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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슈퍼 히어로 part 1 | 영웅 대통령의 시대

루즈벨트 시대는 히어로들에겐 말 그대로 골든 에이지라는 이름에 걸맞는 멋진 시대였다. 때려눕힐 강력한 악당이, 영웅들이 힘을 합칠 이유가 있었다. 마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블 유니버스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은 히어로들에게 가장 신뢰받는 멘토였다. 그는 '프로젝트 리버스'를 진두지휘하여 스티브 로저스를 슈퍼 솔저로 만들고, 그를 유럽 전장으로 보내어 나치를 공포에 떨게 했다.

  • 이규원
  • 입력 2016.04.11 13:50
  • 수정 2017.04.12 14:12

[배트맨 데이 기념 특별 연재 28] 대통령과 슈퍼 히어로: part 1

─ 영웅 대통령의 시대

앞선 연재글에서 미국 만화 속에 등장한 대통령과 정치인의 모습을 일부 엿보았다. 하지만 렉스 루터 같은 권력의 화신, 거짓말의 달인과 달리 그 옛날 1940년대, 1960년대의 대통령들은 슈퍼 히어로들이 누구보다 신뢰하는 영웅으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이 변천사를 시대순으로 살펴보는 것도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라 정리해 보려 한다.

가상의 역사이긴 하지만 실제 역사 속의 연도라고 생각하면서 최근 출간된 뉴52 『저스티스 리그』나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기 바란다.

제2차 세계 대전과 프랭클린 루즈벨트

우선 실제 역사 이야기를 해 보자. 무대는 1940년 전후 유럽. 나치 독일이 발흥하며 유럽에 전쟁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고, 당시 영국 수장이었던 네빌 체임벌린은 독일에게 유화 정책을 써서 전쟁을 막으려 노력했지만, 1939년 9월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결국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만다. 1940년 초 독일은 전격전으로 단번에 유럽 각국을 무너뜨리고 영국 본토 침공까지 감행했다. 한편 극동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소위 대동아 공영권을 내세워서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 피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1940년 11월 5일 미국에서는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대통령 3선에 성공한다. 루즈벨트는 당선을 위해서 "여러분의 자제를 나라 밖 전쟁에 파병하지 않는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지만, 영국이 위기에 빠지고 윈스턴 처칠 수상으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이 계속되면서 입장을 바꾼다. 그리고 1941년 3월 동맹국에 무기를 제공할 줄 수 있는 무기 대여법이 의회에서 통과되면서 미국은 유럽의 전쟁에 뛰어들게 된다.

영국과 중국에 대한 무기 대여 법안에 서명 중인 1941년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미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Lend-Lease#/media/File:President_Franklin_D._Roosevelt-1941.jpg)

실제 역사 속에 들어간 히어로들

1988년 10월 DC코믹스가 출간한『시크릿 오리진 - 저스티스 소사이어티』는 위 역사에 슈퍼 히어로의 살을 입힌 것이다. 우선 1938년에 최초의 슈퍼 히어로인 슈퍼맨이 세상에 나타났다. 1939년에는 고담 시에 배트맨이 등장했다. 1940년 영국의 처칠 수상은 특수 요원 한 명을 루즈벨트에게 보내 지원을 요청한다. 히틀러의 영국 침공을 저지해 달라는 것. 아직 무기 대여법이 의회에 제출되기도 전인 시기, 루즈벨트는 공식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하면서 그에게 파일 하나를 내민다. 그것은 영국에 닥친 거대한 위협과 싸울 힘을 지닌 민간인 8명의 정보가 수록된 파일이었다. 그 8명은 저마다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슈퍼 히어로로, 뉴욕의 아워맨, 샌드맨, 호크맨, 고담 시의 그린 랜턴, 키스톤 시의 플래시, 그리고 신에게 정의의 대리인으로 임명받은 영적인 존재 스펙터와 매사추세츠 살렘 타워에 사는 닥터 페이트였다.

영국 첩보원은 루즈벨트에게 받은 파일을 바탕으로 이들에게 직접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고담 경찰국 국장실에서 플래시와 그린 랜턴 두 히어로는 처음 만나 인사한다. "그것이 루즈벨트 대통령의 명령이라면, 당연히 해야겠지, 아마 여기 있는 플래시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오. 그리고 경찰국장, 내가 편지 한 장을 남겨 놓았는데, 만일 내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에이펙스 방송사의 아이린 밀러 양에게 꼭 전해 주시오." 그린 랜턴과 플래시는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부탁한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곧장 유럽으로 히틀러를 잡으러 날아간다.

