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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2년, 선체인양 후에도 해야 할 일이 많다

"사고로부터 5년이 지날 무렵, 그 사고를 세상 모두가 빠른 속도로 잊어버려 가고 있다고 느꼈죠. 이러다가는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되어버릴까 너무 두려웠고 그것을 받드시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흔적를 남기면, 그것이 다음 세대의 생명을 구합니다. 사고로 죽은 사람들의 억울함과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상상하게 할 수 있는 뭔가가 남아 있는 것과 아예 없는 것의 차이는 굉장히 큽니다."

세월호의 선체가 인양된 후 어떻게 다룰지는 아직 아무런 계획도 없다고 한다.

그런 소식이 나돌던 지난 2월, 도쿄 하네다 공항의 한편에 있는 한 일본항공(JAL)의 관련 시설 "안전 계발센터"를 찾았다.

1985년 8월 12일, 하네다 공항을 떠나 오사카를 향하던 JAL123 편은 군마현의 오스타카산에 추락했다. 이 사고로 승객과 승무원 520명이 사망했다. 센터에는 비행 경로인 도쿄만 바다와 추락한 오스타카산에서 회수된 기체와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정비 부실로 인해 접합이 제대로 안된 압력격벽에서 객실 내의 공기가 분출되고 비행 중에 꼬리날개를 날렸다는 사고 원인이 손에 잡힐 듯 알 수 있다.

"사고를 이해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물건'을 통해서 사고를 느끼는 게 더 중요합니다." 센터의 전시 설명 담당자는 말한다. 마지막 30분 동안, 비행기는 자력조종 능력을 잃어 롤러코스터처럼 심하게 흔들리다가 산바닥에 충돌했다. 이 '공포의 30분' 동안 죽음을 각오한 승객들이 가족에게 남긴 유서, 승무원이 마지막 순간까지 승객의 피난을 유도하기 위해 순서를 적으며 확인한 메모장. 그리고 원형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부서진 시계와 안경 등 현장에서 유족이 회수한 유품. 이런 전시물을 보면 "다시는 이런 공포와 슬픔이 반복돼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센터는 일본항공의 연수시설로 사용되어 있어 직원들은 꼭 이곳을 찾는다. 회장부터 정비원까지 여기를 견학하고 "안전한 비행기 수송을 지키겠다"고 다짐한 감상문이 센터 벽에 걸려있다. 일반 시민도 미리 예약하면 견학이 가능하며, 사고일로부터 30년을 맞은 2015년엔 연간 2만명이 방문했다고 한다.

내가 오랜만에 센터를 찾아간 2016년 2월 말에도 도쿄의 한 중학교 교사들이 찾아왔었다. 학생들에게 이 센터를 견학시켜 "안전 교육"을 하고, 목숨의 소중함을 알리는 수업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사고의 교훈을 사회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이 기체도 처음부터 보전이 결정됐던 것은 아니다. 센터 개관은 2006년. 사고가 발생한 지 무려 21년 후에나 가능했다. 일본항공 역대 사장들은 사고 직후부터 기체 대부분을 폐기하겠다고 기자회견에서 계속 표명해왔다. 유족들이 일본항공에 보존을 지속적으로 요청했기 때문에, 회사가 방침을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야지마 쿠니코(70)씨는 당시 9살이었던 둘째 아들을 사고로 잃었다. 사고 후 유족들의 단체 "8.12 연락회" 사무국장을 맡아 기체의 보전을 회사에 계속 호소해왔다. 이 사고는 결국 비행기를 날린 일본항공도, 기체 만들고 정비를 담당한 미국 보잉사도 고위 간부가 단 한 명도 기소되지 않아, 조직적인 책임을 아무도 지지 않은 채 사법적으로는 끝났다. "사고로부터 5년이 지날 무렵, 그 사고를 세상 모두가 빠른 속도로 잊어버려 가고 있다고 느꼈죠. 이러다가는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되어버릴까 너무 두려웠고 그것을 받드시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사고 30년을 맞은 2015년 8월 12일의 오스타가산. 그날이 오면 지금도 유족과 일본한공 관계자 등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미야지마씨는 그때 심경을 이렇게 되돌아봤다. "기억이 되살아나니까 안 보고 싶다"는 유족의 목소리는 그때도 많았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있다고 있다. 그러나 "유족도 이제 나이를 먹었고, 아들 딸 그리고 손자 세대가 관심을 갖고 남아 있는 기체를 보고 싶어한다"고 한다. "1000년 후를 위해 흔적를 남기면, 그것이 다음 세대의 생명을 구합니다. 사고로 죽은 사람들의 억울함과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상상하게 할 수 있는 뭔가가 남아 있는 것과 아예 없는 것의 차이는 굉장히 큽니다." 사고의 잔해를 보존해 후세의 교훈을 전하는 의의를 미야지마씨는 말한다.

일본 항공의 안전 센터가 생긴 지 5년이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운동장에서 대기하도록 지시를 받은 초등학생들이 쓰나미에 휩쓸려 84명이 희생되었다.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의 오카와 초등학교 건물도 올해, 전체를 보전하겠다고 시장이 표명했다. 아직 이 비극의 기억은 생생하고 철거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지만, 시장은 "피해를 최소한으로 막을 수 있도록 교훈을 후세대에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설명했다.

세월호 사고부터 2년. 앞으로 어느 사회에나,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오는 '망각'과 '세대 교체'가 다가올 것이다. 그 사고의 충격과 비통을 처음부터 모르는 세대가 늘어난 수십년 후, 수백년 후, 미래의 그들을 바다 속에 갇히게 할 수도 있는 악마의 부활을 막기 위해 진상 규명이 끝난 후에도 해야 할 일은 많다. 1993년 서해훼리호의 선체는 이제 찾아볼 수는 없고,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의 차량은 일부가 "안전테마파크"안에 있는데 세월호 선체는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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