의 실상을 말해주는 '지표종'이기도 하다.

▲ 한강 하구에 대량 번식한 끈벌레의 모습 〈사진 출처 : ⓒYTN 뉴스 캡처〉

한강 하구 어민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끼치고 있는 끈벌레 소식은 끊이지 않고 있다. 혐오스러울 정도로 많은 개체가 '한강 하구를 뒤덮었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번성했다. 놀랍게도 지렁이와 같은 끈벌레들이 실뱀장어를 비롯한 어류를 먹어 치우고 있으며, 나날이 개체 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끈벌레는 현재 '유해종'으로 분류되어 있다.

▲현재 한강의 모습. 〈사진 ⓒ활동가 엇지〉

새삼스러운 질문이지만, 우리는 한강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늘 스쳐 지나며 만나는 한강. 하지만 그에 대한 이해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는 오늘날 한강의 모습에서 이상한 점을 찾지 못한다. 현재의 모습이 표준이 되었으며, 한강의 '이상성'을 모르니 현 상황을 '정상적'으로 여기기 마련이다. 한강의 물길이 가로막혀 강이 흐르지 못해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다. 물이 고여서 썩고 녹조가 피는 것도 당연한 일이 되었다. 생물 종의 왕래가 단절되고 먹이사슬의 붕괴, 즉 생태계가 사라진 풍경에도 우리는 이상한 점을 전혀 찾지 못한다.

수달, 고라니 그리고 상괭이. 그들은 모두 한강 변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고유한 토종 생물들이다. 그들이 자취를 감춘 데 이유가 있을 뿐, 그들이 나타난 것에 이유가 있을 리 없다. 그들은 원래 한강에서 살았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수달, 상괭이, 고라니

'한강'이라는 무대가 있다. 이 무대에 이상한 배우들이 출연한다. 수달, 고라니, 상괭이다. 하지만 이상한 것이 정말 그들일까? 혹시 무대가 이상한 것은 아닐까? 아니다, 생각해보니 무대를 탓할 것도 아니다. 유일하게 이상한 것이 있다면, 배우와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이 아닐까?

자연과 환경을 논할 때 이상한 쪽은 언제나, '인간'이다.

※ 상괭이와 사람의 공존을 모색하는 <상괭이 프로젝트>에서는 한강 상괭이의 '옛날이야기'를 찾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한강을 보아 오셨던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께 한강에서 돌고래(상괭이)를 본 적이 있는지 여쭤봐 주세요! 한강 돌고래 목격담을 제보해 주시고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에겐 소정의 상품을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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