전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으려는 악에 맞선 여덟 슈퍼 히어로. 《시크릿 오리진》 2호,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편 표지.

(이미지 출처: http://dc.wikia.com/wiki/Secret_Origins_Vol_2_31?file=Secret_Origins_Vol_2_31.jpg /

TM & Copyright © DC Comics, Inc. ALL RIGHTS RESERVED.)

부활한 리더, 미국의 선지자

그런데 히틀러는 그 옛날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찔렀던 로마 병사의 창인 '운명의 창'을 손에 넣고 그것으로 북구 신화의 발키리들을 소환하여 히어로들에게 맞선다. 닥터 페이트는 네 개의 마법 구체를 만들어 미국으로 보내고 그 구체들은 샌드맨, 호크맨, 아톰, 그리고 스펙터를 소환하지만, 발키리들은 백악관까지 쳐들어가 대통령을 찔러 죽인다. 가까스로 히틀러와 발키리들을 제압한 히어로들. 그러나 루즈벨트의 죽음으로 모든 것은 막막한 상황. 이에 신의 대리인인 스펙터가 대통령을 살려달라고 신에게 간청하는데, 이때에 신은 그에게 곧 일본이 미국을 공격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 과거의 적이었던 자들이 서로 연합하여 독일과 이탈리아와 일본을 상대로 싸우게 될 것인데, 만일 지금 그의 간청대로 루즈벨트를 되살려 준다면 그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이나, 마치 성경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입성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던 것처럼 루즈벨트 역시도 평화의 시대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망할 것이라고 말하고는 스펙터의 소원대로 루즈벨트를 되살린다. 1940년 히틀러가 영국 침공 계획을 포기한 배경에 실은 이들 히어로의 활약이 있었다는 것인데, 이 일을 계기로 여덟 슈퍼 히어로가 결성한 단체가 바로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오브 아메리카(JSA)'로, 1940년 12월 《올스타 코믹스》 3호에서 시작되어 저스티스 리그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DC코믹스의 슈퍼 히어로 팀이다.

JSA의 첫 번째 만남. DC코믹스 최초로 결성된 슈퍼 히어로 팀의 모습이 담긴 《올스타 코믹스》 3호 표지.

(이미지 출처: http://dc.wikia.com/wiki/All-Star_Comics_Vol_1_3?file=All-Star_Comics_Vol_1_3.jpg /

TM & Copyright © DC Comics, Inc. ALL RIGHTS RESERVED.)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창립 스토리

이 이야기는 사실 1977년 8월 《DC 스페셜》 29호에서 먼저 한번 다루어진 적이 있다. 원래 루즈벨트 대통령의 파일에는 배트맨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1940년 당시에 루즈벨트는 미국이 공격받지 않는 이상은 전쟁에 뛰어들지 않는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영국을 지원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최근 몇 달간 등장한 슈퍼 히어로들의 파일을 영국 요원에게 넘겨주면서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말한다. 그로부터 1주일 뒤에 고담 시 제임스 고든 경찰국장의 방에서 배트맨, 플래시, 그린 랜턴이 한 자리에 모인다. 이 설정은 1988년 버전에서는 데이비스 경찰국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는데, 사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잠깐 곁가지로 빠져서 소개하면 1941년 《배트맨》 7호를 보면 고든 국장이 마침내 배트맨을 인정하고 그를 경찰국의 명예 대원으로 공식 임명한다. 그러니까 1940년 당시에 배트맨, 그린 랜턴, 플래시 세 히어로를 소집한 인물이 제임스 고든이라고 하면 명예 대원으로 임명하기도 전부터 배트맨과 고든이 협력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 부분을 수정하기 위해서 데이비스 국장이라는 인물을 고든 대신 가상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루즈벨트 대통령의 집무실에 뛰어든 발키리가 대통령의 가슴을 창으로 찌르려는 찰나에 아톰이 그 앞을 막아서 대신 창을 맞는다. 슈퍼맨도 현장에 나타나서 히어로들을 도와주고, 히틀러의 야심을 좌절시킨다. 대통령은 이대로 히어로들이 각자 갈라지는 것이 아깝다면서 팀을 이루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 그렇게 저스티스 소사이어티가 탄생한다.

아메리카 VS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위 두 이야기의 후일담에 해당하는 1985년 버전도 있다. 1985년 4이슈 미니시리즈 《아메리카 VS 저스티스 소사이어티》는 1977년 스토리를 기본으로 삼으면서 여기에 1979년 《어드벤처 코믹스》 462호에 나왔던 배트맨의 죽음 이야기를 더한 것이다. 당시 지구-2의 브루스 웨인은 고담 경찰국장 자리에 있었는데, 빌 젠센이라는 범죄자는 웨인이 실적을 쌓기 위해 자신을 범죄자로 엮었다고 생각하면서 출옥 후 흑마술사에게서 힘을 얻어 고담을 위협하고,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와 부딪힌다. 젠센의 힘은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히어로들이 모두 덤벼도 이길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기 때문에, 급기야 히어로에서 은퇴하였던 웨인이 다시 배트맨이 되어 나서게 만든다. 돌아온 배트맨은 젠센을 막다가 사망한다. 《아메리카 VS 저스티스 소사이어티》는 사망한 브루스 웨인이 남겼다는 일기장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는데, 그의 일기장에는 저스티스 소사이어티가 사실은 히틀러에게 세뇌당해서 미국을 배반했다고 기록하는 등 다른 히어로들을 음해하는 내용들로 가득했다.

사실 이 이야기는 독일의 한 잡지가 1983년에 아돌프 히틀러의 친필 일기장이 발견되었다고 주장하며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가 위조라는 사실이 밝혀진 사건에 착안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고발한다. JSA의 반역죄를." 히틀러의 친필 일기장 소동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아메리카 VS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1호 표지.

(이미지 출처: http://dc.wikia.com/wiki/America_vs._the_Justice_Society_Vol_1_1?file=America_vs_the_Justice_Society_Vol_1_1.jpg /

TM & Copyright © DC Comics, Inc. ALL RIGHTS RESERVED.)

캡틴 아메리카에게 방패를 주었던 대통령

루즈벨트 시대는 히어로들에겐 말 그대로 골든 에이지라는 이름에 걸맞는 멋진 시대였다. 때려눕힐 강력한 악당이, 영웅들이 힘을 합칠 이유가 있었다. 마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블 유니버스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은 히어로들에게 가장 신뢰받는 멘토였다. 그는 '프로젝트 리버스'를 진두지휘하여 스티브 로저스를 슈퍼 솔저로 만들고, 그를 유럽 전장으로 보내어 나치를 공포에 떨게 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캡틴 아메리카에게 새로운 코스튬, 새로운 방패, 새로운 신분을 선사하면서 캡틴이 훨씬 더 편하고 빠르게 임무 현장에 투입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캡틴 아메리카의 애국심은 루즈벨트에 대한 충성심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케네디 대통령과 슈퍼맨

이렇게 히어로의 전적인 신뢰를 받았던 대통령은 비단 루즈벨트뿐만이 아니었다. 조금 시대를 건너뛰면 케네디 대통령과 슈퍼맨의 이야기도 상당히 유명하다. 1964년 2월 《액션 코믹스》 309호는 케네디 대통령과 슈퍼맨의 만남을 그린 이슈인데, 여기서는 슈퍼맨의 정체를 아는 케네디 대통령이 클라크 켄트로 변장해 슈퍼맨과 같이 나타나면서 클라크의 정체에 관한 로이스의 의심을 단번에 벗겨 주는 역할을 한다. 쇼가 끝난 다음에 단둘이 남게 된 케네디는 변장을 벗으면서 슈퍼맨에게 자신의 연기가 어땠냐고 물으며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자신을 불러달라고 말한다. 슈퍼맨 역시 미국 대통령을 그만큼 신뢰하기 때문에 자신의 비밀을 케네디에게 가르쳐 준 것이라고 답한다. 이 만화는 케네디 대통령 살아생전에 출판된 것이 아니라 그가 1963년 11월 22일에 암살당한 후에 출판된 것이었다.

*이 연재는 세미콜론과 공동으로 기획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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